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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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리)
날 짜 (Date): 1998년 5월 23일 토요일 오후 12시 27분 29초
제 목(Title): 도올 벽암록 제 3강화-2/신동아 


 [16]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3화 -2

   江西의 어느 절, 비탈길, 어느 젊은  스님이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그 비좁은 비탈길 아래켠에 거대한 체구의 노장 조실스님이 다리를 
   뻗고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젊은 스님은 수레를 몰고 가면서 황망히 외쳤다.
   
   『스님! 스님! 수레가 내려갑니다. 비키세요! 뻗은 다리를 오므리시
   라구요!』(請師收足.)
   
   조실스님이 눈을 번뜩 뜨면서 말했다.
   
   『야 이놈아! 한번 뻗은 다리는 안 오므려!』(已展不縮.)
   
   그러자 젊은 스님이 외쳤다.
   
   『한번 구른 수레는 빠꾸가 없습니다!』(已進不退.)
   
   아뿔싸! 굴러가는 수레바퀴는 조실스님의 발목을  깔아뭉개고 말았
   다. 딱 부러진 발목을 질질  끌고 법당에 들어간 조실스님,  거대한 
   황소 같은 체구에 호랑이 같은 눈을 부라리며, 씩씩대며 나오는 손
   엔 날카로운 날이 번뜩이는 큰 도끼가 쥐여 있었다. 바라가 울리고 
   대웅전 앞 뜨락엔 대소스님들이 총집결, 엄숙히 대열을 정돈했다. 
   
   『아까 어떤 놈인가? 이 노승의 다리 위로 수레를 굴려 발목을 부
   러뜨린 놈이! 나와!』 (執斧子曰: 「適夾孵損老僧脚底出來.」)
   
   이 때 젊은 스님,  조금도 기개를 굽히지 않고  늠름하게 뚜벅뚜벅 
   걸어나와 조실스님 앞에 무릎꿇고 가사를 젖히더니 목을 푸른 도낏
   날 앞에 쑤욱 내밀었다.(師便出, 於祖前引頸.)
   
   그러자 그 긴장이 감도는 순간, 노승의 얼굴엔 인자한 화색이 만면, 
   도끼를 내려놓았다.(祖乃置斧.)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도대체 이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러는가? 뭘 추구하는가?
   
   
   『傳燈錄』 『指月錄』 등에 그 용모의  奇異함을 「牛行虎視」(거
   대한 황소가 어슬렁거리는 것 같고 장백산 호랑이가 눈을 부라리는 
   것 같다)라 표현한 이 노승  조실스님의 이름은 마쭈 따오이, 馬祖
   道一, 바로 『벽암록』 제3칙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스승의 다리
   를 부러뜨린 젊은 스님은  五臺山 隱峰, 馬祖의  1백39人 入室弟子 
   중의 一人이다. 은봉(邵武 사람, 俗姓은  鄧氏, 馬祖 道一과 石頭希
   遷에 參하였으나 결국 馬祖의 言下에서 得悟)은 죽을  때 『隱峰倒
   化』라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그는 五臺山 金剛窟 앞에서 示寂하기  전에 그를 따르던 대중에게 
   물었다. 『나는 여태까지 고승들이 누워 죽고 앉아 죽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데 서서 죽은  놈이 있느냐?(諸方遷化, 坐去臥去, 吾
   嘗見之. 還有立化也無?)
   
   그러니까 대중들이 말했다.
   
   『있습니다』(曰:「有.」)
   
   『그럼 거꾸로 물구나무 서서 뒈진 놈은 있느냐?』(師曰: 「還有倒
   立者否?」)
   
   『그런 것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曰:「未嘗見有.」)
   
   그러자 은봉(인훵)은 거꾸로 선채 遷化하고 말았다.(師乃倒立而化.)
   
   거꾸로 선 채로 염을 다  했는데도 그 시체가 꼿꼿이 서서  屹然不
   動, 도무지 움직이질 않는다. 어떻게 다비를 치를까 걱정이 되어 스
   님들은 의논하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 遠近에서  경탄함
   을 마지 않았다.
   
   이때 은봉의 여동생이 비구니스님이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있었다. 
   꼿꼿이 거꾸로 서 있는 시체 앞에 가서 외치기를 
   
   『오빠! 살아 생전에는 계율을 그렇게 무시하고 살더니만 죽어서는 
   이제 사람들을 현혹시키려 거꾸로 서 있오?』
   
   하고 시체를 툭 치니 하염없이 피식 쓰러지고 말았다. 다비를 치르
   고 사리를 거두어 탑을 세웠다.
   
