|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깜찍이중독) 날 짜 (Date): 1999년 11월 26일 금요일 오전 01시 05분 16초 제 목(Title): [퍼옴]카오스이론과 불교 11 제 목: 카오스이론과 불교 11 PAGE: 1/ 9 ─────────────────────────────────────── "초심을 잊지 말라<벽암록>", "초발심에서 정각을 얻는다<화엄경>" 는 말처럼 수행자에게는 초발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사람들은 "첫단추를 잘 끼워야지"라는 말을 종종 사용하는데 어떤 것이든지 시작할 때의 상황 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때의 "첫단추"에 해당하는 것을 카오스 이론에서는 "초기조건"이라 고 한다. 초기조건이란 처음 진행을 시작했을 조건이며, 그 후의 전개양상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초기조건의 중요성과 그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예로 "슬롯머신(slot machine)"을 들 수 있다. 슬롯머신의 알은 처음 발사되는 순간의 속도와 방향에 따라서 그 움직임이 정해진다. 기계를 작동할 때 손에 가해지는 힘 의 미묘한 차이, 그밖에 주인측의 고의적인 조작 등으로 말미암아 초기조건 에 약간씩의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고, 이 때문에 구슬의 진로가 조금이나마 바뀌어지며, 그 결과 구슬이 구멍에 들어가는지 안 들어가는지가 결정되고. 이런 일들이 거듭 겹쳐서 구슬의 움직임은 애초의 짐작이나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데로 빗나가 버리는 것이 다. 이때의 초기조건은 복잡계의 있어서는 "고정화 되는 대상"이며, 원형론 에 있어서는 "원형"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초기조건(카오스)-록인(복잡 계)-원형사관(원형)이라는 도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불교적 표현으로는 초연 (초연), 초업(초업)이며, 후일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업의 공명 살인이나 근친상간의 금지는 사회를 근원적으로 지탱해주는 윤리 강목으로 서 인간의 근본적 가치관이다. 또 현실사회의 심한 경쟁에서는 명예욕, 물 욕, 시기, 질투 등이 사회적 통념이 되어 중생은 이들 그릇된 가치관에 밤낮 없이 노출되어 번뇌를 형성한다. 저마다의 나라에는 문화, 습관을 지배하는 판이한 가치관이 있다. 가령 봉 건시대의 일본에서는 부모가 공(공)을 위해 자식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일을 미담으로 여겼다. 임진왜란, 조선식민지화, IMF 관리체제라는 민족사적인 불행한 사건을 관찰해 보면 이들 대국란을 야기한 원인으로서는 당파싸움 세도정치 지역차별이며, 한결같이 팔을 안으로 굽히는 "차별의식"에 있다. 그런 식으로 인종, 나라, 지역, 가족 곧 원형이 다르며, 각 사회마다의 번뇌 를 갖는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처음 원형이 형성되었을 때는 당시의 사 회조건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한국의 기본사회는 혈연 중심의 마을이며, 오늘날에도 이 사실이 명확히 반영되어 있다. 한편 일본은 무사단 중심의 엄격한 제도가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 일단 원 형이 형성되면 거의 변치 않는다. 아마도 한국인의 원형에는 신라 이래의 마을 구조에서 형성된 것이 거의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시대와 더불어 나라, 집 사람마다의 고유의 번뇌가 만연되는 것이다. 일단 형성된 것은 마치 자물쇠로 채워두는 것처럼 그대로 민족의 집단무의 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복잡계의 이론에서는 이것을 "록인(Lock in)"이라고 한다. 곧 고착화 되었다는 뜻이다. 록인된 원형을 그대로 두면 민족분쟁, 지역갈등 등 여러가지 사회의 병을 계속 만연시켜 간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이 된 것이다. 조상대대의 역사적 체험이 그대로 자손에게 이어지는 것이다. 부정적인 업 은 청산해야 한다. 그것이 곧 보살행이다. 일단 록인 된 원형으로 역사를 전 개해 나간다. 시대마다의 문화는 새로운 인과 연이 되어 어김없이 오늘의 나에게 막중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림으로 묘사하면 원형을 중심으로 몇 겹의 동심원이 그려져 있는 모습과 같다. 그러면서 수시로 그 두꺼운 동심원의 다중구조를 뚫고 원형이 번득이는 것 이다. 