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5년02월15일(수) 15시29분45초 KST 제 목(Title): 나의 신행기 13 [법회 그리고 방편...] 경전공부에 몰두하던 나에게 어느덧 경전공부 자체가 인생의 장애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특이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특수의식이 생기고 있음을 암암리에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또 하나의 병이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거기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경전을 열심히 공부해도 경전을 공부하는 것이 특별한 것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부처님을 정면으로 배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자가 경전을 읽고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워낙 경전을 읽지 않고 "요약해답집"만 찾아서 읽는 불교의 분위기 때문에 그룹스타디 형태의 경전공부는 차칫 "우리만 잘났다"는 마음을 만들기 쉽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성직,특권) 종교에 대한 비진리성을 여실히 설파했는데 그것을 아는 불교도도 순간적으로 잘 못하면 바라문화 될 수 있음을 나는 알았다. 다른 것이 바라문이 아니라 바로 특권의식이 곧 바라문인 것이다. 우리는 그 위험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돌파구로 우리가 선택한 것이 대중법회였다. 만나자. 우리의 생명동지들을 만나서 그 분들에게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거짓말장이가 되고 만다. 그런데 법회라는 것이 생각처럼 간단치가 않은 것이었다. 부처님의 정법을 수호한다는 한가지 밖에는 재산이 없이 법회를 할려고 하니까 여러가지 문제들이 벌어졌다. 우선 사람들에게 법회가 있으니 나와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주변 머리가 통 없는 구성원들이라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말만 무성하고 제대로 진행이 되지를 않았다. 더구나 설법을 하는 법사님들도 그리고 준비를 하는 동료들도 귀 간지러운 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성질이 고약한 사람들 뿐이었다. 대부분의 불자들(통계적 불자)은 절에 가서 한방에 "빵"하고 효과가 있는 것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법회를 통해서 알았다. 머리 복잡한 것 말고, 금년에 어떻게 잘 풀릴 지 그거나 말해주면 좋겠고 그럼 도력이 높은 법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것은 불교가 아니라고 말하니 왔다가도 다음부터는 나오지를 않는 것이다. 참으로 고민스러운 것이었다. 아무리 당신은 부처님이십니다. 이렇게 말해주어도 반응은 "이상한 사람들이네, 부적이나 써주지!" 또는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애고 나하고는 않맞아요" 그러는 분들이 많았다. 이삿날짜를 잡아달라고 하는 분도 있고 작명을 해달라는 분들도 있고...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그런 와중에서도 한두분 법회에 참석들을 하시는데 기존에 불자인 분이 아니라 처음 불교를 접하는 분들이나 아니면 기독교등의 타종교에서 오래 생활한 분들이 우리 법회에 열성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묘한 반응이었다. 어쨌든 한번도 빠지지 않고 우리는 매주 법회를 가졌다. 서울에서 법회를 보다가 지금은 원당과 대전에서 법회를 한다. 원당에서는 법회외에도 경전강좌, 교양강좌등도 함께 하고 조금 안정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법회를 하면서 수 많은 유혹을 만났었다. 돈을 엄청나게 지원을 해줄 터이니 함께 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는데 우리 법회의 내용을 몇번 보더니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지 발뺌하는 분도 있었다. 내부적으로도 많은 유혹이 있었다. 우리 법회가 대중성이 없으니 일보 후퇴를 하는 것이 어떨까. 우리도 귀 간지러운 소리를 해 볼 수는 없을까? 아니면 협박성의 설법을 하는 것은 어떨까? 불자들이 많이 모인다는 법회들을 연구도 해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유혹을 떨치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법회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그것은 해선 안되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법회는 불교라는 옷을 입은 사람은 늘릴 수 있어도 참으로 부처님의 정법으로 피어나는 삶, 진실된 삶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흔히 방편이라는 말로 우리는 우리들이 사회라는 잣대에 속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쉽다. 부처님도 방편을 사용하시지 않으셨냐고 말하면서.. 방편상 거짓말도 할 수 있고, 방편상 사기를 칠 수도 있다고.. 그러나 부처님은 방편을 전혀 사용하시지를 않으셨다. 부처님의 방편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방편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방편은 방법이다. 부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방편은 한번도 사용하시지를 않으셨다. 부처님의 방편은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이 아니라 부처의 세계속에서 부처와 함께하여 그 자리에서 부처임을 함께하는 방편이지 거기에 중생이 있고 그리고 불쌍한 그 중생을 이끌기 위하여 방법을 쓰신 것이 아니다. 한 번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고, 한 번도 사기를 치지 않으면서 진실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한 것, 그것이 부처님의 방편인데 어떻게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방법론적인 방편일 수가 있을까? "해를 가리치면서 달을 보라는 것이" 올바른 방편이 아니지 않은가? 일시적으로 거짓된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결과가 좋으면 되지 않느냐는 그런 것은 불법에서는 용납될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지를 않고 온통 제도할 중생밖에 보이지 않기에 해서는 안될 일을 하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법회를 하는 벗들에게 꼭 말하고 싶은 것은, 올바르고 정직하게 부처님의 정법을 전법하지 않으면 설사 통계적 불교도가 5천만이 되어도 불교도는 하나도 없는 것이니 이 땅에 단 백명의 불교도밖에 없는 날이 오더라도 솔직하고 순수함으로 진지함으로 우리는 전법하고 돌팔매를 맞는 일이 있고 지옥고통속에 아픔을 느끼는 한이 있어도 우리들의 생명동지들을 부처님으로 모신다는 대승의 정신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