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리) 날 짜 (Date): 1998년 5월 23일 토요일 오후 12시 25분 32초 제 목(Title): 도올 벽암록 제 3강화-1/신동아 [17] 제목 : 도올 『碧巖錄』 講話 제3화 -1 도올 『碧巖錄』 講話 제3화 낮에는 해를보고 밤에는 달을보고 『스님 요즈음 기체존후가 어떠하시옵니까?』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 마조의 마지막 외침은 삶의 무상함과 영원함이 초월되는 순간이었 을까? 千佛이 모인 자리에서는 千佛이 싫어하고 群魔가 득시글거리는 데 서는 群魔가 미워하는, 더러운 냄새의, 털 안 깎아 짐승 같은, 法盲 僧 하나가 오늘도, 오라지도 않은, 누구네 잔치의 앞자리에 버티고 앉았습. 讐! 『선생님, 도무지 이 작자 우리 문학사에서 해결이 안되는 골칫덩 어리올시다. 아무도 건드릴 수가 없고 그렇다고 무시해버리기에는 찜찜한, 저 조선인의 언어의 검은 나락에서 내뿜어대는 유황불 같 은, 코가 매캥매캥하고 눈이 찌릿찌릿하고 머리가 어지러운 작자올 시다. 선생님밖엔 해결사가 없을 것 같아 여기 책 한 권 두고 가옵 니다』 최근까지 「시사저널」 편집국장을 지낸 김훈學兄의 말이다. 『그게 누구요?』 『박상륭이라는 작자올시다』 『七祖語論』! 훈兄이 내 책상머리에 남기고 간 갈등이었다. 전북 장수 촌놈이라던데, 박상륭! 과연 그는 누구인가? 나는 말한 다. 『박상륭! 그가 바로 七祖다!』 게 무슨 망발인고? 『그래? 니그 박상륭이 七祖라카는 내 말이 이상타고 생각하는 니 가 바로 七祖다!』 朴兄! 말장난이 좀 심하십디다 그려. 우리 훈형 대가리를 어지럽게 해놀 만합디다 그려. 왜 「七祖語錄」이 아니고 「七祖語論」인가? 어록이란 생생한 살아 있는 말들(語)의 꾸밈없는 기록(錄)이다. 그 런데 어론이란 그 말들을 논술해낸 잡설(雜說)이다. 어록은 살아 있 는 자들의 깨달음의 자취다. 그래서 간결하다. 어론은 죽은 언어들 로 꾸민 논설이다. 그래서 장황하다. 그런데 박상륭의 파워는 「語 論」에 있질 아니하다. 바로 「七祖」라는 이 한마디, 그 참신한 발 상에 있는 것이다. 七祖란 무엇인가? 禪宗史에서 「七祖」란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왜냐? 흔히 禪宗이란 衣鉢전수의 법통의 역사요, 祖師들 계보의 전승으로 착각한다. 中華 第一祖라 불리는 達磨도 天竺의 계보로 말하면 第二十八祖요, 達磨 의 법통도 二祖(29조) 慧可, 三祖(30조) 僧璨, 四祖(31조) 道信, 五 祖(32조) 弘忍으로 엄격한 衣鉢전수의 계통을 밟아 내려간 것이라 고 한다. 그런데 앞서도 이미 말했지만 제1조 摩訶迦葉으로 시작하여 阿難, 馬鳴, 龍樹, 般若多羅에 이르는 天竺의 계보는 제일 먼저 唐의 智炬 의 撰인 『寶林傳』(801년)에 등장하여 『祖堂集』(952년)을 거쳐 『景德傳燈錄』(1004년)에 전승되고 있지만, 이는 명백히 중국인 선 종史家의 창작이다. 五燈之首요, 1천7백1人의 傳燈法系의 계보를 밝히고 있는 방대한 禪의 사료집이며, 禪宗의 체계적 역사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경덕 전등록』이 세간에 빛을 본 것은 北宋 眞宗 景德 六年, 1004년이요, 때는 趙光胤으로 시작한 北宋정권이 아직 국권의 정초를 다지지 못 한 北宋초기였다. 『경덕전등록』의 저자 道元은 法眼宗 사람이며 蘇州承天 永安院에 住하였다는 것 외로는 일절 그 生平이 알려져 있질 않다. 어떻게 이러한 방대한 사료가 이토록 치밀하고 생생하게 계통적으로 기록 될 수 있었는지 그것은 아직까지도 의문의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不立文字를 외치는 中國人의 역사기록에 대한 아이러니칼한 집념의 위대성 앞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가 영·정조시절에 서울장안 등지에서 산 사 람들의 안방에서 다소곳이 오간 이야기 일천칠백개를 기술한다고 하면 과연 그것이 정확하게 사실적으로 계통적으로 기술될 수 있을 까? 