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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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깜찍이중독)
날 짜 (Date): 1999년 10월 10일 일요일 오후 10시 58분 20초
제 목(Title): [퍼옴]기획연재-카오스이론과 불교6


 제    목: 기획연재-카오스이론과 불교6                              PAGE: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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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랙탈과 일즉다(일즉다) 다즉일(다즉일)
 
 보편과 특수성의 상호교류
 전체는 단순하게
 부분의 총합이 아니다
 
 부분은 이미 그속에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여실지견은
 존재의 본질을 파악해
 전체를 본다는 뜻이다
 
 실존과 일즉다다즉일(일즉다다즉일)
지금 나의 몸에는 수십조  개의 세포가 있고 그 중 일부는 죽고,  또 새로이
태어나면서 나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낱낱의 수많은 인간이
한 생명체로서 인류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과도 같다.  생물학에서는 "개체
의 발생이 계통발생을 반복한다"고 한다.
 
 아기가 모태에서 잉태된 후 자궁  내에서 성장하는 과정이 인류 전체의 진
화과정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존재는 시간과  공간의
양면에서 부분이 전체와 같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의상대사(625~702)는 이 사실을  "일미진중함시방 일념즉시무량겁(일미진
중함십방 일념즉시무량겁-티끌과 같은 곳에 온 우주가 들어가고,  한 순간에
영원이 수렴된다)  <법성게>이라고 했다. 인간을  두고 말하면 개인(일)은
전 인류(다)와 자기닮음의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비록 나의 생명은 짧고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최초의
인간부터 현대  지구상의 전인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인간들이 축적해 온
삶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지혜는 비교와 유별(류별)에서 시작되며,  "일(일)과 다(다)"의 관계를 파
악함으로써 살아갈  수 있다. 모든  생물은 주변에 있는 것들에서  자기닮음
(일즉다, 다즉일)을  파악할 수 있기에  생존이 가능하다. 그것이 곧  먹이를
찾고 자기와 같은 류를 가려내는 능력이기도 하다.
 
 쌀알을 치밀하게 관찰해  보면 모두가 저마다 약간씩은 다르며,  완전히 일
치하는 것은 없다. 이 세상에 나와 완전히 일치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
이다.
 
 그러나 우리는 직관적으로 이들을 다 같은  쌀알이라고 말한다. 자기닮음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기에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 쌀알  하나마다 지닌 고유
의 성질을 무시해서 쌀 전체의 공통된 부분으로  "쌀"을 인식하는 것이다.
자연은 자기닮음으로  꽉 차 있고,  생명체에는 그 본질을 식별하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
 
 이 세상 모든 현상은  자기닮음의 구조(일즉다, 다즉일)를 지니며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수도자는 어느 순간, 하나의 계기에서 대오를 얻
는다. 세상 만사,  전인류적인 거대한 문제의 본질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대
오의 과정은  극적으로 표현되지만, 그  과정은 한결같이 대오의 계기가  된
작은 일 하나에 삼라만상 모두가 내포되어 있음을 깨우치는 일이기도 하다.
 
 그 한가지 (일)로서 전반적,  보편적인 문제(다)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수행
자는 끊임없이 그 하나(일)를 찾는다. 석가모니가 처음  실존(실존)의 아픔을
갖게 된 동기는 생로병사(생로병사)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던 "사문출유(사
문출유)"의 설화로 묘사되어 있다. "왜 생로병사가 있는가"에서 시작해서
누구도 피하지 못하는 이 과정을 살피며 불교 철학을 확립했다.
 
 자기 닮음의 프랙탈
사람마다 겪어야 하는 일, 너도 나도 구별 없이 생로병사, 생로병사 . 생로
병사는 공통이다. 여기에는 이 세상 모든 것의  과거, 현재, 미래에 일관되는
한결같은 되풀이의 구조가 있다. 윤회철학의 발생은 이와  같은 되풀이에 관
한 소박하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에서 얻은 직관을 배경에 깔고 있다.
 
