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깜찍이중독) 날 짜 (Date): 1999년 11월 26일 금요일 오전 01시 03분 20초 제 목(Title): [퍼옴]카오스 이론과 불교10 제 목: 카오스 이론과 불교10 PAGE: 1/ 9 ─────────────────────────────────────── 카오스의 가장자리와 창조 불교에서는 대오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행의 방법을 중요시한다. 과학자에게도 훌륭한 과학적 창조를 위한 연구 방법이 있다. 대부분 위대한 업적을 지닌 과학자나 천재들은 자신들의 창조의 순간을 말하 지 않는 것이 보통이며, 말할 수 없는 상황을 계시니, 영감이니 하면서 신비화하는 경향이 있다. 20세기 최대의 수학자로 불리우는 포앙카레는 예외적이었다. 그는 파 리의 심리학회에서 자신의 창조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였고, 그것을 기 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이미 과학세계가 단순계의 사고만 으로 한계에 부딪칠 것을 예고했으며, 복잡계 과학의 도래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2주정도 난문제와 씨름하였으나 전혀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 했는데 어느날 커피를 많이 마셔 잠이 오지 않아 멍하게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그 해답이 한 장의 그림처럼 떠올랐다고 설명하고 있 다. 창조에는 요동과 카오스의 진동이 따른다. 난문제를 두고 이리저리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포앙카레의 뇌 속에서는 과거의 상식, 기존의 지식에 대한 의심, 곧 요동이 발생하고, 뿌연 안개와 같은 카오스의 상 태가 창조로 이어진 것이다. 그는 그 과정을 마치 구름이 서로 부딪치고 어울리며 팽창해 가는 혼 돈 속에서 질서가 나타나는 것과도 같았다고 하며, 그 외에도 큰 발견 (창조)을 할 때의 과정이 모두 이와같이 카오스의 상태에서 자연스럽 게 질서가 나타나는 것이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는 답이 나오지 않지만 오히려 그것 을 완전히 잊고 있을 때, 이를테면 여행을 하려고 마차에 발을 올려놓 는 순간 갑자기 - 혼돈 속에서 질서가 나오는 카오스의 가장자리처럼 - 오랫동안 골치를 썩히던 문제의 해답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는 왕으로부터 왕관을 부수지 않고 순금인지 아닌지를 알아내라는 명을 받고 오래동안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도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없었던 그가 잠시 만사를 잊고 쉬고 싶다 는 생각에 목욕탕에 몸을 담그는 순간 그 해답을 깨달았다. 목욕탕에 담긴 물이 자기 몸의 부피만큼 흘러 넘쳤다는 사실을 깨닫 고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대천재는 머리 속에서 수시로 요동 과 카오스의 상태를 겪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즉 문제에 집중할수록 머리 속에서는 혼돈의 구름이 계속 솟아오르는 데 이때 뇌 속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요동 <> 카오스 <> 카오스 의 가장자리 <> 질서의 자기조직화 <> 해결의 실마리 <> 창조의 과정 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자기조직"이란 "스스로 질서를 형성한 다"는 뜻이며, 적절한 혼돈 속에 새로움이 자생적으로 발생할 수 있 음을 뜻한다. 창조를 위한 중도 카오스의 전단계에는 작은 요동이 수시로 나타난다. 수행자도 이와 마찬가지로 요동에서 카오스를 거쳐 대오의 경지에 도달한다. <화엄 경>의 팔법계품(팔법계품)에서는 선재동자가 53명의 지혜로운 사람을 차례로 만나는 과정이 쓰여져 있는데, 만날 때마다 선재의 마음엔 요 동이 발생하고 카오스를 거쳐 마침내 보살이 되는 과정이다. 큰 깨우침은 수행자의 자기발견이며, 과학자, 예술가의 창조에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의 창조이다. 적극적으로 카오스의 정면을 응시하는 대결정신이며, 카오스의 가장자리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마음가짐이다. 과거의 질서에만 매어 있다면 결국에는 경직화 된다. 그러나 질서에 서 창조, 또는 개혁의 길은 결코 비약이 아니다. 새로움으로 비약하는 일은 자신의 기반, 생명체의 질서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다. 경직화와 창조의 갈림길, 즉 카오스의 가장자리에서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중도 이며, 비유비공(비유비공, 유도 아니고 공도 아님)의 세계이다. 