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깜찍이중독) 날 짜 (Date): 1999년 10월 7일 목요일 오후 11시 39분 00초 제 목(Title): [퍼옴]지명스님의 교리산책-장자와 선의.. 제 목: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장자와 선의 차이점 PAGE: 1/ 5 ─────────────────────────────────────── 지난 호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장자와 선 사이에는 유사점이 많다. 그렇 지만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차이점이 크게 드러난다. 우선 자연, 천성(천성), 천리(천리), 또는 천명(천명)을 어떻게 수용하느냐로부터 장자와 선은 완전 히 방향을 달리한다. 장자는 "대종사"편에서 이런 말을 한다. "자기가 태어난 까닭을 분별하 지 않고 죽어야 하는 이유를 따지지 않는다. 삶과 죽음을 특별히 선택해서 쫓지 않는다. 자연의 변화에 따라서 무엇이 되든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인 다" 장자가 안심입명을 얻는 방법은 천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응이다. 자연이라는 간판을 걸고 죽음, 고독, 고통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천명에 아무런 의심을 품지 않고 따라야 한다. 최고의 덕은 자연의 천성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장자는 천성 지키기의 중요성을 백년 묵은 나무의 비유로 설명한다. 백년 자란 나무를 잘라서 용도에 적합한 부분은 술그릇을 만들어 좋은 색을 칠해 서 장식하고, 쓸모 없는 부분은 땔나무 감으로 버렸다고 할 때, 화려하게 꾸 며진 나무나 버림받은 나무가 천성을 잃은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인의예지(인의예지)를 잘 지키든지 아니면 인륜도덕과 법을 어기면서 못되게 살든지, 양쪽이 천명을 어긴다면 그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장자는 천성과의 조화를 이루어 편히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것이 양생술이다. 종교적인 도교가 장자의 이 양생술을 확대해석해서 불 로장생의 신선도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러나 선은 어떤가. 우선 고정적인 천 명으로서의 자연은 인정하지 않는다. 우주와 삼라만물의 존재하는데 일정한 질서나 법칙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본래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멋대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동서남북이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만들 어진다는 것을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존재한다는 것도 마찬 가지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 그 과정의 한 단계만을 꼬집어서 그것의 존재를 말하면, 그 순간 그것은 이미 다른 변화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물론 그 변화의 속도가 느릴 경우,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변화하는 것은 확실하다. 선은 장자와 달리, 생사의 천명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생사 그 자체마저도 본래 있는 것이 아닌 인간의 분별심이 만들어 낸 개념으로 생각한다. 삶을 규정하지 않으면 죽음이 있을 수 없고, 더욱이 모든 존재 그 자체를 규정하 지 않는 마당에, 존재의 천명을 들먹일 필요가 없다. 선에서 보면 자연, 천 명, 존재, 생사가 모두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이고 말일뿐이다. 존재, 만물, 생사를 실체적인 사실로 전제하고 말하는 장자와 그것들을 사 람의 미망심이 만들어 낸 분별일 뿐이라고 말하는 선이 같을 수가 없다. 둘 째 중생구제라는 종교성에서 장자와 선은 크게 갈라진다. 노장사상은 두 방 향으로 전수되었다. 철학적인 도교와 종교적인 도교이다. 철학적인 도교는 말 그대로 노장철학에 머물러 있고, 종교적인 도교는 불 로장생의 신선술을 가르친다. 장자의 사상에서 있지도 않는 종교성을 찾으 려고 하다 보니, 장자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신선도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장자>라는 책이 전하는 철학적인 도교에서 본다면, 중생구제의 종교적인 사상은 강하지 않다. 스승이 제자를 가르쳐 불조(불조)의 혜명(혜명)을 전하고 중생을 구하려는 선과는 크게 다르다. 천명과 종교성에서의 입장 차이는, 자족(자족)의 상태 나 그것을 누리는 면에서도 차이점을 발견하게 한다. 장자는 천명 내에서의 순응으로 평화를 얻는 반면에, 선은 천명과 생사로부터 초탈하려 한다. 장자의 도인은 일단 고통의 현실로부터 도망치고자 하지만, 선의 도인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고통의 세계로 뛰어들 수도 있다. *발행일(1735호):1999년 9월 21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