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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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5년02월15일(수) 15시26분30초 KST
제 목(Title): 나의 신행기 9


[삭발하면 모든게 해결이 되리라..]

이학년때이다. 추석전날 친구들과 4.19때 먼저 가신 선배들에게
술한잔을 올리기로 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에 장엄한 의식이
있었고 결국 술은 우리가 마셨다. 일학년때 "법난"도 겪고 아뭏든지
학교생활에 흥미보다는 떠들어야 할 사건이 많은 우리들이었다.
그러니 한두잔에 끝나기는 어려웠고 퇴계로의 술집들을 전전하면서
갈 때 까지 갔는데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그 때는 통행금지라는 것이
있어서 방범 아저씨가 순찰을 돌다가 길 바닦에서 수면삼매에 빠진
나를 발견하고 초소로 끌고 갔다.

그런데 정신 차려보니 가방도 없고 학생증 기타 모든 것이 다 없다.
잘은 모르지만 평상시 행동으로 보았을 때, 모두 술집에다 돈대신
맡겼을 것 같은데 아무런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집 전화번호 하나고 뛰어난 기억력 덕분에 신분이 확인되어 초소에서
통행금지 해제 시간까지 잘 자고 �물屛뎬�. 새벽에 춥고 차비도 없어서
근처 병원에 갔다. 경비 아저씨에게 대충 몇호실 보호자라고 말하고
들어 갔는데 전에는 복도에 의자가 많았는데 어떻게 된게 의자들이
다 없어졌다. 힘들게 구석의 의자를 찾아서 눈을 좀 부칠려고 하는데
경비 아저씨가 깨웠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어디 한 두번 이런 일이
있어야지!!" 또 끌려서 경비실로 갔다. 취조가 또 시작되고 긴 시간의
훈계를 들은다음에 "추석에 고향도 못가는 불쌍한 시골학생"이라고
거짓말하여 동정심을 불러 일으킨 다음 풀려났다.

그리고는 학교에 갔다. 학교는 안전하리라..
그런데 학교에서 얼쩡대니까 학교 경비 아저씨가 또 끌고간다.
추석날 학교에서 남루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니까 수상하다는 것이다.
이 번에는 학과 교수님에게 전화까지 하고 확인을 하였다. 하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이겠지..
확인이 끝나자 경비아저씨가 차비하라고 돈을 주는데 자존심때문에
거절하고 학교에서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집에 가자니 추석날
보통 혼날 것이 아닐것이고 마땅히 갈데가 없었다. 그 때 머리를
때리는 고도의 합리화... 

"아! 인연이구나. 출가하여 스님되라는 뜻일 것이다..."

이렇게 잠잘 곳도 없는 매정한 사바세계를 뒤로하고 나의 가치
성불을 찾아서 떠나자. 너무나도 괴로운 세계이구나...

차비도 없고 기왕 출가하는 것, 길거리에서 돈 빌리지 말고
걸어서 고행길을 가자. 그렇지만 너무 먼 곳은 곤란하니
경기도 광릉 봉선사로 가자.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참으로 어리섞음의 극치였다. 출가의 동기가 너무나도 우습다.
도데체 술마시고 하룻밤 길거리에서 잤다고 그것이 출가의 핑계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마 그 때, 스님되었으면 일년도 안있다가
다른 핑계로 다시 속퇴를 했을 것이 틀림없다.

아주 오랜시간을 걸어서 배가 몹시 고팠다. 퇴계원쯤 갔나 보다.
옆에 개울에서 아이들이 추석 과일을 먹는 것을 보니 걸음이
저절로 멈추어졌다. 음 나보다 힘이 없는 애들인데 과일 좀 달라고
해볼까. 아니면 아예 뺏어서 먹을까. 마왕과의 싸움이 시작되고..
나는 마왕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그러면 안되지 성스러운 이 길에서
벌써 이러면 안되지. 억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다음의 마왕이
봉선사 가까이 있는 고모집에서 나타났다. "어차피 출가하실 것,
우선 주린 배를 채우시고 내일 하소서" 마왕이 꼬셨고
그리고 나는 졌다. 고모집으로 발을 돌리고 집에 가니 모두 논에
일나가시고 아무도 없었다. 허겁지겁 송편을 찾아서 먹고 쓰러졌다.
다음날 아침 고모님의 취조가 시작되고 나는 그냥 고모님이 보고 싶어서
왔다고 둘러댔다. 고모님은 차비를 주고 집에 가라고 했다.
그렇지만 "출가의 큰 뜻을 어찌 여기서 포기하리.." 돈이 생겼으니
속세에서의 마지막 담배를 사서 피우고 속세의 모든것을 다 끊자.