 어느 곳, 어느 시대의 인간에게도 공통적인 이  사실은 "어느 부분도 구조
적으로는 자기닮음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사문출유의 설화는 석가
모니의 인간  해석에 관한 인식의 첫  계기가 "일즉다 다즉일(일즉다 다즉
일)"의 철학의 확립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얼핏 무의미하게 보이는 자기닮음의  구조에서 삶에 관한 보편적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곧 자비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한낱  벌레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 "생로병사" 구조의  자기닮음이다. 동물, 식물, 행성도 대우주도  이 과
정을 밟는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자기닮음의 구조에 태초에서  영원히 이
어지는 생명이 존재한다.
 
 이러한 인식의 단계에서 살아 있는  것, 죽어야 하는 것, 온누리에 있는 모
두가 자비의 대상이  될 수가 있다. 고해(고해)  속에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과 그것을 전제로 하는 삶의 의미를 묻는 일이 불심을 헤아리는 첫걸음
이다.
 
 불교의 "일즉다, 다즉일"을 카오스이론에서는 프랙탈(자기닮음, fractal)이
라고 한다. 프랙탈  도형은 어느 부분을 잘라 내도  전체 모양과 닮아 있다.
가령 고사리를 보자. 고사리 전체의 모양은 고사리 잎사귀와 같은 구조이며,
또한 그 부분은 그 밑 차원의 부분과 같다. 즉 자기 닮음 도형이다.
 
 이 사실은 어느 부분에서도 전체를  재구성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 일부분만 보아도 전체가 어떤 도형인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고
사에는 "한 부분의 무늬(일반)를 보고 전체(전반)를 안다"와 같은 말이 있
다.
 
 이 말은 자연이나 사회현상에는 프랙탈적인 성격이  있음을 뜻한다. "삼라
만상은 프랙탈적이다"는 철학이다.  "모든 것은 부분과 같고  부분은 전체
와 같다" 자기닮음이며 인간의 시각은 직관적으로 프랙탈 차원에서의 질서
를 간파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뭇가지 하나만  보고도 그것이 어떤 나무인지 알 수  있고, 가
죽의 일부만 보고도 그것이 호랑이 가죽인지 고양이 가죽인지 알 수 있다.
금강산의 어느 부분의 사진을  보아도 그것이 유럽의 알프스와 다름을 금방
알 수 있다.  금강산의 어느 부분에도 금강산  특징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각 부분이 그 산 특유의 성질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계(카오스)의 이론에서는 현상을 프랙탈의 입장에서 보고  그 실마리를
찾는데 불교적  여실진견과 맥을 같이  한다. 가령 금강산의 산맥  경사도나
굴곡의 크기 등에서  고유의 수치를 찾아내어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려내기도
한다.
 
 방편(방편)의 철학
여러 요소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 복잡계(카오스)의 현상은  요인들
이 얽혀 이루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여실지견). 이에 대하여 "
있는 그대로"를 대상의 어느  부분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관한 구체적
인 방법을 제시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일즉다, 다즉일"의 철학이다. 복잡한  대상이기에 그 관점은
앞뒤, 상하, . 무한의 각도가 있다. 우리는  무한개의 관점에서 일일이 생각
해야 되는가? 아니다. 일부분을 제대로 볼 때는  전체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
나는 것이다.
 
 전체는 단순히 부분의 산술적인 총합이 아니다. 부분은  이미 그 속에 전체
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복잡하게 무한으로 얽히면서  전개되어 가는 현상
모두를 일일이  볼 수는 없다. "여실지견"은  존재의 본질을 "일(일)에서
파악하여 전체(다)를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불성이 있다".  "심지어 개똥에도 부처가 있을  수 있다"는
선문답도 있다. 삼라만상은  모두 부처를 내포하고 있으며  어느 부분에서도
불성을 감지할 수  있다. "만다라"는 그림의 한 가운데에 큰  부처가 자리
하고, 각 구석 구석 부처를 둠으로써 이 세상을 구현한다.
 *발행일(1737호):1999년 10월 7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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