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5년02월15일(수) 15시25분40초 KST 제 목(Title): 나의 신행기 8 [경봉스님, 성철스님..] 이것은 가벼운 이야기이다. 학창시절 두 분은 나의 꿈이었다. 난, 성철스님보다 경봉스님이 좋다. 왜냐하면 그 이유가 있다. 두분 다 나는 만난적이 없다. 난 두분과 책을 통해서만 만났다. 경봉스님은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그 앞에서 화롯불위에다 고구마나 뒤집으면서 옛날 이야기나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학 이학년 두학기를 모든 전공을 다 F 학점(람보)을 받고 휴학을 했다. 그래도 별 생각이 없었으니 철이 없어도 보통 없었던 것이 아니다. 부모님은 속이 터졌을 것이다. 음.. 그래도 장학금을 주신 우리 부모님, 선배한분이 우리 집에 자러 왔다가 방바닦을 굴러다니는 성적표를 보고서 "대성통곡(너무 웃어서 울음이 됨)"을 하였다. "이런 성적표는 태어나서 처음 본다." "넌, 거지가 되지 않으면 대단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 선배가 그렇게 말했다. 난 후자에다 돈을 걸어야 겠다. 벗들도 후자에 돈을 걸었으면 좋겠다. 휴학기간 군입대를 기다리는 중에 수련회를 갔다. "경북 봉화 각화사" 안 가본 분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도량이다. 전설도 재미있고 그 절은 꼭 자고와야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난 그절을 "새벽절"이라고 부른다. 삼천배 기도정진을 끝으로 수련회가 끝났다. 난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성철스님과 경봉스님"을 만나겠다. 저녁에 해인사에 도착해서 우선 여관을 잡아서 짐을 풀었다. 절에서 자는게 아무나 되는 일이 아닌 것은 그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선 출출하여 라면을 끌여서 먹고 함께 간 막내후배에게 설겆이를 시켰다. 그런데 그 후배는 좀 엉뚱한 친구기에 의심스러워서 설겆이를 잘하나 감시하러 나갔더니, "역시!!!, 자기가 신고 온 양말을 벗어서 코펠을 닦고 있었다". 시킨 내가 잘못이지. 그 양말은 수련기간중 한번도 갈아 신지 않은 양말이다. 정리가 끝나자 술파는 곳에 가서 술을 열심히 마시고 떠들었다. "그런 정신으로 성철스님을 뵈러 하다니..." 다음날 일찍 스님이 계신 백련암으로 향했다. 절에 가실 분들은 꼭 새벽에 움직여야 한다. 해인사는 잘 기억이 안나지만 보통 새벽에 절에 가야 입장료를 안낼 수 있다. 백련암에 도착해서 시자 스님께 "군에 입대하기 전에 성철스님 한번 뵙고 싶어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스님이 편찮으셔서 오늘은 뵙기 힘들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왕 왔으니 삼천배나 하고 가란다. "엇 그제, 삼천배를 했는데 또 하란 말인가! 더군다나 삼천배를 해도 스님을 만날 수 없는데..." 곰곰히 생각하다가 하기로 했다. 아마 스님이 아프지 않은데 괜히 그럴지도 모르고 삼천배하면 만날 수도 있을 지 모르지.. 삼천배를 시작했다. 그제한 삼천배로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상태가 어느정도 지나자 다시 원기가 회복되었는지 작동을 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두시간 지나 잠시 쉴려고 중단을 했는데, 어떤 묘령의 아가씨가 보고 있었다. 그리고 삼천배하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말하니 108배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냐고 묻는다. 나는 한 10분이면 된다고 하니, 그 아가씨 깜짝 놀라면서 자기는 30분이 걸리는데 한번 시간을 재보아도 되냐고 하는 것 아닌가? 아이고! 안된다고 할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허락했다. 그 아가씨는 시계를 보면서 절하는 횟수를 세고 우리는(모두 셋) 죽어라 시간내에 테이프를 끊기 위해서 굴절운동을 시작했다. 이런 것은 절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이다. 그때 머리속에는 성철스님보다도 10분안에 108배를 끝내고 아가씨와 희희덕거릴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이 아가씨는 누굴까? 학생일까? 아님 직장인, 몇살 쯤 될까? 뭔가 잘 이루어질까?" 뭐 맨 이런생각 투성이었다. 어쨌든 해냈다. 대단한 다리... 오후공양이 되어서 밥먹으로 가느라 아가씨와 헤어졌다. 아가씨보다는 역시 밥이 먼저, 때 놓치면 밥굶는다. 