봉선사에 당도하니 스님 두분과 여자 신도 두분이 담소중이 었다.
남루한 차림의 내가 인사하니 스님이 어쩐 일로 왔냐고 물었다.
다리를 약간 저는 스님인데 법명을 기억하지 못하겠다.
"스님 너무나도 괴로워서 왔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님이 하는 말,
"그 괴로움 내 손바닦에 내놓아봐!!" 벗들은 어디서 많이
본 대화일 것이다. 그 때, 괴로움이 찾아지지 않습니다. 이러면
딱 끝나는 것인데, 멍청하게 이게 무슨 말이지.. 그러고 있었다.
"괴로움은 없어.. 스스로 조그만 것이 생긴 것 같으면 혼자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눈덩이처럼 만들고서 괴롭다고 하는 것이야!!!"

그 소리를 듣자마자 하늘이 열렸다. 세상이 황금빛으로 변하는데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세계였다. "아이코!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야!!"
얼굴이 밝아지고 나는 스님께 인사를 하고 절에서 나왔다. 

모든 근심걱정을 다 잊고 버스에 올라탔다. "라라루루"
드디어 내가 견성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집에 왔다.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라라라..
 술 마시고 가방은 잊어 버렸어요. 라라라
 별 일 없으셨어요. 라라라 "
 
어머니는 가출한 자식을 찾아서 이틀을 이절 저절로 뛰어 다녔는데
역시 광덕스님(불광사)은 큰스님이다. 난 광덕스님을 딱 한번 뵈었는데
고고한 학같은 신선이라는 느낌을 가졌었고 그 이야기를 어머니께
한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광덕스님을 찾아뵙고 혹시 그 절에 왔나를
알아 보셨나보다. 광덕스님왈.."틀림없이 집에 옵니다" 예언 적중..
 
이렇게 딱 한번 진행했었던 출가는 실패..

학교에 가서 드디어 떠들기 시작했다. 하늘이 열렸다. 그 때, 나와
친한 스님이 말했다. 그런 일은 살다 보면 너무나 많은 일이야!!
김빠지는 소리였다. 애고...

이 후로도 나는 상황이 불리하면 출가를 생각했다. 학교 성적이 나쁘니까
제 때 졸업하기는 어렵고 좀 창피한 일이니 멋있는 핑계 거리를 만들어서
불교학과로 일단 전과 한 다음 출가하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나는 출가를 단행했노라... 이 정도 이유를 만들어 놓고...
군에서는 정기훈련에 앞서 선발대로 먼저 훈련장에 가야되는
경우가 생겼다. 훈련장소에 도착하자 마자 총을 훈련장에 두고
민가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돌아오니 총이 사라졌다.
"그래 잘 되었다. 영창에 들어가 고요히 홀로 도 닦다가
어차피 버린 인생, 제대후에 바로 절로 들어가자" 등등...

그렇다. 출가는 도피가 되어서는 안된다. 출가는 도피가 아니라
우리를 얽애매는 그 모든 삶의 모습들과 당당하게 맞서는 것이다.
도피를 일삼는 내가 만일 출가라는 형식을
빌었다면 그 세계를 온통 오염시킬 것은 뻔한 것이다. 출가는 멋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스님들이 존경스럽다.

출가와 가출의 차이점. 가출은 도피이다. 출가는 정신적 제약의
파괴이다. 울타리와 형식과 모든 규정된 좁은 삶에서 몰록 뛰어나가
나온 그 자리를 냉철하게 바라보고 따뜻하게 안을 수 있다면
머리깍는 것과 관계없이 출가인 것이다.

"나무"하면 곧 출가이고 우리 불자는 출가의 의미를 언제나
잊어서는 안된다. 고정된 곳, 편견의 자리, 왜곡된 생명관에서의
과감한 일보, 자신의 모든 감정과 삶을 무량한 불보살님 앞에 
스스럼 없이, 부끄러움 없이 던지는 용사..
부처님의 아들 딸이라는 과감한 선언...
"스스로 부처님께 목숨을 돌리나이다."
"이 후로 나는 비겁한 삶에서 용사의 삶으로 삶의 내용을 바꿉니다."

내가 비록 엉터리 출가를 단행했었다고 거기에 주눅들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와 관계없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항상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부처님으로 모시고 있는데 무엇을 망서리리...
무엇을 숨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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