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5년02월15일(수) 15시21분01초 KST 제 목(Title): 나의 신행기 4 [죽음을 피하면서 생사를 넘는다...] 처음 불교를 알고 부터 한 일년간... 나는 생사해탈을 하겠다고 부모님이 보면 거의 미친놈처럼 달라붙었다. 어쨌든 생사해탈을 하여야 이 불교라는 곳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하에서 나는 밤을 새워 불서를 읽고 밤을 세워서 앉아있었다.(매일 그런 것은 아님, 술 마시고 쓰러져 잔 날이 더 많음) 그리고 그것을 하지 못하면 인간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가끔... 밤새워 읽은 책과 밤새 앉아 있으면서 추적한 내용을 갖고 학교에 가면 먼저 불교학생회로 갔다. 그리고 떠들어 댔다. 나는 이 만큼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생사해탈에 더 가까이 간 사람인양 으시댔다. 완전히 정신병자였다. 나의 얼굴은 적당한 도인적인 긴장감으로 온화한듯이 때로는 칼을 휘두르는 선사의 얼굴을 하기도 하면서 분별과 집착이 없는 모습을 만들어야 했다. 이제 나는 실제적으로는 겁쟁이면서 불교라는 틀안에만 들어오면 용기백배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벽암록이나 전등록에 있는 공안들을 마구 떠들어댔다. 실제로 나는 그것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모른다는 것 조차도 인정하지 않은 철면피적인 불교도였다. 그리고 지금도 알지 못한다. 단지 바뀌었다면 지금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는데 정신병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못했다. 상태는 갈 수록 악화되었다. 나는 나의 신행의 출발을 되새겨 보면서 위와같은 나의 정신병의 근원이 무엇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나는 피했다. 나는 나의 문제, 나의 고통, 나의 공포를 불교를 이용하여 교묘히 가리고 교묘히 피했다. 대부분 신행생활을 오래한 벗들은 불교를 조금 알면 쉽게 합리화와 자기변호에 능숙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피하는 것과 생사를 해탈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다. 나는 불교를 나의 모습을 훌륭하게 만드는 치장물처럼 이용한 것이다. 실제로 엄습하는 죽음의 문제는 분별하면 안되고 집착하면 안된다는 것으로 다 덮어버렸다. 아니면 아직 남은 날이 많은데 까짓것 우선 도인 티나 열심히 내어보자는 허위로 넘겼다. 마음 속에는 불안과 공포, 두려움과 외로움이라는 것으로 가득차고 겉은 생사해탈한 것이다. 난 개그맨이었다. 나는 개그를 한 것이다. 이 병을 나는 개그 병이라고 불러야 겠다. 삶을 산다는 것과 삶을 규정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 삶을 산다는 것이 불교라면 삶은 어떤 것인가를 용어로 규정하는 것은 불교학이다. 나는 삶을 규정한 용어들과 어떻게 라는 방법론의 노예가 되었다. 나의 삶은 온통 위선과 방법론의 껍데기에 가리워졌다. 나는 많은 시간 불서와 경전과 씨름했지만 하나도 읽은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읽어야 할 진실은 보지를 못하고 나는 방법론과 보다 나은 어떤 경지를 볼려고 했다. 나는 안다. 부처님이 결과를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결과를 숨긴것이 아니라 결과는 없기에 말씀하지 않았음을 안다. 그것을 결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정신병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석가모니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도 했었다. 별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어쨋든 나는 허황된 꿈만은 참으로 컷었다. 불교외에 각종 외전들도 열심히 보았다. 기왕이면 다 통합해야 겠다. 욕심을 냈다. 이왕이면 불교외에 다른 것도 잘 알아야 더 뛰어나 보이지 않을까? 지금 그 결과를 말해보면 "뛰어야 부처님 손바닦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적 측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뛰어야 석가모니 손바닦 안이라는 것이다. 모든 이교, 사상, 요가, 명상, 신선도, 단학등을 불문하고 완벽하지 못함을 나는 안다.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완벽했다. 그런데 완벽치 못한 종교가 불교를 흡수하겠다니... 그렇다고 다른 종교가 잘 못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의 면허가 있다고 다 같은 의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일체 모든 생명의 병을 빼놓지 않고 평등하게 고칠 수 있는 의사인 것이다. 부처님은 너무나도 지혜로운 분이시다. 모든 외도를 다 상대하면서도 결코 외도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외도와 부딪히지 않으면서 외도를 굴복시킨 성인은 석가모니 부처님 한분 뿐이다. 진실함속에서 살다간 부처님에 버금가는 성현들을 무수히 배출한 것도 부처님 한 분 뿐이다.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 없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한적인 사랑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하늘위와 하늘아래 유일한 분이다. 모든 생명을 다 부처님으로 받들기에 유일한 분이다. 그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우리의 근원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의 상대자가 될 수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흔히들 불교를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나같이 게으르고 나같이 엉터리인 사람도 할 수 있는게 구도의 삶이고 수행의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돈오돈수"이다. 흔히 돈오돈수 그러면 "와! 최상승"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 스님이 너무 고상한 생활을 해서 고상한 표현을 쓰는 바람에 우리같이 막사는 인생이 보면 어렵게 보일 지 몰라도 "돈오돈수"야 말로 "불교 엄청 쉽다"를 나타내는 것이다. 불교가 특별한 사람들만이 특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 돈오돈수다. 나는 나의 고백을 계속하기 전에 이 문제를 먼저 말해야 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