『寶林傳』 『祖堂集』과 같은 先行하는 업적이 있기는 했지 만, 『전등록』에 수록된 찬란한 선사들의 이야기는 상당부분 창작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추측은 쉽게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전등록』의 전등의 핵심은 一祖로부터 六祖까지 衣法相傳의 법통 이다. 그런데 『六祖壇經』으로부터 시작하여 『寶林傳』 『祖堂集』 『傳燈錄』 등의 선종사료가 쓰이게 된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慧能의 南宗禪과 神秀의 北宗禪의 대립의 와중에서 慧能의 적통성 과 頓悟見性의 心法印이 우월함을 주창하려는 데 있었다. 그런데 혜능계열이 신수계열에 대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적법성은 바로 弘忍의 衣鉢을 혜능이 전수받았다는 사실 하나에 매달려 있었다. 神秀의 게송,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使惹塵埃.』 에 대하여 일자무식꾼이던 慧能이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 無一物, 何處惹塵埃.』를 타인의 손을 빌려 내걸어 弘忍의 의발을 전수받았다고 하는 이 이야기 자체가 어찌보면 南頓, 北漸의 宗風 의 차이를 전제로 해서 이 양인의 삶의 스토리를 襤化시킨 세간(남 방계열)의 창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中國禪의 출발은 達磨가 아닌 慧能이다. 慧能이 애초에 文字를 모 르던 무식꾼이었든지 아니었든지 간에 그가 曹溪寶林寺에서 禪風을 발양하던 때는 그는 이미 文字의 정상을 밟고 있는 위대한 識者였 다. 그리고 門下에서 五家七宗의 法系가 다 쏟아져 나왔다. 다시 말 해서 慧能을 六祖로 만든 것은 남종선 五家七宗의 장난이다. 남종 선이 남종선의 적통을 주장하기 위해 그들의 祖宗인 혜능을 六祖로 만들어야 했고, 그 六祖라는 의미는 一祖인 達磨로부터 六祖인 혜 능에까지 내려오는 의법상전의 적통성인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혜능의 위대성은, 혜능을 혜능답게 만드 는 가장 위대한 祖宗的인 성격은 바로 이러한 적통성, 의발상전의 법통을 부정했다는 데에 있다. 예수는 예수의 祖宗的 성격을 완수 하기 위해 애비를 죽여버렸다. 다시 말해서 요셉은 실부로서 자격 을 상실해버렸고, 마리아는 신의 아그네스가 되어버렸으며, 예수는 사생아가 된 것이다. 가부장제적 족보의 권위로부터 예수를 해방시 키는 길은 父系를 차단하는 길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예수는 절대자가 되기 위해 예수 이전의 인간족보를 단절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허나 혜능은 혜능의 깨달음의 절대성을 과시하기 위 해 혜능 이후의 족보를 단절시킨 것이다. 혜능은 혜능의 의발을 아 무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혜능은 본시 달마·혜가·승찬·도신·홍 인으로 내려오는 의발을 전해받은 바 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니 그 의발전수의 법통은 후대의 사가들이 남종의 북종에 대한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그 적통성의 근거로 날조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의발전수의 법통은 혜능에서 完結되는 것이다. 禪이란 바로 그러한 권위의 정통성으로부터 해방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 다. 법통의 완결은 법통의 부정이다. 六祖는 六祖로서 완성되며 동 시에 六祖는 否定되는 것이다. 禪은 법통의 역사가 아니요, 의발전 수의 역사가 아니다. 禪은 오직 깨달음의 역사요, 모든 깨달음이란 깨달음으로서 완성되고 단절되는 것이다. 