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깜찍이중독) 날 짜 (Date): 1999년 11월 3일 수요일 오전 12시 43분 54초 제 목(Title): [퍼옴]카오스이론과 불교7-기하학진리 제 목: 카오스이론과 불교7-기하학진리 PAGE: 1/ 8 ─────────────────────────────────────── 불교와 프랙탈 불교에서는 "제법무아(제법무아)" 즉 어디에나 절대적인 본체, 또는 실체 는 없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어디에나 상대적인 진리(부처)가 있 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선문답에는 "불성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에 "어디에도 없다" 또 는 "어디에도, 아니 개똥에도 있다"는 답이 있다. 수학의 세계에서도 이 선문답은 성립한다. 이미 20세기 최대의 수학자로 일컬어지는 포앙카레(H. Poincare)는 "과학(수학)적 진리란 가설에 불과하다"며 그것도 편리한 가 설이라고 했다. 가설이기에 어디에나 세울 수 있으며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 는 것이다.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절대 진리는 없다. 진리란 어디에도 있다. 진리는 상대적이다. 진 리는 편의적으로 설정할 수 있다. 즉 "가설"이다. 당시 포앙카레의 명제는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었으나 이 사실은 이미 유 클리드의 평행선에 관한 공리 "일정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 그 정직선에 평행선은 반드시 하나만 존재"한다는 것이 "가설"에 불과함이 실증되어 있었다. 위 공리에 반하여 "평행선은 하나도 없다" 또는 "얼마든지 있다"를 공리로 채택해도 유클리드 기하학에 못지 않은 논리정연한 체계가 성립할 수 있음이 증명되어 있었다. 곧 기하학의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다.(수처작주립처개진 <임제록>) 작입처(작립처)는 인간이 정하는 것이기에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기하학에는 같은 것에 같은 것은 또한 서로 같다. 즉 "A=B, B=C 이면 A=C"와 같은 것을 포함하여 여러 개의 공리가 있다. 이들 여러 개의 정리 가 서로 얽혀서 유클리드의 세계, 또는 비유클리드의 세계가 건설되는 것이 다. 이때 그 공리 가운데 하나만이 달라지면 그 세계에서의 명제는 전혀 달라 진다는 묘미가 있다. 이 사실을 간추리면 공리(진리)는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데 이중 어느 부분 하나만이라도 바뀌면 전혀 엉뚱한 세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곧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 가 되는 것, 180 이상이 되는 것, 180 보다 작아질 수 있는 것 모두가 여러 공리들 가운데 하나를 어떻 게 정하느냐에 따라 생긴 결과이다.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 이다"를 절대로 믿는 것은 평행선이 하나밖 에 없는(유클리드) 공간에서의 일이며 그렇지 않은 공간에서는 성립되지 않 는다. 우리는 초등학교 이래 처음 삼각형을 배울 때부터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 "임을 절대진리로 알고 있다. 그러나 뜻밖의 명명백백한 기하학의 세계에서도 그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 었다. 여기에서 제법무아(제법무아)와 연기론(연기론)이 같은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 제법무아(제법무아-절대진리가 없다)이기에 공리를 설정하고 이들 공리의 연기의 결과가 그 공리들로 이루어지는 세계의 진리이기 때문이며, 진리라 고 믿는 내용도 연기의 결과인 것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불경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두 눈을 지닌 멀쩡한 원숭이가 눈 하나밖에 없는 원숭이들이 사는 섬으로 갔다. 그 섬에 있는 원 숭이들은 눈이 두 개인 원숭이를 보고 귀신, 도깨비라고 놀리며 비웃었다. 그러자 그 섬에 살기로 결정한 두 눈을 가진 원숭이는 스스로 자신의 눈 하나를 뽑아 내 버렸다. 각 나라, 각 문화권마다 전혀 다른 가치기준이 있으 며, 자신의 것이 절대 옳다고 믿는 한 서로가 상대의 것을 받아들일 수 없 는 것이다. 코흐곡선과 프랙탈 지난 주에 프랙탈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일즉다다즉일 (일즉다다즉일)을 실 감시켜 주는 코흐곡선으로 진리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코흐곡선은 분명히 1차원의 직선을 단순히 한없이 이쪽 저쪽으로 꺽어서 만든 것이다. 그림과 같이 코흐곡선(K)을 3배 확대한 것(K")을 만들자. 아무리 짧은 선 분에도 무한이 점이 존재하는 것이므로 코흐곡선의 길이는 무한대이다. 측정의 무한대 값이 되는 재미있는 예로 프랙탈 이론의 창시자 만델브로는 "영국섬의 해안선의 길이는 얼마인가"라는 논문에서 대상은 같은 섬의 해 안선인데 자(척)에 따라 달라짐을 실증했다. 우리 나라의 남해안처럼 아름다 운 리아스식 해안선을 가진 프랙탈 섬나라에서 해적을 막기 위해 해안선에 철조망을 칠 계획을 세운다고 가정해 보자. 먼저 정확한 해안선의 길이를 재어 이에 맞도록 철조망을 준비해야 한다. 실제로 두 사람에게 해안선의 길이를 재는 일을 맡겼다. 한 사람은 다리가 길어서 이름이 "타조",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으면서 해안선의 길이 를 쟀다. 그의 보폭은 무려 5m, 걸음수는 1000보, 따라서 해안선의 길이는 5 라고 보고했다. 또 한 사람은 다리가 짧아서 "병아리"인데, 그는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 으로 들쭉날쭉한 해안선을 일일이 따라가며 쟀다. 그의 보폭은 0.25m, 걸음 수는 6만보, 따라서 그가 잰 해안선의 길이는 15 나 되었다. 과연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다. 해안선의 모양은 프랙탈이기 때문에 그 길이는 자에 따라서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고, 궁극적으로 그 길이는 무 한대가 될 수 있다. 가령 한국의 서해안을 개미의 보폭으로 쟀다면 엄청난 길이가 될 것이다. K와 K"는 같은 것이다. 대상은 하나이므로 현미경으로 보거나 K는 K이며, K와 K"는 같고 실제 로 구조적으로도 같은 것이다. 길이는 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림 (가)와 (나)를 비교하면 (나)가 길다. 이때 (나)의 굴곡수를 늘 려가면 (나)는 얼마든지 늘어갈 수 있다. 해안선에 철조망을 치는 데는 내습 해 오는 적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상대가 맘모스와 같이 거대한 것이 라면 철조망을 듬성듬성 쳐도 좋다. 그러나 개미와 같은 것이라면 철조망은 조밀해야 한다. 해안선은 하나인데 상대에 따라 철조망의 길이는 얼마든지 무한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식을 뒤업는 프랙탈(카오스)적인 도형의 길이는 자에 따라서 정해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개미의 발로 쟀을 때, 또 맘모스의 발로 쟀을 때, 또는 100m와 1 의 자로 쟀을 때는 그 길이가 각각 달라진다. 세상은 이와 같은 프랙탈적이다. 제법무아(제법무아) <> 부처는 어디에도 있다. 수학(과학) 진리는 없다. <> 수학(과학) 진리는 가설이다. 특히 프랙탈(카오스)의 절대적인 길은 없다. 자에 따라서 길이가 달라진다. 구름 해안선, 산맥의 모양, .. 자연 뿐만 아니라 사회 변화가 모두 복잡계 이다. 특히 불교가 가장 관심을 갖는 마음은 복잡계이다. 어떠한 자로 인간 의 삶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의미는 0에서 무한대로까지 변할 것이 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발행일(1738호):1999년 10월 15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K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