꼬박 해뜬 시간을 모두 절하는데 보내고 3000배의 고지를 점령했다. 그렇지만 솔직히 3000배를 안했다. 오후에는 거의 정기적으로 절 하나에 염주알 몇 개씩 바겐세일을 했으니까...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자신이 똑바로 보고 있는 것도 모른채로 말이다.. 백련암에서 몸을 씻고 저녁공양을 했다. 하룻밤 자는 값이 절 삼천번인 셈이다. 다음날 스님들이 읽는 백팔참회문을 잠결에 들었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어서 예불에 불참하고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시자스님께 성철스님을 뵐 수 없을까요? 하고 넌지시 물었다. 그랬더니 시자스님이 잠시 기다려 보라고 했다. 성철스님에게 갔다 오더니 도저히 안되겠다고 했다. 그리고 법명과 화두를 스님이 친필(붓도 아니라 만년필)로 쓰셨다고 보현행원품과 함께 주셨다. 그때 받은 법명이 "覺雲", 화두가 "삼서근" 백련암을 떠남과 동시에 둘 다 잊었다. 얼굴도 안보고 어떻게 이름과 화두만 주지.. 그것도 삼천배씩이나 시켜놓고 그런 철면피가 어디에 있나.... 기분이 몹시 나빴다. 붓으로 화선지에만 써서 주어도 남에게 자랑하고 가보로 삼을 터인데... 역시 성철스님이다. 어떻게 삼천배를 엉터리로 한것을 방안에서 다 보았지. CATV라도 법당에 설치했나? 그 때, 내가 내려오면서 스님께 한 욕설은 천리안에 고발당할 까봐 쓸 수가 없다. "애라, 잘 되었다. 역시 나의 스승은 할아버지 경봉스님이다. 성철과는 인연이 없어!!! 못먹어도 GO,,,GO,,,통도사 극락암" 통도사 극락암으로 갔다. 통도사에 들어서는 순간... 통도사 큰종이 대낮에 이유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야! 내가 왔다는 것을 어떻게 통도사에서 알았지!!!" 희희낙락하는데... "지금 경봉 큰스님이 막 열반하셨습니다." 방송이 나오고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서있었다. 영원히 그 자리에 그렇게 있을 것처럼.... 가슴에는 썰렁한 바람이 지나가고... 눈은 젖어들고 눈물이 나올까봐서 눈꺼풀에 힘을 준채로... 발은 갈 방향을 잃은채 힘이 빠졌다. 해인사에서는 병 때문에 통도사에서는 죽음 때문에 그렇게 나의 젊음은 그 시간 그 공간에 그대로 멈추었다. ----------------------------------------------------------------- 이렇게 엉터리인 나도 진실하게 살아보자고 말을 막한다. 나만 진실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모두 진실하지 않으면 언제나 고통은 가슴을 짓누르기 때문이다. 모두 다 진실하지 않으면 나의 진실도 진실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벗들에게 기도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중생제도라는 기막힌 탈출구를 선택하여 위선의 탈을 뒤집어 썼던 것도 말하고 싶다. 머리깍고 스님이 되겠다고 객기를 부렸던 시절도 말하고 싶다. 모두다 정신병에 불과했었던 그것을 벗들이 선택하지 말기를 바라면서.... "나무"를 하지 않으면 그 어떤 훌륭한 말도 거짓이 되고 "나무"를 하지 않으면 그 어떤 성스러운 보살행도 다 거짓이 되는 이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나무"만 하면 죽은 귀신까지도 다 훌륭한 보살님으로 벌떡 일어나는 이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세속은 출세간과 반대가 아니라는 것도 벗들이 알았음 좋겠다. 세속은 "너와 나", 출세간은 "우리"라고 말하는 똑 같은 것임을... 나는 군생활도 역시 "도인"답게 보내고 복학을 했다. 이제 현실주의자로 변해서.... 우리는 이제 껍질을 벗고 우리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면서 살자. 슬프면 슬프다고 말하고, 기쁘면 기쁘다고 말하자.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괴로우면 괴롭다고 말하자.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하자, 모르면 모른다고 말하자. 못난점이 있으면 나는 이것이 못났으니 네가 좀 채워줘 그렇게 말하면서 살자. 나는 너의 그런점 때문에 고통스러워 그렇게 털어놓고 살자. 이름에 속고 지위에 속고 직업에 속고 종교에 속으면서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을 없는 것처럼 감추지 말자. 불경 구절과 조사스님의 말로 우리의 치부를 가리지 말자. 오래동안 우리를 괴롭힌 굴레를 스스로 벗어내자. 알면 얼마나 안다고 스스로를 숨기고 살 수가 있을까? 솔직하고 정직함으로 우리 아침 햇살앞에 당당하게 함께 서자. q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