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10월 11일 일요일 오전 11시 20분 17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59)-상즉(과 보현행원 번호 : 15/3434 입력일 : 98/10/09 10:56:35 자료량 :71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59)-상즉(相卽)과 보현행원 우리는 지금까지 화엄사상을 상대적인 것들이 차별이 없이 서로를 포함하 고 있다는 상즉상입(相卽相入)으로 압축해 왔다. 이의 예문을 화엄경의 ‘마 음과 부처와 중생의 셋이 차별이 없다’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 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만난다. “주객(主客), 일다(一多), 광협(廣狹), 대소(大小)등이 각기 둘이 아니고 총 별(總別), 동이(同異), 성괴(成壞)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그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을 알면 이 고통스 러운 IMF시대를 헤쳐 나가게 해 줄 튼튼한 직장과 많은 돈이 생기는가” 사람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이익되는 것이 아니라면 좋아하지 않는다. 나 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 누구나 그렇다. 화엄의 상즉상입 사사무애 (事事無碍) 사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세상 사람 누구에게나 이익이 되는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던가. 주와 종, 전체와 개별, 성장하는 이와 노쇠 하는 이가 다같이 여래성이 출현한 상태와 같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던 가. 그런데 입으로 원리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것을 실천할 때 나 와 남, 세상 사람 모두가 다같이 좋도록 위하려는 대원(大願)의 행동이 나온 다. 바로 화엄경의 보현행원이다. 40권본 화엄경의 마지막에는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이 있다. 53명의 선지 식을 찾아서 보살도를 배우는 선재동자는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만난다. 보살도를 완성하는 길로 보현보살은 선재동자에게 열가지의 행원을 설한다. 부처님께 예경 찬탄 공양 청법 등을 행하고,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 를 바라면서 부처님을 닮도록 닦아 나가야 한다. 자신의 업장을 참회하고, 남이 잘 되는 일을 같이 기뻐하며, 끝까지 중생의 뜻에 거스르지 않고 수순하고, 자신이 지은 공덕을 남김 없이 모든 중생을 위해서 회향해야 한다. 부처님을 잘 모시고 따르는 일과 중생을 위해서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보 현행원은 끝날 기약이 없다. 중생이 남아 있을 때까지 영원히 계속된다. 온 허공계, 중생계, 중생의 업, 중생의 번뇌가 다할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원을 세우기 때문이다. 마치 지장경에서 지장보살이 중생이 남아 있는한 성 불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과 같다. 화엄의 성기 사상에 있어서, 세상상 모든 것은 여래성이 출현해서 나타내 보인 것이다. 산하대지가 그대로 부처님의 몸이다. 법신이라고 여겨지는 화 엄경의 부처님은 직접 몸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직접 말할 필요도 없다. 그 래서 항상 다른 입을 빌려서 법을 설한다. 이 법신 부처님에게는 과거와 미 래의 모든 부처님이 포함되어 있다. 이미 불도를 이룬 부처와 아직 불도를 이루는 과정에 있는 부처가 모두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보현행원에서 부처님을 예경하고 찬탄하고 공양한 다고 할 때, 그 부처님은 이미 이룬 부처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으로 이 루어질 부처님도 포함 된다. 보현행원에서 중생의 뜻에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이 다 포함되어 있는데, 보 통의 결심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아들의 손가 락을 자르고, 아들에게 독극물이 든 요구르트를 먹인 아버지들을 어떻게 용 서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상상하기조차 힘든 가증스러운 일을 행하는 사람 들은 헤아릴수 없이 많다. 어떻게 저들의 뜻을 남김없이 거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든 중생을 아직 미숙한 상태이지만 신분이 확실한 부처로 볼수 있을 때 에만 악인들에게도 수순할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을 받든다는 것과 중생에 게 수순한다는 것은 마침내 같은 말이 되어 버린다. 중생을 위하는 것이 바 로 미래 부처를 모시는 것이다. 화엄사상의 극치는 중생의 업과 번뇌가 남아 있는한 언제까지나 모든 부처 님을 받들고 모든 중생의 뜻을 따르겠다는 보현행원에 있다. 생각해 보라. 내가 아무리 큰소리를 치고 변덕을 부리더라도, 속으로는 내 자신이 어리석 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낀다. 그런 나를 옆에서 부처로 받들고 내 뜻에 거스르지 않는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여기서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다름없다는 즉(卽) 사상이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된다. *발행일(1692호):1998년 10월 6일 , 구독문의 (02)730-4488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