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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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valley (이 상 제)
날 짜 (Date): 1999년 6월  4일 금요일 오후 07시 34분 01초
제 목(Title): Re: 의식회수


......

좋은 말씀입니다. 다손님의 견해는 해당 구절에 관한 한 정설에 가까운 것입니다.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이라는 석가모니불의 말씀을 진리로서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자 하는, 듣는이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말씀을 이해하였다고 해서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을
다른 사람에게 진리로 설할 수 있을까요? 유안이비설신의 유색성향미촉법의
상태에서 무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꿈을 꾸고 있는 상태에서 깨어있는 세계를
논하는 것과 같이 공허한 것입니다.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을 진실로
알기 위해서는 거기에 들어가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관심은 거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쉴 수 있느냐 없느냐는 번뇌를 제거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는 
者ego의 관점입니다. 이 ego는 최후의 번뇌에 해당되며, 번뇌의 뿌리입니다.
마하리쉬의 표현으로는 '나라는 생각'입니다. 번뇌의 불길은 그것을 바라보거나
제거하려는 者ego가 있을 때, 활활 타오를 수 있습니다. 
번뇌는 외부로 향하는 주의attention덕분에 찰나찰나 타오를 수 있습니다.

주의를 회수하고 의식을 무에로 돌려 쉬게 되면 번뇌는
존재할 근거조차 없어져버립니다. 이것이 돈오돈수의 뜻입니다.

돈오점수는 이 쉼의 자리에서 다시 번뇌로 돌이켜보니, 꺼져가던 불꽃이
힘을  회복하게 되고, 아차 싶어 다시 꺼뜨리기 위한 배전의 노력을
경주하기 때문에 나온 말입니다. 그러나 노력이 번뇌라는 불꽃에게는 
기름과도 같은 것임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곧 돈오돈수는 영원히 쉬는 것이요, 돈오점수는 본성을 깨달은 뒤에 남은 미혹에 
주의를 쏟은 실수로 인해 다시 번뇌의 불길에 휩싸여버리고만 것이지요.
그런데, 돈오돈수론자들조차도 이러한 실수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칼한 일입니다.

감각과 감정, 생각들이 불연속적으로 찰나찰나 변해가며 재창조되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거기에 주의attention를 쏟아붓고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감각,감정,생각들의 총체를 '나'라고 믿고 거기에 중심을 둡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진정한 중심이 아닙니다. 진정한 중심, 眞我는 방치되어
있습니다. 
                                Let your aloneness become a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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