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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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리)
날 짜 (Date): 1998년 5월 23일 토요일 오후 12시 34분 14초
제 목(Title): 도올 벽암록 제 3강화-5/신동아 


 [13]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3화 -5

   이 백장의 마지막 한마디에 나 도올은 거대한 깨달음의 눈물을  쏟
   았다. 내가 이 공안을 접한 것은  20대, 저 푸른 하늘보다 더  푸른 
   나이였다. 나는 이  공안을 우  징시옹(吳經熊)선생의 명저, 『The 
   Golden Age of Zen(선학의 황금시대)』이라는 영어책 속에서 읽었
   다. 
   
   이 공안 역시 교육자 마조의 방편설법의 탁월함이 잘 드러나 있다. 
   인간이 구극적으로 해탈해야 할 세계는 논리의 인과의 고리가 아니
   라 희로애락의 감정의 고리다. 코를  비트는 행위, 그 이상  감정의 
   행위는 없다. 그것은 인간 감정의 저변에 대한 최상의 언어다. 
   
   마조의 방편은 논리적  언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새가 날아갔다고 
   논리적으로 구성한 회해의 언어는 과연 감정의 저변에서부터  우러
   나온 해탈의 외침이었을까? 허나 이 공안에는 구체적 언어의 오감
   이 없다. 범상의 인과적 논리의 오감이 초월되어 있다. 코를 비트는 
   그 언어, 그것은 하나의 詩다. 그리고 詩를 보내고 받는 감정은  심
   미적으로 순화되어간다. 
   
   너무도 아름답다. 너무도 평화롭다. 너무도  순진하다. 어린애 같은 
   천진한 감정이 노출된 고승들의 따사로운 정이  느껴진다. 나는 눈
   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인생의 최후의 진실은 이것이다! 『아까 나
   는 울었고 지금 나는 웃고  있다』 우리가 우리의 삶에 대하여  그 
   이상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으랴! 마조가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은 『자아의 발견』이었다.  감정적으로 꾸밈없는  자아의 발견! 
   禪은 자아의 발견이다. 요즘같이 감정이 메말라  있고 이토록 비틀
   린 이 세상에 禪! 그 이상 뭘 더 바랄쏘냐!
   
   
   다음날, 마조는 대중 앞에서 설법하는 집회에 나가야 했다.  마조가 
   대중 앞에 마련된 법석에 오르자 대중들이 말씀을 들으려 모여들었
   다. 그런데 백장이 나가서 법석에 오르는  카펫을 말아 걷어치워버
   렸다. 그래서 마조는 하는 수 없이 다시 법석에서 내려와야만 했다
   (뭔가 카펫을 말아버리면 법석에서  내려와야 하는 의례적  약속이 
   있는지―. 하여튼 마조에게는 당황스러운  백장의 행동이었을 것이
   다).
   
   백장은 마조의 뒤를 따라 방장실로 가는데, 마조가 물었다 :
   
   『아까 난 말도 시작하지 못했는데 왜  카펫은 걷어치웠냐?』(我適
   來未曾說話, 汝爲甚便使卷柬席?)
   
   백장은 단지 대꾸했다 :
   
   『어제는 스승님께서 코를 비틀어주셔서 코가 더럽게 아팠습니다』
   (昨日被和尙蜚得鼻頭痛.)
   
   마조가 물었다.
   
   『어제 어디다 마음을 썼냐?』(汝昨日向甚處留心?)
   
   백장은 또 아랑곳없이 대꾸했다.
   
   『오늘은 코가 아프지 않습니다』(鼻頭今日又不痛也.)
   
   마조가 말했다.
   
   『어제 일을 깊게 깨달았구나!』(汝深明昨日事!)
   
   백장은 엎드려 크게 절하고 물러났다(師作禮而退.)
   
   
   자치기라는 게 있다. 우리 어릴 때, 동네에서 가장 흔히 놀았던  자
   치기! 자치기의 묘미는  타이밍에 있다. 자치기는  긴 막대와 짧은 
   막대를 갖고 논다. 그런데 짧은 막대의 양끝은 비스듬히 깎여 있어 
   빈틈을 형성한다. 긴 막대로 그 빈틈을 때려 튀어오르는 놈을 냅다 
   후려치는 경기다. 그러나 잘못하면 헛스윙으로 끝난다. 선의 모멘트
   들은 바로 이 「자치기의 예술」이다. 짧은  막대가 허공에 튀어올
   랐을 때 바로 치면 맞질 않는다. 그놈이 튀어 올랐다 그 긴장이 풀
   리며 떨어지려 하는 순간, 긴 막대기의 스윙은  바로 그 짧은 막대
   의 허리를 후려갈겨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조의 교육방법
   이다. 
   
