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5월  2일 토요일 오전 11시 45분 11초
제 목(Title): 봉축특집-종정법어


번호 : 11/2606                 입력일 : 98/04/24 19:08:42      자료량 :145줄

제목 : [465호]봉축특집-종정법어

  "탐욕 버리고 마음 문 활짝 열어라"

  불기 2542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조계종 종정 월하 스님이 대중을
향해 사자후를 토했다. 4월 14일 통도사 정변전을 예방, 종정 스님으로부터
들은 법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오늘은 부처님께서 이승에 오신 날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이승에 오
셨다고는 하나, 그것은 중생의 입장에서 하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자리에서
는 본래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중생을  위해 방편으로
오고 가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대승본래무출몰(大乘本來無出沒)이요
  중생출몰시형상(衆生出沒示形像)입니다.

  대승은 본래 가고 오는 것이 없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은 무슨 까닭으로 가
고 옴이 있는 중생의 모습으로 이승에 오셨는지 오늘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
야 합니다.
  예로부터 많은 조사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승에 오신 것은 생사고해
(生死苦海)를 오고 가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오셨다고 합니다. 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중생과  같은 모습으로 오셨다고 합니다.  산승(山
僧)인 나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방편으로 오
신 부처님은 차치하고 시방법계(十方法界)에 충만한 법신불(法身佛)을 보라
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은 항상 부처님을 친견하고 나
아가서는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법신(法身)임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
다.
  법에는 말이나 형상이 없으나, 그렇다고 말이나 형상을 떠난 것은 아닙니
다. 말이나 형상을 떠나면 의혹에 빠질 것이요 말이나 형상에  집착하면 진
여(眞如)를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일음(一音)으로 설하십니다. 일음은 일미(一味)의
평등한 설법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대승·소승·권교(權敎)·실교(實
敎)·돈교(頓敎)·점교(漸敎) 등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해하는 사람의 능력에 우열의 차등이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설
법을 할 뿐 설법하는 부처님에게 차별의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처
님은 시종일관 동일한 마음으로 법을 설합니다. 이것이 일음입니다. 일음의
설법을 들은 중생은 저마다 근기(根機)에 따라서 알아듣습니다.
  유마경에

  불이일음연설법(佛以一音演說法)하니
  중생수류각득해(衆生隨類各得解)라고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한 소리로 법을 설하나 중생이 제 능력에 따라 각각 이해한다고
한 것입니다. 마치 물이 네모진  그릇에 담기면 네모진 모양을  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양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대기설법(對機說
法)이라 하고 그러한 가르침을 원음(圓音)이라고 하며 그  공덕을 진여법신
(眞如法身)의 공덕이라고 합니다. 진여는 무량한 공덕을 갖춘 법신 그 자체
이므로 이같이 말합니다.
  불모반야경(佛母般若經)이라고 하는 경이  있습니다. 이  경명(經名)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반야(般若)는 부처를 낳는 어머니입니다.  반야는 지
혜입니다. 눈에 띄는 사물을 구별하는, 차별상(差別相)을 아는 지혜가 아니
라 진여를 깨닫는 지혜입니다. 지혜를 닦아서 성불(成佛)했기  때문에 이렇
게 말합니다. 이 지혜에서 부처가 생(生)한다고 해서 ‘부처의 어머니는 반
야다'하고 ‘반야는 부처의 어머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불친종반야생(我佛親從般若生)인데
  수하도시마야자(誰何道是摩耶子)이리오 라고 합니다.
  부처는 반야로부터 친히 생하는데
  누가 부처를 마야부인(摩耶夫人)의 아들이라 하는가.

  나는 앞에서 마야부인을 통해  방편으로 이승에 오신 부처님은  차치하고
시방법계에 충만하신 법신불을 먼저 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진
여법신을 소소영영(昭昭靈靈)하게 보아야 방편으로 오신 부처님을 소소영영
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둘을 따로 차별하는  것은 크게 경
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에게는  법신
(法身)과 응신(應身)이 다르지 아니하고,  보신(報身) 또한 다르지  아니하
며, 정토(淨土)에서는 자타(自他)의 구별이 없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차별하는 것입니다. 번뇌와 미혹은 차별로 인해 생깁니다.
  중생은 허망하고 뒤바뀐 생각으로  청정한 가운데서 애착을 내기  때문에
번뇌하고 미혹하며 평등한 가운데서  차별을 일으킵니다. 때문에  고(苦)의
과보를 받게 됩니다.

