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이 상 제) 날 짜 (Date): 1998년 9월 14일 월요일 오후 06시 59분 18초 제 목(Title): 지장보살의 서원 지장보살님의 서원, "지옥이 텅비는 날까지 지옥에 남아 제도하리라." 참 원대한 서원입니다만 정확한 의미에서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그런 지옥은 없으므로 이 서원은 '스스로 만든 지옥의 환상 속에 허우적대는 중생을 모두 도와 깨우리라'는 대선지식의 서원이라 하겠습니다. 옛날에 어떤 큰 스님에게 제자스님이 물었습니다. "스님! 스님도 지옥에 갑니까?" 그러자 선사가 대답합니다. "제일 먼저 들어간다." 뜨악해진 제자는 다시 묻습니다. "스님은 깨친 분인데, 어째서 그러합니까?" 선사가 고함을 지릅니다. "야 이놈아! 내가 아니면 누가 널 제도하겠느냐?" 제자가 굳은 결심으로 일어서리라 할 때까지 선사는 기다립니다. 지장보살도, 관세음보살도 스스로 해탈하고자 하지 않는 중생은 도와줄 수가 없고, 도와줄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스스로 돕지 않는 자를 도운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지옥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스스로 만든 것임을 깨치지 못하면 빠져나올 수도 없습니다. 깨치기 위해서는 현재의 고통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고통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고통을 종식시키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스승을 찾고, 말씀을 찾아 돌파구를 마련하여 떨치고 일어서야겠다는 결심이 있어야만 합니다. 이 결심까지가 어렵고 험한 길일 수 있습니다. 영혼이, 스스로 만들어낸 수많은 신념체계들에 에워싸여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세수하다가 코만지는 것처럼 쉬운 일이 그토록 오랜 세월이 걸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 신념체계들의 두껍고, 보이지 않는 벽을 불교에서는 업karma이라고 합니다. 업은 아뢰야식, 장식, 제 8식 등으로 불리지요. 이 업의 투명한 층이 불성을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상시 의식은 이 아뢰야식에 의해 가까스로 투과되어져 나온 반사된 의식 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생을 업생이라고도 하지요. 업에 의해 삶과 죽음을 돌고돈다는 말입니다. 의식되고 감지되는 신념들 말고, 투명한 것들은 대개가 '당연한 진리'의 모습을 하고,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사고체계의 기반에 자리잡아 주인노릇을 해왔습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라는 식의 무의식적인 신념들은 한 집단, 민족, 국가, 지구적 의식의 필드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는데, 근래에 우리나라의 집합적 의식에 잠재해 있던 것들이 급속하게 붕괴되고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집합의식의 필드가 이끌어낸 집합경험들이 끝나는 국면입니다. 각종 재난들을 끝으로 필드는 와장창 무너져버립니다! 천재지변, 경제공황 등. 한 싸이클이 끝났는데, 아직 집합의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모든 과정은 다시 재현됩니다. 이것이 역사의 윤회입니다. Ask not who you are,but whom you really wanted to b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