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5월 21일 목요일 오전 02시 21분 39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이제 삼성 삼무성


번호 : 14/3045                 입력일 : 98/05/20 09:19:46      자료량 :68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이제 삼성 삼무성

 교리를 공부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은  공사상과 유식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사상에는 오해받기 쉬운 요소가 있다. 바
로 허무주의이다. 공으로 부정하다 보면 마침내 수행,  성불, 자비, 중생구제
등도 공하다는 무한부정의 공허주의에 빠질 수가 있다.

 공사상의 전문가인 용수보살은 이제(二諦) 즉 두 가지 진리를 쓴다. 외도들
의 실체론을 쳐부수기 위해서는 속세적인 진리를 임시로 세워  두고 있다거
나 없다고 하는 주장 그 자체에 모순이 있음을 지적한다. 속세적인 진리 즉
속제(俗諦)를 쓰는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진리 즉  진제(眞諦)는 언어로
접근할 수가 없다.

 언어는 개념을 전제하는데, 개념은 사람의 분별을 실체적인 사실로 고정하
는 데서 나온다. 따라서 언어를 이용해서는  존재의 실상을 볼수 없는 것이
다. 공사상을 전하기 위해서 이제(이諦)를  썼지만, 공사상의 진의를 모르는
사람은 허무주의로 흐를 수도  있다. 속세적인 진리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궁극적인 진리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형상과 이름에 의지하는 중생은 어
찌할 바를 모를 수가 있다.

 여기에서 속세적인 진리와 궁극적인 진리가 무엇인가를  좀 더 밝히고, 그
둘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설명할 필요가 생겼다. 존재 형태를 셋으로 나눈
삼성(三性)의 첫번째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은 속세적인 진리가 인간의  분
별 개념에 의존해 있다는 것을 밝히고, 세 번째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언어
의 분별을 떠난 실상의 경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두번째 의타기성(依他起性)은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 또는 속제와
진제의 부분적인 요소를 다 가지고  있음으로서, 속세적인 진리와 궁극적인
진리가 갈라지는 점을 밝힌다. 의타기성에서  개념과 이름으로 분별하는 변
계소집성의 요소를 빼면, 의타기성은 그대로 원성실성이 되고,  더하면 변계
소집성이 된다.

 속제와 진제는 하나인데 아뢰야식이 주객으로 나뉘어서 분별로  세상을 제
멋대로 지어 보는 데서 둘로 갈라진다는 것이다. 삼성은 아뢰야식을 의타기
성으로 나타냄으로써, 진제와 속제의 분리점과 연결점을 보여  주고, 중도의
길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와 삼성이 존재의  실상을 여실히 보려고
하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이제는 공을 강조하고 삼성은 공한 가운데서 꿈
틀거리는 아뢰야식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에 고정적인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만법은 아뢰야식의 창작품일 뿐이
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뢰야식의 움직임은 있다. 아뢰야식의  실체는 공하
다고 하더라도 그 기능은  엄연히 있다. 고정적인  실체는 없지만 움직이는
기능이 있다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유식의 삼성설은 허무주의의 위험을 차단
하려 한 것이다.

 만약 의타기성이라는 아뢰야식의 기능마저도 부정하게  되면, 부처를 이루
고 중생을 구제하는 수행과 전법 체계  전체가 무너져 버린다. 미혹의 인식
이 현실의 업을 낳고, 현실의  업이 다시 미혹의 식종자를  낳는 그 동작이
부정되면, 미혹과 깨달음 악업과  수행, 윤회와 해탈을 말할  근거가 없어진
다. 번뇌도 없고 청정도 없다. 수행할 것도 없다. 바로 허무주의로 떨어지는
것이다.

 현실의 고통만 없다면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허무주의로는 현실의 고통을
건질 수가 없다. 이 고통을 없앨 방도를 찾기 위해서 현실의 번뇌를 역추적
해 나가다 보면 미혹과 업에 의한  식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이다. 삼성으
로 아뢰야식의 기능적인 존재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위험
이 있다. 무엇인가 있다는 쪽으로 빠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유식은 다
시 삼무성(三無性)을 세운다.

 바로 상무성(相無性), 생무성(生無性), 승의무성(勝義無性)이다. 모양으로 보
거나, 생겨나는 과정으로 보거나, 또는 궁극적인 진리로 보았을 때에도 모든
사물에는 고정적인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삼성의 변계소집성 즉 사량분별
에 의해 나타는 만물의 상은 실체적인  자성이 없다는것. 의타기성 즉 아뢰
야식의 주객분리에 의해서 생성되는 것은 실체적인 자성이 없다는 것, 그리
고 원성실성 즉 존재의 실상에는 실체적인 자성이 없다는 것이다.
 *발행일(1673호):1998년 5월12일 , 구독문의 (02)730-4488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