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parsec (먼 소 류) 날 짜 (Date): 1999년 5월 11일 화요일 오후 10시 37분 59초 제 목(Title): Re: 먼소류님께 영원한 객체, 혹은 가능태의 관점에서는 경계도, 벗어남도, 벗어나는 자도 없을지 모르지만 현실세계, 구체화된 세계에서는 여전히 나와 남의 구별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생물의 기본 조건 이기도 하지요. 구체화된 생물로서의 인류, 사회, 자연은 구제받을 길이 없군요. 오직 가능태들의 모형을 머릿속에 만들어 가지고 그것이 진짜 나라고 자기최면을 거는 수 밖에 없겠습니다. 일종의 마약과 같이 그런 자기기만으로 현실의 냉혹함을 외면하고 무기력한 정신을 위로하며 타인의 고통을 나에게 투사시켜 그것을 느끼는 척, 이해하는 척 하여 공감과 자비의 연극을 벌이는 수 밖에... 감성... 남의 고통을 보고 그것을 내 것인양 여긴다... 이것은 고통의 경험,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뉴스, 공감하기에 대한 연습과 같은 것들을 필요로 합니다. 세수하다 코 만지듯 쉽고 간단하게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타인의 감각을 직접 감각이 아닌 다른 것을 통해 아는 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우리 뇌에 자동화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넣어져 있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예를 들어 칼에 베어 아파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칼에 베어 고통받는 장면을 보았다면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까요? 재미있는 장난 이상의 것으로 느낄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공감의 연습을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고행을 해야 할까요? 붓다는 고행을 바람직하지 않은 수행방법이라고 주장했으므로 최소한 그것은 불교의 교리와는 맞지 않을 것입니다.(비록 그 자체로는 유용하더라도) 빈 공간이 한데 연결되어 다른 장소의 빈 공간과 막힘 없이 통한다고 해도 현실 속의 경계, 껍데기들은 여전히 갈등과 고통 속에 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그것을 "진화 압력"이라고 하죠. 개체들은 나고 죽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유전정보는 죽음에 의해 걸러진 "더 나은" 정보를 가지고 세대에서 세대로 살아가는 것, 그렇게 해서 최초의 생명으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생명이 소멸된 적 없이 이어져온 것. 그것은 생명의 본질인진 몰라도 개체 생명에게는 끊임없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지구규모의 생명이라는 저거너트의 수레바퀴 밑에 개별 생명들은 몸을 던져 넣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과 갈등들은 그 진화압력을 개체 생명이 몸으로 느끼는 과정이고, 전체 생명의 존속, 혹은 발전을 위해 받는 창조적 고통, 알에서 깨어나는 각성의 고통인지도 모르지요. 그 고통에 의해 의식도 생기고, 인터넷이라는 초의식까지 만들어내고,... (인터넷은 인간의장난감이 아니라 지구 규모의 초의식의 탄생과정이란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문제는 고통이라는 것이 필수적이고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라 해도 우리가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죽음 외에는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만... 생명 전체의 부품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마지막으로 받는 초라한 선물이죠... 한가지 벗어나는 방법은 일단 죽어라 일해서 은행에 한 십억쯤 모아놓고 나머지 인생을 은행이자로 살면서 빈둥빈둥 노는 것인데... 마지막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닥터 케보키안에게 부탁해서 안락사로 끝내면 될테고...쩌비.. 이것도 완벽한 해결책은 못되겠군요. 일단 돈을 벌 동안은 힘들게 일해야 되니까. 그리고 "은행이자"란 결국 누군가는 항상 일하고 있어야 된다는 것을 뜻하니까 고통자체는 사라지지 않겠죠. 생명의 정의가 고통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게 돼 있는 것이라면 고통을 없애는 유일한 길은 지구를 통째로 방사능으로 소독해서 생명을 깡그리 없애버리고 다시는 생명이 탄생할 수 없도록 만드는 길 뿐인데,... 그렇지 않으면 생명체-최소한 인류의 유전자를 개조해서 전부 매저키스트로 만들어 고통 자체를 즐기도록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고통의 정의 자체를 뒤집는 꼴이 되니까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군요. 고통은 피하고 싶은 것인데 고통받지 않는 상태가 피하고 싶은 상태가 돼 버리면 정의상 새로운 고통이 탄생하는 것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고통이 사라지면 진화의 법칙에 따라 고통을 피하기 위한 잔머리, 즉 지능과 의식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결론은 피할 수 없는 것이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