   生死에 대한 自由無碍한 경지를 보여주는 일화지만 더욱 소중한 것
   은 그러한 무애함이 범인에게 자아내는 神異奇談의 현혹을 다시 깨
   쳐버리는 여동생스님의 一轉語다. 과연 마조도일의 제자답다.
   
   
   마조도일! 과연 그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인가?  馬祖에 대해 내가 
   상세한 생평을 논하기 전에 우선 馬祖라는 이 위대한 인물이  도무
   지 禪宗史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인지를 먼저 살펴보자.
   
   여러분들은 나의 第二話에서 평상심의 대가, 내가 중국선종사의 꽃
   이라고 표현한 조주(趙州從劤)스님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조주스
   님을 키운 위대한 스님 남천보원(南泉普願)을 기억할 것이다.  바로 
   남천의 스승이 이 마조다. 마조와 남천의 관계는 꼭 孔子와 顔回의 
   관계 같다. 마조에게는 1백39人의 입실제자가  있었고 제각기 一方
   宗主의 뜻을 펴 그 轉化가  무궁하였건만 그중에서도 마조가 가장 
   애지중지한 제자가 바로 남천이었다. 그러니까 마조는 조주의 할아
   버지라 할 수 있다. 조주의 평상심은  마조의 「平常心是道」의 적
   통을 이은 것이다. 
   
   
   慧能에게는 뛰어난 제자가 5人  있었다. 南嶽懷讓(677~744), 靑原行
   思(?~704),    永嘉玄覺(665~713),   南陽慧忠(677~775),    荷澤神會
   (670~758). 그런데 이 다섯사람 중에서 남악회양과 청원행사의 二流
   만이 후세에 繁衍하였으니  남악회양 아래서는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이   나왔고,   청원행사   아래서는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이 나왔다. 마조는 江西를 중심으로 활약하였고, 석두는 湖
   南을 중심으로 활약하여  天下를 半分한 禪界의  雙璧이라 불렸다. 
   마조의 밑에서 臨濟宗, 噴仰宗의 開祖들이 나왔을 뿐아니라, 실제로 
   禪宗史의 초기에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 禪宗의 대세를 굳혔다. 馬
   祖는 중국선종사의 가장 위대한 교육자였다.
   
   慧能을 선의 씨앗의 생명력이라  한다면, 馬祖야말로 선의  뿌리요, 
   趙州는 선의 만개한 꽃이다.
   
   
   
   馬祖는 709년 漢州 什且에서 태어났다. 그러니까 지금의 四川省 成
   都 사람이다. 때는 양귀비와의 로맨스로 유명한  唐 玄宗이 즉위하
   기 수년 전이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용모가 기특하였다. 「牛行
   虎視」란 표현외로도 그의 혓바닥이 유난히 길어 쭉 내밀어 휘두르
   면 콧등을 덮었다고 한다(引舌過鼻). 그리고 발바닥에는 두개의  동
   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足下有二輪文). 혓바닥이 긴 것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그는 유난히 큰 목청의 소유자였다. 그가 한번 소리를 치
   면 제자들의 귀가 사흘이나 먹었다고 한다(直得三日耳聾). 
   
   그의 俗姓이 馬氏였는데, 「馬祖」라는 그의 通稱은 선종사에서 매
   우 이례적인 것이다. 우선 「祖」라는 타이틀은  당연히 六祖 혜능
   에서 끝나는 것이기에 반칙이다. 더구나 그  祖라는 타이틀이 馬氏
   라는 俗姓과 결합하는  것은 出家僧에게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나 도올 김용옥을 「金祖」라 부르는 것과도 같은 것이
   다. 
   
   이러한 馬祖(The Patriarch Ma)라는 명칭은 혜능에 버금가는 그의 
   위치와, 또 聖과 俗이 구분되지 않는 그의 삶의 역정에서 우러나온,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애칭(별명  같은 것)에서 유래되
   었을 것이다. 남악회양이 대각을 얻었을 때  6조 혜능이 다음과 같
   이 말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天竺二十七祖 般若多羅께서 예언하시길 네 발밑에서  망아지새끼
   가 하나 나와서 이 세상을 짓밟으리라 하셨다.』 
   
