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7월 7일 화요일 오후 12시 34분 37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연기와 성기 번호 : 16/3195 입력일 : 98/07/07 10:28:50 자료량 :66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연기와 성기 마음의 분별에 의해서 세상이 벌어진다는 유식계통의 연기론은 크게 세가지 로 나눌수 있다. 아뢰야연기론(阿賴耶緣起論), 진여연기론(眞如緣起論), 그리 고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 즉 성기론(性起論)이다. 미혹해서 업을 짓고 고 통을 받는다는 업감연기론에 유식은 그 연기의 주체로 아뢰야식을 추가시켜 서 아뢰야연기론을 만든다. 그런데 이것은 개개인의 마음상태는 잘 설명하 지만, 세상 전체를 한 뭉치로 엮기에는 미흡한점이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아뢰야식 뒤에 있는 진여를 도입한다. 진여가 무명의 영향을 받아서 세상이 벌어진다는 진여연기론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것에도 약점이 있다. 진여라는 본체가 무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현실을 낳는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본체와 현실은 하나가 아닌 별개의 것이 된 다. 다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래성(如來性)의 본체가 그대로 현실로 나 타난다는 법계연기론을 만든다. 법계연기론은 바로 여래의 본성 자체가 삼라만물로 변환해 나타난다는 성 기론인 것이다. 마음에도 겉과 속이 있다. 겉은 상(相)이고 속은 성(性)이다. 겉은 현실이고 속은 본체이다. 세상은 마음의 장난에 의해서 생겨난 것이니, 겉마음의 움직임은 바로 현실이 되고 속마음의 상태는 바로 본체가 된다. 불교에서는 모든 사물을 법(法)이라고 부르는데, 유식에 있어서 그 사물 또 는 법은 바로 마음이다. 그래서 법상(法相)에 관심이 많은 이는 마음의 겉 즉 현실이 어떻게 벌어 지는가를 설명하려고 하고, 법성(法性)에 관심이 많은 이는 마음의 속 즉 본 체가 어떤 상태에 있는가를 설명하려고 한다. 종파로 따져서 구별한다면 전 자는 법상종(法相宗)에 속하고 후자는 법성종(法性宗)에 속한다. 유식계통에 서의 법성종은 바로 화엄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화엄종이 될 것이다. 법상종은 아뢰야연기론을 화엄종은 성기론을 각기 편다. 예를들어 연기와 성기의 시각차이를 구별해보자. 지금 우리 국민전체는 경제적으로 아주 어 려운 처지에 있다. 내 주변에 부도를 맞은 사람과 실직자들이 늘어간다. 신 도집에 전화를 걸면 남편이 받는 경우가 많다. 나갈 직장이 없기 때문에 집 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부인에게 일하지 않고도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느냐고 묻는다. 부인은 꼭 돈만을 위해서 직장에 나가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남편이 집에 서 한숨만 쉬고 있으니 속상하고 답답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유식을 적용해서 저 실직자의 고통을 생각해보자. 실직의 현실은 가 상적인 마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 처지의 어려움을 일단 인정해야한 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 실직자 가족이 겪는 고통이 실재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자. 아뢰야연기론의 입장에서는 미혹한 마음이 ‘나’ ‘내것’ ‘즐거움’에 집착해서 고통을 지어서 느낀다는 쪽으로 몰고 갈 것이다. 실재하지도 않은 나를 내세우고 그것의 즐거움까지 책임지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성기론은 고통을 부정하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당당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저 실직자의 현실은 고통이 아니라 바로 여래의 성품이 다양 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경제를 회복하고 직장을 다시 찾도록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오늘을 이겨야 내일도 이길수 있다. 지금 당장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받아들이는데서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고통을 착각이나 여래의 화현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마음을 추스르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화엄종이 성기론을 편다고 해서, 〈화엄경〉 특히 「십지품」에 나오는 ‘ 모든 세계는 허망하니 다 마음이 지어낸 것이니라’고 하는 구절의 저 마음 이 진심(眞心) 즉 여래의 마음으로 볼수 있는것만은 아니다. 범어 원문을 보 면 거짓의 마음 즉 망심(妄心)에 가깝다. 그러나 그 마음이 망심이라는 확정도 없고,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풀이하 기도 했다. 불교는 참으로 오묘하다. 같은 불경에 의지하더라도 법상의 연기 론과 법성의 연기론이 공존할수 있는 것이다. *발행일(1680호):1998년 7월 7일 , 구독문의 (02)730-4488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