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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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4월 23일 목요일 오후 01시 46분 23초
제 목(Title): 탄생이야기1-탄생게와 인간존엄


돌아오는 5월 3일이 석가탄신일 이군요.
석가탄생의 의미를 생각해 볼수 있는 것 같아서 가져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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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12/25                 입력일 : 97/05/12 17:36:45      자료량 :98줄

  제목 : 탄생이야기1-탄생게와 인간존엄

 "하늘 위  하늘 아래 그 어디서건  나보다 존귀한 것은  없도다!"부처님은
마야부인의 몸에서 나온 직후, 동방으로 향하여 일곱  걸음 걸은후 토했다는
사자후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南傳이나 漢譯 北傳들은 각기 그  내용을 조
금씩달리하고 있긴 하지만,  진리 실현자인 부처님의 위상을  자신있게 천명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말은 인간  자신이 지닌 가능성이나 능력, 존엄성에  관한 최고의
선언으로 이해되기도 한다.자신을  괴롭게 억압하는 그 모든  왜곡과 구속을
스스로 떨쳐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누구나 지녔다는, 인간의  근원적 자주성
과 평등성의 장엄한 선포인 것이다. 역사적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적어도
이 이야기에는 부처님이란 분,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의  특징이 담겨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과연 그런가. 중생살이  현장에서 얼마나 실감할  수
있는 말인가? 조그만 성취에 끝없이 우쭐대는가 하면,  오만과 들뜸이 초래
한 쓰라린 과보 앞에서는 교훈의 발굴과 자기 교정보다 책임 전가와 무기력
한 자기 비하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쳐 버리는 것이 우리네 중생의 흔한 몰골
아니던가. 이  초라하고 나약한 중생이 과연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실현할
수 있을까.


 인간세 현장의 부정적 면모들을  주목하는 사람들이 채택한 문제해결 방식
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최고의 가능성과  능력을 제3의 존재에게 위임하
고 그 앞에 무릎 꿇게 하는 종교적  방식이 그 하나이다. 全知.全能.全善하다
는 절대자 앞에서  죄인으로 서는 신학적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도구적 이
성, 즉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능력을 신뢰하여 탐욕과  이기심을 적당한 선에
서 조절하려는 방식이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적이므로, 서로의  생존을 위해 필
요한 최소한의 규칙을  마련하여 성실하게 준수하자는 것이다.  性惡의 관점
에서 이기심과 탐욕을 합리화하고 정당화시킬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려는 발
상이다. 신학적 독단에서 벗어난 근대 서구인들이 인간세의  경영을 위해 실
험해 온 것이 바로 이 후자의 방식이기도 하다.

 인간의 본성을 性善이나 性惡으로 규정한 후 혼란을 수습하는 해법을 강구
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나 편견에 물든 것일 수  있다. 한없이 나약하고 모
순되고 어리석은 모습이다가도, 끝없이 강인하고 고결하고 지혜로운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이 양 극단의 사이에서 양자가  중첩된 복
잡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 사실은 중생 삶의  더 일반적인 현실일지 모른
다.

 그리고 인간은 이  모든 가능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성선보다도
훨씬 더 큰 가능성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얼핏 모순 덩어리로 보이는 이 초라한 몰골의 중생이 원리적 상대성마저도
초월한 채 윤리적일 수 있는, 실로 눈부실 정도의  가능성과 능력을 지닌 깨
달음의 주체라면  어떨까. 진실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일  수 있는 존재라면
말이다.

 쉽게 믿기지야 않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떨까. 비난과 경계의 눈초리
로 차갑게  째려보아야 했던  타인들에게, 난생  처음 긍정과  신뢰, 이해와
배려의 따사로운 눈빛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부정과
적대로  대할 때는  굳어 불편하던  나의 마음이,  눈녹듯 풀어지며  편하고
자유스러워지지  않을까.탄생선언 본질그런데,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확인이다.

 인간의 그  엄청난 가능성을 체득으로 확인하는  일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확인될 수 없는 화려한 선언들이 얼마나 많은 순진한 마음
들을 우롱해 왔던가, 공허한  미사여구에 감복하여 모든 것을 걸었으나,결국
은 빈 손을 내려다 보며 허탈하게 쓴 웃음 머금던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
던가. 무책임한 최면술에서 풀려 났을 때 엄습하는  낙담과 배신감을 무엇으
로 보상하였는가.

 부처님이 돋보이는 것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체험으로 확인하는 방법론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장의 진위를 경험 속에서 검증할 수  있는 절차
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분은  실로 양심적이고 탁월하다.오
늘,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그 웅장한 가능성을 어떻게  확인하며
실현해 나갈 것인가. 모든  경계(相)들을 소유와 소비의 대상으로 보아 쫓아
가라는 이데올로기가 주도하는 것이 현대사회이다.

 급기야 상상으로만  굴렸던 경계들을 생생하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게
구현하는,이른바 가상공간에서의 가상체험도  상업화되고 있는 현실이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강렬해진 경계들이 문화라는 미명으로 등장하여 인간
을 빨아들이는 시대이다. 광기마저 느껴지는 들뜬 눈으로  그 경계들을 쫓아
가며 히죽거리는  이 시대의 병든  정신들은, 과연 무엇으로 자신을  지키고
존귀함을 실현할 수 있을까.

 어찌해야 "천상천하 유아독존" 할  수 있을까.중생 알음알이 매순간 무수한
현상(相)들이 출몰을 거듭한다. 그  경계(境界:相)들을 따라나가 휘말리면 이
해의 결핍과 오해(無明)로 인한  갖가지 번뇌가 꼬리를 물며 악순환된다. 그
결과 불안과 불만,  할퀴고 할퀴워진 관계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것이 중생
알음알이의 과정이며 내용이요 속성이다.

 이 무지와 집착과 고통의 악순환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부처님의 정
교한 장치가  마련된다. 그리고 그  장치의 가동이 정점에 이르는  대목에서
참선이 등장한다. "경계를 따라 휘말려 나가지 말고 지켜보라. <일체>의  경
계를 놓치지  말고 챙겨라. 언어(경계)로 빠져  나가지 말고 언어의 머리(話
頭)에서 챙겨라"결코  이해와 무관한 비법이나 비술이  아니다. 해탈을 위해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와 근거를 지닌, 깊은 사상적 토대 위에  고안된 정
밀한 장치이다.

 인간의 자주적 존엄성을  불교적으로, 그리고 깊이있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결국 참선으로까지 나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난감한  영역이라 지레 포기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고 중지를 모아 분수껏 역량껏  다가서야 할 보배 영
역이다. 인류가 참선의  본질을 다양한 형태로 응용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
면, 그 때 비로소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관문에 함께 설 수 있으리라.
 <발행일(1625호):1997년 5월 13일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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