   
   汾州無業(760~821)이라는 또 하나의 제자는 원래 律宗에 속한 대학
   자였다. 유난히 체구가  컸고 목소리가 낭랑하여  타인을 위압하는 
   힘이 있었고 아주 건장한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다. 그는 대장경을 
   통달할 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 商州(陜西省) 上洛 사람, 속성은 杜
   氏, 아홉살 때부터 이미 절밥을 먹었다. 마조는 분주무업을 처음 봤
   을 때 그의 거대한 체구와 에밀레종보다 더 크게 울리는  목소리에 
   너무도 깊은 인상을 받고 한마디 건넸다.(祖覩狀貌奇偉, 語音如鍾乃
   曰)
   
   『아~ 정말 우람찬 가람이군!  그런데 속엔 부처님이  보이지 않는
   군』(巍巍堂堂, 其中無佛.)
   
   
   아마 체구가 크고 목소리가 우람차기로 말한다면 마조를 당해낼 자
   가 없을 것이다. 헌데 그 마조가 분주  앞에서 위축되는 느낌을 받
   았을지도 모른다.
   
   분주는 그 말을 듣자 곧 우아하게 무릎을 꿇고 절하며  말씀드리기
   를 : 
   
   『三乘의 문자와 배움을 대강 다 훑어보고  그 뜻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선문에선 마음이 곧 부처라  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왔지만 
   실로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
   십시오』(三乘文學, 粗窮其旨. 常聞禪門卽心是佛, 實未能了.)
   
   그러자 마조는 말했다.
   
   『모르겠다고 하는 바로 그 마음, 그것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다. 그 
   외로 별개 없다』(錚未了底心, 卽是. 更無別物.) 
   
   그래도 깨닫지 못한 분주는 계속해서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 몰래  심인을 전했다  하는데 그게  뭡니
   까?』(如何是 祖師西來密傳心印?)
   
   『그대 지금 쓸데없는 데 정신이 팔려 있구먼! 지금은 이만 물러가
   고 다음 기회에 다시 오게나!』(大德正鬧在. 且去, 別時來!)
   
   분주는 하는 수 없이 맥이 풀려 되돌아서서 저만치 나가려 하는데, 
   갑자기 마조가 큰소리로 부른다.
   
   『여보게!』(大德!)
   
   이때 다시 분주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마조는 하늘이 무너져라 
   소리친다!
   
   『뭐꼬?』(是甚匿?)
   
   분주, 이 순간 대오를 얻는다.
   
   알겠는가? 분주무업의 깨달음과 나의  자치기 이야기를? 「祖師西
   來意」는 원래 논리적으로 대답될 수 없는  것이다. 분주의 논리를 
   물러가보라는 제스처로 일단 단절시킨다. 허나 자치기는 튀어 올랐
   다 긴장이  풀어지면서 내려오는  순간! 마조는  후려친다. 『是甚
   匿』는 『이게   뭐꼬?』로 번역하면  안된다. 是는   백화문에서는 
   「Be 동사」 같은 것이며 「이것」이라는 지시대명사가 아니다. 그
   것은 독립된 의미의 단위가 아니다. 『뭐꼬?』 그것은 절대를 향한 
   질문이다. 이것 저것이라는 대상이 없다.
   
   
   마조에게서는 인간의 냄새가 물씬 난다. 그의  논리와 삶은 인간세
   를 멀리 떠나 있지만 그의 감정의 모멘트 하나하나에는 인간의  따
   사로운 희로의 정감이 배 있다. 방편이란 인간에 대한 자비로운 마
   음이 없으면 위선이요, 타락이요, 타협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마조가 
   大成하여 天下에 위업을 떨치고 있을 무렵, 마조는 사천에 있는 자
   기 고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의 고향에선 마조와  같은 큰 
   인물이 온다고 그를 영접하려 부산을 떨었고 잔치를 준비하고 있었
   다. 
   
   그런데 마조가 어렸을 때 옆에 살고 있었던 늙은 노파가 그를 알아
   보고 말했다 :
   
   『원 난 뭔 별놈이 오는 줄 알았는데, 바로 그 똥구루마 끌던 馬家
   놈의 그 꼬맹이새끼 아냐!』
   
   이에 마조, 유머가 실린 듯 비애감이 실린 듯 게송을 하나 지었다.
   
   
   
   이보게들 고향엔 돌아오질 말게
   고향에선 도인이 대접받질 못해
   그 개천가의 노파
   날 아직도 똥구루마새끼라고 불러
   
   勸君莫還鄕, 還鄕道不成.
   溪邊老婆子, 喚我舊時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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