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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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janitor (X-janitor)
날 짜 (Date): 1999년 6월  7일 월요일 오후 11시 06분 05초
제 목(Title): 결심



루블린의 랍비가 이끌던 하씨딤 중 한 사람이 한번은
안식일부터 그 다음 안식일까지 단식을 하였다. 금요
일 오후가 되자 목이 말라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두 시간만 더 견디면 될 것을 가지고 자기가 한주
일 내내 해오던 일을 망치려 할 판임을 순간 깨달았
다. 물을 안마시고 그냥 우물에서 물러섰다. 그러자
어려운 시련의 고비를 넘겼다는 자만심을 느꼈다. 
이것을 깨닫자 그는 [내가 차라리 가서 물을 먹는 것
이 마음을 교만에 빠뜨리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속으
로 생각했다. 그래서 도로 우물가로 갔는데, 허리를
굽혀 물을 길려고 했더니 갈증이 없어졌다. 안식일이
시작되자 그는 스승의 집을 찾아갔다. 문턱을 막 넘
는데 랍비는 그에게 [쪽모이]하고 호통하더라는 것이
다. 

젊어서 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을 때 스승이 열심
한 제자를 다루는 모진 품에 나는 놀랐다. 제자는 어
려운 고행을 해내느라 최선을 다한다. 중단하려는 유
혹을 받고도 그 유혹을 이겼는데, 그 고생을 하고 나
서 고작 받은 보상이라고는 스승의 꾸지람뿐이다. 하
기야 제자의 첫째 애로는 영신을 누르는 육신의 힘 때
문이었다. 하지만 둘째 애로는 참으로 고상한 동기에
서 비롯된 것이었다. 성공을 위해 자만에 빠지는 것
보다는 차라리 실패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어
찌 내심의 이런 고투 때문에 꾸지람을 들어야 한단 말
인가. 그것은 인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
닐까? 

오랜 훗날 (오래다 해도 벌써 이십 오년 전이 되지만
) 전승된 이 이야기를 나 자신이 되풀이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인간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이야기는 아님
을 알았다.

루블린의 의인은 고행을 반기는 사람이 아니었던만큼
제자의 단식은 그의 호감을 사기 위한 것일 수는 없었
고, 제자 자신의 영혼을 더 높은 경지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것이었다. 단식이 인격ㅅ을 도야하는 첫 단계에
서는 이런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나중에도 삶의 중요
한 고비에서는 그렇다고 달관자 자신도 시인한 바였다.

제자가 하겠다고 나서서 하는 일이 되어가는 품을 뚫
어본 스승이 그에게 한 말의 참뜻은, [그런식으로 해
서는 더 높은 경지에 제대로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었다. 제자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할지도 모르는
무엇인가에 대한 경고였다. 그 <무엇>의 내용은 분명
해진다. 꾸지람을 받은 것은 내친 걸음을 되돌렸다는 
점이다. 머뭇거리고 망설이는 거동이 석연찮아 못마땅
했던 것이다. <쪽모이>의 반대는 <통째>로 된 일이다.
다만 어떻게 하면 일을 <통째>로 할 수 있는가. 한마음
으로 하면 된다.

그렇다 치더라도 제자가 너무 모진 다스름을 받지 않
았는가 하는 생각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세상 돌
아가는 것을 보면 어떤이는 <본성>으로 그런지 <은총>
으로 그런지 아뭏든 한마음, 통째로 된 마음을 가졌
기 때문에 한결같은 일, 통째로 된 일들을 하는데, 그
것은 그렇게 생긴 마음이 움직여 주는 덕분이다. 그런
거 하면 어떤이는 여러 갈래로 복잡하고 갈등이 있는
마음의 임자라서 필연적으로 그 행동도 그렇게 된다. 
행동의 온갖 애로와 불안이 마음의 애로와 불안에서
비롯된다.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행동으
로 드러난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라면 살아나가다가 세운 어떤 목표
로 가는 길에 닥쳐오는 유혹을 극복하려고 노력할밖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하기로 한 일을 하면서 그럴 때
마다 정신을 차려 흔들리는 마음을 잡고 다시 목표에 
전념하는 도리밖에 없지 않은가? 더 나아가서 이야기
의 주인공의 경우처럼 자만을 느끼게 된다면 영혼을 구
하기 위해서 목표를 희생할 용의를 가질 수밖에 있겠는
가.