  화불송춘춘자거(花不送春春自去)요
  인비영노노자침(人非迎老老自侵)이라
  꽃은 봄을 보내지 않으나 봄이 스스로 가고
  사람은 늙기를 바라지 않으나 늙음이 스스로 침범합니다

  이것이 자연의 세계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그것이 바로  진여의 세
계입니다. 그것을 자성(自性)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그 자성을 지키지 아
니하고 사물에 감동되어서 움직이고 인연을 따라 변합니다.  사물에 감동하
는 것은 탐착(貪着)입니다.
  탐심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중에서도 그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
탐심 때문에 성도 내고 어리석은 짓도 하게 됩니다. 이 삼독에 끌려 다니는
한은 생사(生死)를 초탈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가장  많이 강조하신
것은 생사를 초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독에 이끌려 다니는 사람은 자기
가 깨닫지 못하였음에도 깨달았다고 스스로 말합니다. 그러나

  칭오무행즉지견(稱悟無行卽知見)이요
  지견비오즉구선(知見非悟卽口禪)이라
  구선하감파생사(口禪何敢破生死)이니
  능파생사재정념(能破生死在正念)입니다.

  깨달았다고 말하지만 행(行)이 없으면 그것은 한낱  지견(知見)에 불과하
며 지견은 깨달음이 아니니 구두선 (口頭禪)일 뿐입니다.  구두선이란 입끝
에서 말만으로 하는 수행입니다. 기껏 지견(知見)이 있다고  말해도 그것은
알음알이일뿐이요 깨달음이 아닙니다. 그러한 지견은 사량분별(思量分別)에
의지해서 생기는 견해입니다. 사량분별을 떠난  무분별지(無分別智)와는 사
뭇 다릅니다.
  그러므로 구두선이 어찌 생사를 깨뜨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생사를 깨
뜨릴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념(正念)인  것입니다. 정념은 다 아시는  바와
같이 팔정도(八正道)중의 하나입니다. 진실한 지혜로써 삿된 생각을 깨뜨리
고 항상 바른 길을 기억하고 바른 길로 나아갈 뜻을 지닌 것이 정념입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만이 아니고 모든 사람, 중생이 다 행해야 하는 바른 길
이란 무엇인가.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해서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과거
부처님들도 한결같이 설하신 칠불통게(七佛通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칠불통게는 하도 유명해서 여러분이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라
  자정기의(自淨其意)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이니라.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이 청정하면
  그것이 곧 모든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이니라.
  나쁜 일 하지 말고 좋은 일 하라는 것입니다. 나쁜 일 하지 않고 좋은 일
만 하면 사람의 뜻이 저절로 맑아질 것입니다. 그 맑아진 뜻이 곧 정념입니
다.
  옛날, 중국의 유명한 백거이(白居易)는 조과선사(鳥 禪師)로 부터  이 칠
불통게를 듣고서 그런 것은 세  살짜리 아이도 아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조과선사는 세 살짜리 아이가 알지라도 팔십(八十)세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
善奉行)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것은 탐욕 때문입니다.
  사바세계의 중생들은 탐욕때문에 마음의 문을 닫고서 살고  있습니다. 탐
욕을 버리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모두가 한마음이 되고 법신(法身)을 이
루면 사바세계는 고통을 여읜 부처님세계가 될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께서 당신 스스로는 가고 오는 것이 없으나 중생으로 하여금
제악을 막작하고 중선을 봉행하여 불교를 실천하도록 하기 위해서 방편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정리 = 채한기 기자]

  월하스님 주요약력
  1915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 33년 강원 유점사에서 사미계 수지. 40년 통
도사에서 보살·비구계 수지. 42년 통도사에서 구하 스님 앞으로  건당. 44
년 철원 심원사 강원 대교과 졸업. 55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56년 조계
종 총무원 총무부장. 통도사 주지. 58년 조계종 감찰원장.  58-80년 조계종
제15교구본사 통도사 전계화상. 60년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조계종 법계고
시위원회 위원. 62년 원효 학원 이사. 72년 통도사 조실. 75년 동국학원 이
사장. 78년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79년 조계종 총무원장. 80년  조계종 종
정 직무대행. 84년 통도사 방장. 94년 조계종 종정 취임.

발행일:1998년 4월 29일 법보신문 
구독신청:TEL 02)725-7010 FAX 02)732-7019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