깨달음은 절대요, 절(絶) 대란 끊음이다. 禪宗에는 七祖가 없다. 아니 七祖가 있어서도 아니 되고, 있을 수도 없다. 박상륭이 이러한 구극적 진리를 알고 七·八 祖를 운운한다면 그의 장황한 잡설은 一論으로 가상히 여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의 선이 혜능으로부터 출발하고 혜능이 바로 의발전수의 법통 을 부정했다고 한다면 禪의 절대적(對를 絶한다) 성격은 명약관화 해진다. 禪의 역사는 의발전수의 역사가 아니요, 절대의 깨달음의 점철일 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禪을 의발상전의 비전체계로 곡해하고 있음은 웬 연유에서 일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혜능 신화의 본질을 파악지 못하고 그 傳燈의 燈의 의미를 곡해한데서 생기는 妄見에 불과하지만, 역사적으로 禪 이 이렇게 곡해된 배경에는 아이러니칼하게도 외래불교라는 이방문 화에 대하여 주체회복을 선언하고 강력한 도덕주의를 표방하며, 排 佛의 기치를 높이 올린, 朱子學으로 대변되는 신유학(宋學)이 바로 禪宗의 도통론을 수입하여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시키는 무기로 삼 은 데서 유래되는 정통론의 보편화가 더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다. 다시 말해서 혜능계 남종과 신수계 북종의 대립에서 남종이 남종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의발의 師資相承의 法統을 날조했다고 한다면, 바로 주자는 유학과 불학의 대립이라는 문제의식과 겹치는 靖康之變 이후 南宋의 특수한 정치분위기 속에서 南宗禪의 법통론 에 못지 않은 강력한 儒學의 道統論을 날조·고수해야만 하는 어떤 필연성을 감지했던 것이다. 朱子에게 있어서 子思子의 『中庸』이란, 어찌 보면 南宗禪家에 있 어서 『六祖壇經』과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朱子가 얼마나 강 력한 도통론을 관철시키고 있는가 하는 것은 그의 『中庸章句序』 에 아주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中庸何爲而作也, 子思子憂道學之失其傳而作也. 蓋自上古聖神斷天立 極, 而道統之傳有自來矣. 중용은 어떠한 목적으로 지었는가? 자사자가 도학이 그 전하여짐을 잃어버릴까봐 염려하여 지었다. 대저, 상고의 聖神이 하늘을 이어 인간세의 기준을 세움으로부터 그 道統의 전함이 유래가 있게 되었 다. 이 주자의 『中庸章句序』의 前末은 내가 講述한 것을 도올서원의 재생들이 받아써서 낸 책 『도올선생 중용강의』(서울:통나무, 1995) 제3강에 아주 소상히 밝혀져 있다. 여기에 그 「道統」이라 는 말이 분명히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로서 朱子는 堯―舜―禹― 湯―文―武―周公―孔子―子思―孟子로 이어지는 道統의 전수를 확 립했다. 그리고 孟子에서 일단 단절이 생겼던 것을 다시 宋學의 先 河, 程子가 이었고, 그 程子之傳을 바로 朱熹 본인이 이었다는 것이 다. 慧能은 자신의 衣鉢을 曹溪의 寶林寺에 秘藏시키고 그 전수를 엄금했다. 傳燈의 燈은 그따위 의발로는 相傳될 수 없다는 것이다. 허나 朱子는 堯·舜의 의발을 자기가 程子에게서 물려받았다고 萬 方에 고함으로써 신유학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언한 것이 다. 朱子가 물려받은 堯舜의 의발은 무엇인가? 그것은 욧님금·순님금 의 입던 옷, 먹던 사발이 아니다. 그것은 의발이 아닌 經이요, 물건 이 아닌 언어다! 『允執厥中!』 이 4글자 1구야말로 욧님금이 순님 금에게 전수한 의발이다. 그리고 순님금(舜)은 웃님금(禹)에게 3구 를 더해 전했다: 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기실 이 「虞庭의 傳心訣」이라고도 불리는 4구의 역사적 의의는 혜능이 신수의 漸頌에 대하여 내갈긴 게송 4구와 같은 것이지만, 논리적 맥락은 매우 다르다. 