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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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yonho (Song)
날 짜 (Date): 1995년05월13일(토) 07시31분11초 KST
제 목(Title): 야스퍼스와 포괄자 사상 2


  포괄자(das Umgreifende)


  모든 순간에 현재해 있는 이 주관-객관의 분열이란 비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여간 전체로서의 존재는 객관일

수도 주관일 수도 없고 주관,객관을 포괄하는 '포괄자'가

아니면 안 되며 그리하여 이 포괄자가 이 분열 속에서 현상

으로 된다는 것만은 명료하다.

  존재 그것이 대상(객관)일 수 없다는 것은 이제야 명료하다.

나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은 포괄자에서 나와서 나에게로

오고, 그리고 나는 주관으로서 포괄자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상은 자아에 대하여 존재하는 일정한 존재이다.  그런데

포괄자는 나의 의식에 대하여 어디까지나 암흑인 채로 남아있다.

그것은 다만 대상을 통해서만이 명백하게 되며, 그리하여

우리가 대상을 보다 또렷이 의식하게 되면 될수록 그것은

더욱 더 명백하게 된다.  포괄자는 그 자신 대상으론 되지

않지만 그거나 자아와 대상간의 분열 속에서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것 자신이 어디까지나 배경인 채로 있으며, 이 배경에서 나와

현상으로서 그지없이 밝혀지지만, 그러나 여전히 그것은

포괄자인 채로 있는 것이다.



  모든 사유된 것의 차별성, 이중의 분열



  헌데 모든 사유 속에는 두째번의 분열이 누어 있다.  규정된

대상으로서의 모든 대상은 그것이 명석하게 사유되는 한

항상 다른 대상과 서로 관계하게 된다.  규정성이란 것은

하나를 다른 것으로부터 구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내가

존재일반을 사유한다면 그때도 역시 나는 그 반대물로서 무를

사유하게 된느 것이다.

  이리하여 모든 대상, 모든 사유된 내용, 모든 개관은 2중의

분열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첫째로 그것은 나 즉 사유하는

주관과 관계하며, 둘째로 다른 대상들과 관계하고 있다.

모든 대상은 사유된 내용으로서 결코 일체일 수도, 존재의

전체일 수도, 존재 그것일 수도 없다.  사유되어 있다는 것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포괄자 밖으로 굴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유된 존재는 자아에게와 동시에 다른 대상에게

맞서있는 매양 특수한 존재이다.

  포괄자란 그러므로 항상 사유되어 있는 것에 있어서 다만

자기의 존재를 알릴 뿐인 그러한 것이다.  그것은 그 자신 직접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 속에서

모든 다른 것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그러한 것이다.



  포괄자 확증의 의의



  이러한 확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사물과 관계하고 있는 우리의 보통일반의 오성이란 척도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이 포괄자의 사상은 부자연스럽다.  세계

내의 실제적인 사물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의 오성은

이 사상에 대해 항거한다.

  사유하면서 모든 사유된 것 너머로 비상하기 위한 방도로

서인 이 근본작업은 아마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대단히 기이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식에

의해 이해 가능하게 되는 그 어떤 새로운 대상의 인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상의 힘을 빌려 우리의 존재의식의

변혁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상은 우리에게 결코 새로운 대상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보통일반의 세계지의 의미에 있어선 공허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형식을 통하여 우리에게 대한 존재자의

현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며, 그리고 동시에 일체의 존재자를

투명해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현상속에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우리의

마음가운데 일깨워 줌으로써 우리에게 대한 대상성의

의미를 변화시킨다.



  포괄자의 양식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포괄자의 개명(개명)을 시도해

보기로 하자.

  포괄자에 대하여 철학하는 것 그것은 존재 그것 속으로 침

입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헌데 이것은 다만

간접적으로만 행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하여

말함으로써 우리는 대상들 가운데서 사유하게 되기때문이다.

우리는 대상적인 사유를 통해서 포괄자란 비대상적인 것을

가리키는 지시자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위에서 우리가 사유하면서 수행한 것은 그 일례이다.  즉

우리는 주관-객관의 분열 - 우리는 항상 그 분열 속에 빠져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밖에서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 을 진술함으로써 그것을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이것은

부적합한 짓이다.  왜냐하면 분열이란 것은 객관으로서 나에게

대립하는 세계내의 사물들간의 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헌데 이 관계는 전연 가시적이 아니며 그 자신 결코

대상적이 아닌 것을 표현하기 위한 한갖 비유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근원적으로 현재해 있는 것에서 상징적으로

더 생각해 가면 이 주관-객관의 분열이 그것 나름으로

다양한 의미를 가진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 분열은 내가

오성으로서 대상들을 지향하고 있는가,  또는 살아있는 현존재

로서 환경을 지향하고 있는가, 또는 실존으로서

신을 지향하고 있는가에 따라 서로 근원적으로 다르다.

  오성으로서 우리는 파악할 수 있는 사물들에게 맞서며,

일정한 대상들로서의 이들 사물에 관하여 부인할 수 없이 확실

하고도 보편타당적인 인실을 가능한 한 가지려고 한다.

  스스로의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생물로서 우리는

보편적인 지식에 결코 동화지지 않는 현재적인 것으로서 감각적,

직관적으로 경험되고, 체험을 통해 현실적이 되는 그러한

것으로 말미암아 당황해 하고 있다.

  실존으로서 우리는 신-초월자-과 관계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실존은 사물들로 하여금 암호내지 상징

으로 화하게 하는 바 그 사물들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는 신과 관계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오성도, 우리의 생명적인 감성도 이 암호 존재의 현실을

파악하지는 못한다.  신의 대상적 존재는 다만 실존으로서의

우리에게 대해서만이 한개의 현실인 것이며,  경험적으로

실개하며 부인할 수 없이 확실하게 사유될 수 있고, 우리의

감성을 촉발하는 그러한 대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 누워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만약 우리가 포괄자를 확증코자 할 경우엔 그것은

곧 몇 개의 포괄적 존재의 양식으로 분류된다.  그리하여

이 분류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은 주관-객관분열의 세양식을

길잡이로 하여 다음과 같이 행해지는 것이다.  즉 포괄자의

양식은 첫째로 의식일반으로서 오성인 바 이 오성으로서

우리는 모두 동일하다.  둘째로 그것은

생명적 현존재인 바 이 생명적 현존재로서 우리는 각각

특수한 개체이다.  세째로 그것은 실존인 바 실존으로서

우리는 역사성에 있어서 본래적으로 우리자신이다.

  나는 이런한 확증에 대하여 완전한 설명을 해드릴 수는 없다.

여기선 다만 '포괄자란 것은 존재자신으로서 생각될 경우엔

초월자(신) 및 세계라고 불리우고, 우리자신인 것으로서는

현존재, 의식일반, 정신, 실존이라고도 불리운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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