이런 물음에 비추어 이야기를 다시 되새겨보아야 비로
서 달관자의 비난에 담긴 가르침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다. 그 가르침이란 사람이 능히 자기 마음을 하나되
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갈래로 복잡하고 갈등이
있는 마음도 그럴 가망이 있다는 가르침이다. 사람 마
음의 핵심, 저 영혼 깊이에 있는 신적인 힘은 마음에 
작용하여 변화를 일으켜 서로 엇갈리는 힘들과 여러 요
소들을 하나로 묶고 융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사
람이 비범한 일을 하겠다고 나서기 <전>에 이런 통일이
이루어져 있어야 한다. 하나된 마음으로 해야만 쪽모이
가 아닌 통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달관자가 탓하는 것은 제자가 우선 자기 마음
도 통일하기 전에 일을 벌였다는 점인데, 한마음이란 
결코 일의 중도에서 얻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고행으로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고행이 비록 정화하고
집중시키기는 하나 목적에 이를 때까지 영혼의 공적을 
보전해주지는 못한다. 영혼을 자신의 모순에서 지켜주지
는 못한다.

물론 잊어서는 안될 것이 하나 있다. 영혼의 통일이 결
코 결정적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마음이 하나인 사람도 가끔 내심의 어려움을 겪듯이, 하
나된 마음을 얻느라고 안간힘으로 고투하는 사람도 역시 
하나됨을 완전히 얻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한마음으로 하는 일은 내 마음에 작
용하여 새롭고 더 깊은 하나됨으로 나를 이끌어주어, 온
갖 도는 길을 거쳐서라도 나로 하여금 전보다는 든든하
고 꾸준한 하나됨을 얻게 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사람
이 자기 마음을 믿을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른다. 이제는
하나됨이 그만큼 커져, 갈등을 무난히 이겨내기 때문이다.
그런 경지에서도 경계심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것은 이
제 태연해진 경계심이다.

하누카절의 어느날 리신의 랍비의 아들 랍비 나훔이 생각
지도 않은 때에 서당에 들어와 보니 제자들이 그 시절 풍
습대로 장기{체커, 열두말로 노는 서양장기}를 두고 있엇
다. 제자들은 의인을 보자 무안해서 자기 두기를 그쳤다.
그러나 스승은 인자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네들 
장기 두는 법을 아나] 하고 물었다. 제자들이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하자 그는 물은 말에 스스로 이렇게 답하였
다. [그래, 내가 장기두는 법을 말해주지. 첫째 규칙, 한
꺼번에 말을 두번씩 놀리지 못함. 둘째, 앞으로만 가야지
뒤로는 가지 못함. 세쟤, 저 쪽 끝줄에 가 닿으면 어디든
마음대로 가도 좋음.]

다만, 영혼의 통일이라는 말에서 영혼이 영육으로 된 사
람 전체를 뜻함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오해다.
육신의 모든 힘과 몸의 모든 지체가 하나되지 않으면 영
혼도 하나될 수 없다. 바알 셈은 [네 손이 찾아 하는 일
을 네 온 힘을 다하여 하라]는 성서 귀절을 이렇게 풀이
하였다. 어떤 일을 하든 온몸으로 해야 한다. 사람의 혼
백이 남김없이 거기 참여하여야 한다. 이처럼 영육이 하
나가 된 사람이라야 일을 통째로 하는 사람일 수 있다. 

마틴 부버의 "하씨딤의 가르침에 따른 [인간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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