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han (무지 ) 날 짜 (Date): 1995년02월20일(월) 13시40분38초 KST 제 목(Title): 라즈니쉬3: 명상하는 법 2 윗글 같은 책 (라즈니쉬1..) 179쪽의 내용입니다. (라즈니쉬의 불교적 수행 방법이 묵조선과 비슷한 것이라는 우견으로 문사수 님이 쓰신 *171*과 그위의 참선에 관한 좋은 글들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여기서 명상이라는 말은 선(禪)의 원래어 Dhyana와 동일 합니다. -본 글에서 명상법은 뒷부분에 있음. -여기서 생각, 사고란 말은 일반 불교 서적에서의 망상,번뇌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 라즈니쉬: (Darmar에게): 눈을 감으려므나. 그래 자! 나에게 가까이 오렴. 이게 네 이름이다. Ma Dhyano. Dhyano란 명상을 의미하지. 영어에서는 그리고 다른 모든 서구어에서도, 명상에 해당되는 말들로 너의 이름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구나. 명상의 실재를 제대로 표현하는 말이 없어. 네가 아는 명상이란 말은 단지 진짜 명상이란 게 무언가 짐작케 하는 말에 불과해, 명상 그 자체 전부를 표현할 수가 없단다. 하지만 명상이란 말이 가장 명상(Dhyana)에 가까운 비슷한 말이니 그 걸 쓰자꾸나. 왜 명상이란 말이 틀리는지를 먼저 이야기 해야겠다. 명상이란 말을 쓰면 마치 무언가에 대하여 명상한다는 느낌이 들지. 마치 명상해야할 무엇이 있는 것 같이 말이야. 그러니 명상한다 하면 마치 네가 무엇인 가를 명상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는 것이지. 말하자면 불꽃을 명상하고, 신에 대해 명상하고, 해뜸(일출)을 명상하고 어쩌구 하는 식으로 말이지. 즉 명상하는 목적물이 있게 되는 거야. 그러니 명상이란는 말이 무엇인가 대상을 놓고 하는 것같이 받아 들이게 된단다. 그 건 명상이 아니야, 틀린 거야. Dhyano라고 할 때는 명상을 위한 어떤 목적물이 있는게 아니란다. 명상은 우리 *내부의 조용한 상태-적정함*을 말할 뿐이야. 생각(thought)도 없고, 뭐라고 할 내용도 없고, 대상도 없는 거야. 그런 조용한 상태는 그저 존재하는 여여(如如)한 것일 뿐이야. 이런 내부의 조용함-적정 속에는 우리의 지식으로 알아야 할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 느낌으로 느껴야 할 무엇도 없단다. 그리고 집중하여야 할 그 무엇이 있는 것도 아니야. 다시 말해서 명상에는 명상하여야 할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지. 명상을 위해서는 우리가 마음 (참 마음이 아닌 우리들의 단순한 사고의 흐름) 전부를 비워야 한단다. 마음 전부를 비워 조용함을 이루는 것이야, 그러한 적정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히며 저절로 나타나는 결과일 따름이야. 이 것이 네 이름 Dhyano란다. 그리고 이 것이 명상이란다. 명상은 아주 자연스러운 상태일 뿐이야. 어떤 인위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야. 시끄러운 생각이 사라지면 본래의 조용함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뿐이니까. 네가 하여야 할 일은 너의 마음을 비우기위해 명상을 이해하고, 명상을 위해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일 뿐이란다. 집중은 노력을 필요로 하지. 서구의 말에서 명상은 꼭 무언가 집중하는 법 같은 수련을 하여야 하는 것으로 이해되기가 쉬워. 하지만 동양에서는 명상을 이미 우리의 내부에 갖추어진, 글쎄, 원래 조용한 것이었으니 갖추어 졌다고 하기도 뭐 하지만, 그런 공간을 이미 ㅊ아내었어. 원래 있는 것이니 명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도 좀 그렇다는 이야기지. 장미꽃 봉오리안에 있는 아름다움과 같이 우리들 안에는 아름다운 공간이 있단다- 아주 아주 조용하고, 평온하며, 시원한 그런 곳이 말이지. 그 것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야. 우리들이 하여야 할 일은 단지 꽃봉오리가 피어나도록 돕는 것과 같아. 꽃봉우리가 피어나면 그 때 우리는저절로 아름다움을 보게되지. 아름다움이 스스로 열려 피어나서 말이야. 우리가 이 곳 (Shree Rajneesh Ashram, Poona, India)에서 사용하는 방법들이란 그저 꽃봉오리가 피도록 돕는 것뿐이야. 꽃봉오리가 피도록 돕는 것 같이 우리들 내부의 조용함, 내부의 공간, 내부의 평화를 알도록 하는 거지. 그러니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 부터 시작하도록 하여라. 그저 조용히 앉아 있는 것 뿐이란다. 무얼 하는 것이 아니야. 주문(mantra)을 외우는 것도 아니고, 염불(chanting)을 하는 것도 아니란다. 앉아 있는 동안에도, 너의 사고는 끊임없이 이어지겠지. 그저 그대로 사고를 *바라보며* 흘려보내려므나, 흐르는 강물을 보듯. 이런 저런 생각들이 왔다 그리고 가겠지. 그런 생각들이 오는 것을 *바라다* 보려므나. 그런 생각들이 가는 것을 보려므나. 우리들의 호흡이 들고 나는 것같이 오고 가는 생각들을 바라보려므나. 그리고 너의 호흡도 함께 바라보려므나. 너의 사고가 점점 잦아들면서 너의 내부가 조용해가면 너는 너의 심장에서 일어나는 맥박도 느끼게 될꺼야, 그럼 그 맥박도 보려므나. 그러다 언제가 조용함이 깊어지면서, 오직 바라보는 너만이 남게 될꺼야. 그게 명상이란다. 오직 보는 자만이 남아 있고 보아야 할 그 무엇도 없는 그런 상태 그것이 명상이란다. 그렇게 되면 바라보는 자는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지. 지금까지 바라보던자가 그 바라봄으로 스스로를 보게 되는거야. 그렇게 되면 보는자는 동시에 보여지는 자가 되는 것이지. 이 것이 명상의 궁극이란다. 최정상이야. 인간의 의식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이지. 그 너머에는 공(空: nothingness, 비어 있음)이 있단다. 거기는 적정(寂靜)과 청량함, 그리고 한 없는 기쁨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이야. .......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