   마치 예수가 베드로에게 『너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 죽음
   의 권세도 그를 이기지 못하리라』(And I tell you, you are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and  the powers  of 
   death shall not prevail against  it. 마태 16:18)고 예언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지만, 여기서 「망아지새끼」란  馬氏의 「馬」를 은유
   한 것이다. 과연 馬祖는 天下를 짓밟았다. 百丈懷海, 南泉普願, 西堂
   智藏, 大梅法常, 濂官齊安, 歸宗智常, 汾州無業,  五臺隱峰, 襄州居士
   龐蘊, 大珠慧海, 石鞏慧藏, 水耀和尙, 藥山惟儼… 이 수없이  찬란한 
   인물들에게서 語錄이 쏟아져 나왔고 南岳의 天下가 된 것이다.
   
   
   마조는 어려서부터 九流六學에 통달하였고 이미 어려서 漢州  本邑
   의 羅漢寺로 출가하였다. 資州(사천성)  唐和尙께 삭발함을 받았고, 
   琥州(사천성)의 圓律師에게서 具足戒를 받았다.  그후 益州(사천성) 
   長松山, 荊南(湖北省) 明月山에서  山居修行타가 어느날  南岳(湖南
   省)에 6조 혜능의 法嗣 懷讓이 수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곳
   으로 찾아가 홀로 南岳山에 둥지를 틀고 坐禪에 정진하기에 이르렀
   다. 
   
   그때 회양은 남악산의  般若寺에 주석하고 있었다.  회양은 마조를 
   보자 곧 그가 큰  그릇임을 직감한다. 그래서 마조가  둥지를 틀고 
   있는 토굴로 찾아가 일문을 던진다.
   
   『어르신네 좌선은 해서 뭐하실라오?』(大德坐禪圖甚匿?)
   
   『부처가 되려구요.』(圖作佛.)
   
   그러자 회양은 마조가 좌선을 하고 있는 그 토굴 앞에서 깨진 기왓
   장을 하나 집어 들더니만 숫돌 위에 열심히 갈기 시작하는  것이었
   다. 호기심에 가득찬 마조가 내다보며 왈:
   
   『그건 갈아서 뭐 할라구 그러시오?』(磨作甚匿?)
   
   회양대사는 희쭉 웃으며 대답하기를:
   
   『잘 갈아서 거울을 만들려구』(磨作鏡.)
   
   어허, 흥미진진한 문답에 빨려들어가는 마조는 터무니없다는 듯 빙
   그레 웃으며 말하기를:
   
   『아니, 그래 어떻게 기왓장을 갈아 얼굴이 비치는 거울을 만들 수 
   있단 말입네까?』(磨榮豈得成鏡耶?)
   
   그러자 회양은 잽싸게 내치며 말하기를:
   
   『아니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  수 없다는 걸 아는 녀석이  그
   래, 좌선을 해서 부처가 되겠다구 해? 아니 널 갈아봐라, 부처가 될
   성싶더냐?』(磨榮旣不成鏡, 坐禪豈得作佛?)
   
   김이 팍 새버린 마조, 집요하게 묻는다.
   
   『아니 그럼 난 어떻게 해야한단 말이요?』(如何卽是?)
   
   『소달구지를 가지고 얘기해보자! 소달구지가 안 가면 회초리로 소
   를 치냐? 달구지를 치냐?』(如牛駕車,  車若不行, 打車卽是, 打牛卽
   是?)
   
   폐부를 찌르는 언변에 경악한 마조, 묵묵히  대답없이 벙벙하게 앉
   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一無對.)
   
   회양은 이어 곧 말문을 열었다.
   
   『니가 지금 坐禪을 배우려는 거냐?  坐佛을 배우려는 거냐? 네가 
   만약 앉아 禪을 배우겠다면 내가 말해주마, 禪이란 앉아 있는 것도 
   아니요, 누워 있는 것도 아니다.  네가 만약 앉아 佛을  배우겠다면 
   내가 말해주마, 부처란 정해진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法)
   란 본시 고착된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니요, 무엇에 머물러있질 아니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취할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것
   이다. 앉아 부처가 되겠다고? 그건 부처를 죽여야 되는 것이다.  앉
   아서 도 닦는 모습에 집착하게 되면 넌 그 진리에 도달할 길이 없
   어지는 것이다』(汝學坐禪, 爲學坐佛?  若學坐禪, 禪非坐臥; 若學坐
   佛, 佛非定相. 於無住法,  不應取捨. 汝若坐佛,  卽是殺佛. 若執坐相, 
   非達其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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