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크로체) 날 짜 (Date): 1998년 4월 21일 화요일 오후 03시 13분 30초 제 목(Title): Re: 방법론과 찾는자들. 네. 그 글의 요지는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다시 방법을 구하는 어리석음을 말한 것입니다. 방법을 구하다보면 더 좋은 방법, 더 빠른 방법 을 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방법,방법하다가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법론 그 자체에 몰두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진정한 종교인은 길을 걸어가면서 깨달아가지, 길 위에서 다른 나그네들과 내 방법이 옳고 너의 방법은 틀렸다는 말싸움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 밑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남방불교의 선승은 한국불교의 얼핏 체계가 없고, 비과학적으로까지 보이는 화두선을 얕잡아본 것입니다. 그가 위빠사나의 대가였다 해도, 화두선은 알지 못하므로 한국의 스님에게 일침을 당한 것이지요. 사실 위빠사나와 화두선의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그 목적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둘 중 어느 것이 수승한가를 두고 고민을 하거나, 탐구를 하고, 논쟁을 하기도 합니다. 크게 보자면 기독교와 불교의 논의도 이런 실수에 해당합니다. 서로의 그릇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좋지만, 상대방이 걸어가는 길이 막다른 곳에 도달해서 결국 낭떠러지로 이어질 것이라는 식의 부정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돌멩이에 걸려서 금방 넘어지고 맙니다. 자신의 길이나 남의 길이나 다같이 사람의 길이니만큼, 험난하기는 마찬가지인데, 남의 길에 대해서 열올리며, 한 눈 팔고 있다면 그 사람은 넘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 수도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논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비비에스에서 하는 작업들은 사실 개인적 차원으로 본다면 엄청난 낭비임 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적업들이 갖는 파급효과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글을 쓰는 목적은 기도하는 목적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내게 베풀어준 것에 보답하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바라는 세상을 같이 만들어갈 여러분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 배워서 의식에 뚜렷이 형상화시켜나가자 는 것입니다. 의식 속에 뚜렷이 자리잡은 그 생각들은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우리는 정신의 그릇된 습관들을 의식의 수면 위로 끄집어내서 고쳐나가야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무엇이, 다른 이들 안에 있는 무엇이 그릇되었는가 열심히 찾고 그것을 과감하게 쓰도록 하십시오. 그 글은 스스로를 돕고, 다른 분들에게도 큰 힘이 되어 퍼져나갈 것입니다. ...like tears in ra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