允執厥中의 「厥中」은 실제 그 궁극 적 인간학적 의미에 있어서 龍樹의 中論(Ma-dhyamika)과 大差가 없다. 허나 龍樹는 부정에 부정을 더하여가는 순수한 초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中을 말했지만, 주자의 中은 세간적이고 윤리적인 中이 다. 그 中의 윤리적 맥락은 『人心惟危, 道心惟微』라 하는 이 한 마디 인 것이다. 朱子哲學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去人欲存天理』(사 람의 욕심을 버리고 하늘의 이치를 보존한다)라 말할 수 있는데 人 心은 곧 人欲이요 危(위태로움)한 것이요, 道心은 곧 天理요 微(은 미함)한 것이다. 危한 人心을 버리고 微한 道心으로 돌아가라! 이것 이 곧 朱子의 直指人心이요, 心法印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언제 는 유가입장에서 불가를 디립다 까더니만 지금은 또 불가입장에서 불가를 배척한 유가의 본질을 왜곡한다고 씹을 것이다. 여기서 씹 히고 저기서 씹히고, 아이쿠 두야! 내 方便說法을 깨닫지 못하는 자 주둥아리 놀릴 생각 마라! 朱子學의 人心道心論이나 存天理去人欲論은 알고보면 禪이 지나치 게 권위부정을 추구한 나머지 空寂한 말장난에 빠져버린 역사적 병 폐를 광정하고 인간세의 도덕적 현실을 직시하여 인간의 本分事로 회귀하자는 외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나, 佛家의 입장에서 본 다면, 朱子學이야말로 禪家의 극단적 허무주의(Nihilism)에서 다시 四聖諦 八正道로 회귀한 불교자내의 도덕주의적 회복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조선조의 유학자들이 朱子學의 정통성을 고수하고 이단을 배 척하는 태도나 오늘날까지도 退栗의 권위에 찌든 성균관유생 운운 하는 자들의 작폐를 보면 宋儒의 道統論의 편협함의 병폐를 실감할 수 있다. 허나 이것은 禪家에 있지도 않은, 禪家는 慧能 당초로부터 이미 벗어던져버린, 傳燈의 방계적 말폐에 지나지 않는다. 朱子는 『傳燈錄』을 본떠 『伊洛淵源錄』을 만들었다. 후대 黃宗 羲의 『明儒學案』이나 『宋元學案』도 모두 이 『경덕전등록』의 體裁를 縝照하여 만든 저작들이다. 우리나라의 족보편찬도 알고 보 면, 그 본래 연원은 스님들의 法系편찬방식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허나 진정한 傳燈의 기록은 이렇게 정통론을 고수하려는 데 있질 아니하다. 傳燈의 등은 빛이다. 그런데 이 빛은 의발의 빛이 아니 요, 깨달음의 빛이다. 그것은 정통의 빛이 아니요, 이단과 정통의 분별심이 근원적으로 말소되는 혜지의 빛이다. 그 빛을 전한 기록 은 계보의 배타성을 확보하려는 기록이 아니라 깨달음 그 자체의 역정을 통해 중생심으로 나아가려는 전법의 기록이다. 『요한복음』도 「빛」을 말하고 「로고스」를 말한다. 말씀이 빛 이요, 빛이 곧 말씀이다. 허나 그 빛은 하나님의 變顯(the Transfiguration)의 실체의 빛이요, 초월적 존재에게로 회귀하는 빛 이다. 허나 전등의 빛은 깨달음(the Enlightenment) 그 자체의 無體 의 빛이요, 초월 아닌 해탈의 진리의 등불이다. 선의 전등은 깨달음의 우열이나 서열이나 대열을 말하려는 것이 아 니요, 오직 깨달음을 전하여 인간의 마음을 열게 하고 몸을 깨우치 며 모든 망념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교육의 등불이다. 선의 역사는 깨달음의 역사요, 깨달음의 역사는 교육의 역사요, 교육의 역사는 빛을 전해가는 역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禪의 宗旨, 公案의 本旨를 깨닫지 못하고, 주자학이 선학의 말폐를 흡수하여 편협한 도통론을 세운 것을 다시 재역수입 하여 門中을 말하고, 깨달음의 우열을 말하고, 법랍의 서열을 말하 고, 큰스님을 말하고, 祖室을 말하고, 방장의 권위를 말한다. 니기미 씨팔, 큰스님? 엿먹어라! 뭐가 크길래 큰 스님이냐? 