먼 옛날 마을에서 형성된 원형에 시대마다의 정치적 상황이 개입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참된 마음을 찾으라고 하는데, 한국적인 실상을 두고는 오랜 역사 속에서 오염된 마을의식을 씻어내라는 뜻이 될 것이다. 인간의 역사, 생물의 진화의 각 순간에도 집단 무의식이 이전으로부터 이 어온 것들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질서의 필연성에 강하게 집착한다. 이 사실 은 과거의 인연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한편 시간의 흐름, 환경 조건의 변화 등에서 야기되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다. 옛 그대로 실아가는 것인가, 아니면 크게 변해야 되는가, 질서와 창조, 인연과 혁신, 진화, 발전의 갈림길이 카오스의 가장자리이며, 이곳은 무질서 에서 질서로 넘어가는 자리, 또는 무질서에서 질서로 넘어가는 길목으로 "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자리이다. 질서가 무너지면서 극단적인 무질서로 치닫기 전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질 서를 잡아 주는 자리라고도 할 수 있다. 혼돈속의 질서 일반적 생물이나 인류의 진화를 생각해 보자. 기적과도 같은 진화 과정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 생물이 진화를 맞기 전에는 먹이, 천적, 풍토 등에 의한 환경변화가 있었다. 이때에 진화하느냐(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느냐), 멸종하느냐(무질서, 혼돈으 로 치닫느냐)를 결정하는 자리가 바로 카오스의 가장자리이며, 선택에 따라 진화하기도 하고 멸종하기도 한 것이다. 카오스의 가장자리는 어둠 속에서 가냘픈 빛을 발하는 가는 길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왼편은 금방이라고 굳어버릴 것 같은 잔인한 시멘트의 바다이며, 그곳에 빠지면 금방 경직화 된다. 오른편은 불모의 사막이라면 그 사이에 있는 가는 길의 전면에 풍요로운 땅이 있다. 매우 세속적인 보기를 든다면 혁명가는 역적과 충신의 가장자리를 걷는 사 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갸냘픈 선 위(카오스의 가장자리)에서의 행동(새로 운 질서의 형성)이 창조냐, 방종한 무질서냐, 경직화된 불모냐를 결정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 생각을 사회에 옮기면서 20세기말이 단지 21세기의 전 단계가 아니라 과거의 체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질서를 향한 카오스의 가장자리 (복잡계)임을 실감한다. 특히 오늘날 한국의 실상은 카오스의 가장자리이다. 복잡계에서는 "혼돈이 성숙해지면서 자동적으로 질서를 향한 촉매작용이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다. 불자는 중생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데 그 내용 에는 현실 사회의 개혁과 발전도 포함되어 있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세상일 지라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혼돈 속의 질서"가 바로 복잡계의 묘미이며, 무명 속에서의 대오의 길 을 찾는 것이 불교적인 가르침이다. 혼돈(무명) 속에서 아무런 질서(깨우침) 도 발견할 수 없었다면 복잡계(세상)는 애초부터 지(지)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록인이 된 과거의 인연의 고리를 직시하고 새로운 도약(대오)의 길을 향하 는 일이며, 민족 단위로 생각한다면 원형을 제대로 찾고 새질서로 향하는 일이다. 불교적 수행이 자비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은 중생의 마음은 깨끗 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단 록인된 인과의 고리는 계속 중생의 병을 심화 시키며 더욱더 어두어져 가는 무명의 숲일 수 있다. 이것을 청산하지 않는다면 계속 중생의 병은 무거워지며, 보살은 병든다. 이 사실은 <유마경>에서는 "중생의 병은 무명에서 나오고 보살은 중생이 병들면서 병든다"고 표현한다. 록인된 업을 불식하고 새로운 창조에 힘쓰 게 하는 일은 자비이다. 불교적인 자비는 결코 개인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국가, 전인류의 평화와 행복이라는 절실한 자비의 마음이기도 하다. "원형의 승 화", 곧 자비행이며, 21세기 불교의 중대한 사명이 여기에 있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발행일(1742호):1999년 11월 16일,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