부처님은 중도(중용)를 수행의 방법으로 택했으나 그 내용은 단순한 양비, 양시론적인 것이 아닌 새창조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다. 극단적 난행고행(난행고행)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의 자신의 육체적 조건 을 무시해서는 건전한 요동이 야기될 수 없다. 또한 탐욕적이고 절도 없는 생활에서는 창조의 기회가 없다. 카오스 의 가장자리란 비유비공의 세계이자 사회발전, 생물적인 진화, 심지어 인류문명의 발전에도 관련되고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것으로 보이는 중도사상에는 카오스에서 창조로 자기조직화 하는 지혜가 있는 것이 다. 부처님은 6년간의 난행고행 끝에 40일 간의 좌선을 하고 대각의 경지 를 얻었다. 자신의 모진 고행과 오랜 좌선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게는 중도의 실천을 강조한 것은 매우 뜻 깊다. 창조는 노력 없이는 있을 수 없으나 지나친 카오스(고행)만으로는 있을 수 없음을 충분히 알아 차렸던 것이다. 창조적 질서와 수행 동양의 격언 중에 "독서를 백 번하면 의미가 절로 나온다"라는 것 이 있다.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려운 문장도 백 번 정도 계속해서 읽는 사이에 여러 차례의 생각, 곧 요동이 발생하면서 어느 순간 갑자 기 명확한 뜻(질서)을 알게 된다는 것인데, 마치 카오스에서의 창조의 과정과도 같은 의미의 격언이다. 이와 같은 원리는 불교의 가르침에도 사용된다. 불교, 특히 선(선)에 서는 난해한 화두를 통해 깨우침을 얻도록 하고 있다. 가령 "병 속에 있는 새를 잡아라"는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상식 적으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뜻을 찾기 위해 오래동안 고민하는 사이에 뇌속엔 크고 작 은 요동이 일어나며, 마침내 혼돈의 상태가 된다. 아무리 옛 고승과도 같은 생활을 실천하고 같은 수행방법을 한다 해도 결코 대오에 도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어떤 책을 읽었다고 선에 접근할 수는 없는 것이며, 오직 스스로 대 우주, 삼라만상과 자신의 관계를 터득하고, 안심입명의 경지에 도달해 야 한다. 그 내용은 수행자마다 다르며, 저마다 지닌 기존의 틀을 깨는 작업이 될 것이다. 이 심경을 "부처를 만나면 부처(석가모니)를 죽이고 조사(선종의 태 조.달마대사)를 만나서는 조사를 죽여라"라고 말한다. <임제록> 이때 스승으로부터의 방할(봉갈, 여의봉으로 치는 것), 대할(대갈, 큰 소리를 치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 몸을 담그는 순간이나, 또는 포앙카 레가 마차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과도 같은 사소한 계기일 수도 있다. 요동 끝에 계기만 있다면 그간의 요동이 공명을 일으켜 카오스가 발생 하면서 스스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우치는(질서를 감지하라) 것이다. 천재는 99%의 땀(perspiration)과 1%의 영감(inspiration)"이라는데, 이것을 복잡계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즉 99% 의 땀이 머리에 수많은 요동을 겪고 카오스를 야기하고, 그것이 마침 내 카오스의 가장자리에 도달했을 때 진리가 스스로 질서정연해지면서 창조의 결과가 나타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옛부터 많은 수행자들이 관습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산중 생활, 은 든생활 등 상식적인 것이나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살았다. 그러나 이들이 일부러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행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세속의 가치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추구하 며 사회의 변두리에 머물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예민한 감각을 상실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카오스와 질서의 사이에서 창조의 마당을 모색하는 것이 목적이며, 수행의 생명은 바로 새로운 자신을 "창조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발행일(1741호):1999년 11월 9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