좆대가리가 커 서 큰 스님이냐? 씹대가리가 커서 큰 스님이냐? 가불마조(呵佛罵 祖), 그게 뭐이더냐? 『벽암록』 그것이 바로 가불마조의 기록이니 라! 우리 사회는 내가 생각기로, 衣鉢만 전하려 하지 진리의 빛을, 깨달 음의 본체를 전하려 하질 않는다. 그렇기에 내 진실로 진실로 너희 에게 이르노니, 21세기는 禪에서 배워야 한다. 새로운 전등의 기록 을 세워야 한다. 새로운 깨달음의 빛을 전해야 한다. 가사와 바리땔 랑 조계산 깊은 골에 깊게 깊게 묻어두어라! 나의 책 『老子哲學 이것이다』 앞대가리에 보면, 내 슬픈 삶의 이 야기를 전하는 부끄러운 문장이 하나 실려 있다. 「求原諒」! 나에 게도 존경하는 선생이 있었고 사랑하는 제자가 있었다. 선생의 학 통을 이으려했고 제자에게 나의 지식과 지혜를 전달하려고 애썼다. 나는 정말 학생으로서 선생으로서 학통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 을 경주한 인간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런 모든 노력이 허물어지는 체험을 한 것이다. 求 原諒! 내 삶의 모든 진실을 담아 사모했던 스승이 날 저버리고 내 삶의 모든 정열을 담아 자애하던 제자가 날 배반한 것이다. 너무도 터무니 없는 인간세 憬事의 와중에서. 양심선언! 복직! 한의대! 나 는 고려대학 石門을 나서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 도올에게는 스승이 없다. 이제 도올에게는 제자가 없다. 나 이제 제자를 기르지 않는다. 스승을 만들지 않는다. 스치는 바람이 모두 나의 제자요 스승이다』 求原諒 후 나는 깨달았다. 법통, 도통, 학통, 혈통, 씹통, 좆통, 다 허망한 것이더라. 그럼 넌 뭔 통이냐? 그래 난 벽암통이다. 나는 지금도 타인에게 지식을 전하는 데 열심이다. 내가 알고 있는 바를 남에게 감추지 아니한다. 아마도 이 세상에 나만큼 대가리 속 에 지식의 쓰레기더미를 많이 쌓아올린 자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 이다. 그런데 지식이란 나의 것이 아니다. 인류의 갈등(언어)이 공 통의 노력을 경주하여 만들어온 것이다. 지식이란 대부분 있는 것 을 흡수한 것이지 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 그따위 지식을 가지고 자랑할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알 고보면 도서관 어딘가에 다 꽂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 을 발견하고 흡수하는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나는 이 깨 달음마저 전달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나는 깨닫고 만다. 인간의 깨달음이란 인간 孤存 본연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결국 전수될 수 없는 것이다. 깨달음이란 결국 나 개인의 시공이 연출한 한 계기인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진입할 수 없는 나의 몸의 空이다. 『벽암록』은 이 러한 몸의 空의 전수가 아닌 照影이다. 1백칙 공안이 모두 독립된 절대적 깨달음의 계기들이다. 우리는 여기서 『벽암록』을 읽는 태 도를 명백히 해야 한다. 『벽암록』은 조사들의 法嗣를 밝히려는 책이 아니다. 그것은 百箇의 燈이 동시에 相卽相入하는 華嚴의 壯 觀이다. 그것은 생명이 약동치는 조사들의 삶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우리 마음의 가능성을 자각할 수 있을 뿐 이다. 원숭이 새끼 품고 푸른 절벽 뒤로 돌아가고 새 꽃 물어 푸른 바위 앞에 떨어뜨린다 원숭이 뒤로 돌아가고, 새 앞에 떨어뜨리는 이 모든 광경이 내 마 음 自內의 깨달음의 계기일 뿐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