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valley (이 상 제) 날 짜 (Date): 1999년 6월 23일 수요일 오후 09시 26분 06초 제 목(Title): 그들에게 지난 몇일 사이에 많은 글들이 올라왔습니다. 글들의 흐름은 글쓴이들의 감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흐름은 강물과도 같아서 계속해서 흐릅니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반응들이 일어나고, 호흡이 거칠어지고. 하지요. 꿈에 대해 이야기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들>이 휘말려 들어 있는 이 불교보드의 흐름이 바로 꿈입니다.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면서, 이런 저런 의견도 내놓고 싸우거나 질문-대답도 합니다. <그들>은 지금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한달 뒤, 일년 뒤, 십년 뒤면 까맣게 잊혀질, 부질없는 꿈입니다. 큰 병이 들거나 죽음에 닥치게 되면 훌훌 털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자기를 깨달은 사람들은 꿈 속에 있어도, 흐름을 타더라도 오로지 한 가지만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참나眞我입니다. 일년 뒤, 십년 뒤에도 항상 참나를 보고 있기에 자기를 망각하는 법이 없습니다. 흐름의 흔들림에 물들지 않습니다. 깨어있다,라는 말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항상 깨어있다는 뜻입니다. 그valley는 <그들>의 잠꼬대에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의 관심은 한 두명의 그/그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글들을 남기는데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대체 왜 깨달아야하는가?"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냅둬, 이대로 살다가 죽게."하고 말이지요. 하지만 별 상관없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그는 계속 그만의 작업을 진행할 것입니다.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작업은 거의 종착지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가 올리는 글들은 읽고 싶은 분들이 읽겠지요. 그의 짧고 긴 글들과, 그의 개인적인 사람됨에 대해 각자 나름의 판단을 내리든 내리지 않든, 판단했을 경우에 그 판단으로 인해 창조되는 특정한 관점과, 그로 인한 차원의 체험을 끌어들이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고 책임입니다. 만일 그 판단이 글로 표현되었을 경우, 그것이 무지에 기인한 것이라면 그는 철퇴를 가할지도 모릅니다. 언제까지나 무지의 꿈 속에서 식은 땀을 흘리며 허우적대며 헛소리하는 것보다는, 당장은 좀 아프고 분하더라도 몇대 두들겨 맞고 꿈깨는게 훨씬 낫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차원의 현실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If I dream about you it is illusory. If I see you it is real. But if I dream about your absence or I see your absence, there is no differe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