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yonho (Song) 날 짜 (Date): 1995년05월13일(토) 07시36분34초 KST 제 목(Title): 야스퍼스와 포괄자 사상 4 철학적 사유의 파탄 헌데 포괄자 확증의 최후의 방법론적 귀결은 우리의 철학적 사유의 파탄을 의식하는 것이다. 가령 우리가 철학사상을 학문적으로 조탁함에 있어서 포괄자를 생각해 낸다면 그래도 우리는 그 본질상 대상이 아닌 것을 다시금 대상으로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상적 내용으로서 말해진 것을 무효화시키는 그러한 부단한 유보가 필요하거니와, 그것은 언표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의 연구성과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의 태도라고 할 수 있는 저 포괄자의 인지를 그러한 유보에 의해 획득하기 위함인 것이다. 변화하는 것은 나의 지(知)가 아니고 나의 자기의식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모든 본래적인 철학함의 근본특징이다. 대상적으로 규정된 사유를 매개로 하여 그리고 오직 그러한 사유를 매개로 해서만이 포괄자 속으로의 비약이 우리 인간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이 비약은 존재 그것 속에 있는 우리 인생의 기초, 존재 그것으로부터의 인도, 근본기분, 우리의 생활과 행위의 의미 등 이러한 것으로 하여금 의식속에서 작용을 하게끔 한다. 이 비약은 규정적인 사유를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극단에까지 수행함으로써, 우리를 이 사유의 속박에서 풀어 놓아 준다. 이 비약은 일반적인 철학 사상속에 우리의 현전에서 자기를 실현할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다. 존재가 우리에게 대하여 존재하기 위한 조건은 주관과 객관과의 분열 속에서 경험을 통하여 마음에게도 현재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명징성에의 욕구이다. 단지 모호하게만 현재하는 모든 것은 대상적인 형태에서, 그리고 자기를 실현하는 자아의 본질에 의해서 포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존재 그것, 일체 사물의 기초를 마련해 주는 무제약자 조차도 대상성이란 형식에 있어서 눈앞에 나타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 비록 대상성이란 이 형식이 존재 그것에 대해선 본래 부적합한 것이기 때문에 다시금 분쇄되고 그 결과 포괄자가 순수하게 그리고 명료하게 현전에 나타나게 되는 그러한 것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허무주의와 재생 우리의 사유하는 현존재의 근본사실로서의 주관-객관의 분열을 깨닫는 것과 그 본열가운데 나타나는 포괄자를 깨닫는 것은 우리에게 비로서 철학함의 자유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이 사상은 우리을 모든 존재자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그것은 고정화의 모든 막다른 골목에서 되돌아 오기를 강요한다. 그것은 우리을 말하자면 전환시키는 사상이다. 사물과 대상적 인식론과의 절대성의 상실은 이것들 속에 자기의 거점을 두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이것은 허무주의를 의미한다. 언어와 대상성을 통해 자기의 규정성과 동시에 유한성을 획득 하는 모든 것은 오로지 자기만이 현실이며 진리라고 하는 그러한 배타적인 요구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철학적 사유는 오히려 본래적인 존재에의 해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허무주의를 통과하여 가는 것이다. 철학함에 있어서의 우리의 본질의 재생을 통하여 모든 유한한 사물의 저마다 제한된 의의와 가치가 다시금 생겨 나오며, 이 유한한 사물들을 관통해서 가는 길의 불가피함이 확실하게 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이 사물들과의 자유로운 교섭이 그것에 의해서 비로소 가능케 되는 그러한 근거가 획득되는 것이다. 실은 기만적이었던 견고한 것들로부터의 추락은 부동(浮動)할 수 있는 능력이 되고, 심연으로 보였던 것은 자유의 공간이 되며, 외견상 허무인 것같이 보이는 것은 일변하여 그것에서 본래적인 존재가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그러한 것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