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5년02월15일(수) 15시20분11초 KST 제 목(Title): 나의 신행기 3 [인연...] 어떤 종교가 어떤 종교보다 더 낳다라는 말이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불교는 이 세상 모든 종교를 다 합하여 대적한다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는 종교라는 것을 불교도들은 알아야한다. 각 종교를 다 통합했다는 종교들이 많이 있지만 불교는 어떤 종교에도 통합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불이(둘이 아님)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불교를 어떤 종교가 흡수한 다는 것은 그것이 곧 불교에 흡수된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석가모니의 기본 가르침을 가장 훌륭하게 계승한 것이 대승불교이고 그 대승불교의 정신이 가장 살아있던 것이 우리나라 불교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음 좋겠다. 한국불교는 사람의 근기를 따지거나 성직자와 신도등을 구분하는 비불교적인 모습을 제거하는데 언제나 심혈을 기울였다. 우리의 통 큰 선배들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정확히 알고 정확히 깨달았고 정확히 구현하려고 했었다. 근기나 따지는 중국의 선불교와 일본의 종파불교와는 다른 정말 대승불교, 석가모니의 정법과 외도를 정확하게 지켜 나간 나라는 한국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았음 좋겠다. 이 나라에 와서는 모든 것이 다 불이(둘이 아님)가 되고 만다. 즉 석가모니의 정법이 그대로 유지되었던 것이다. 둘이 아닌 진실... 그것을 회복하여야 한다. 영주 부석사에를 가보자. 어떻게 정토와 화엄이 한 곳에서 둘이 아닌 모습으로 만들어 졌는 지를 보자. 근본을 깨닫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가람을 보자. 중국에서 종파를 들여오지 않은 의상스님의 통과 의상스님의 투철한 깨달음을 보자. 첫 부처님과의 인연은 대학생활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에 의하여 학과친구에 이끌려 불교학생회에 들어감으로 시작되었다. 난 불교라는 종교의 내용도 몰랐고 석가모니는 네 사람의 성인중 하나라는 정도로 아는 것이 전부였다. 불교학생회에 간 것은 단지 그곳에 여학생이 많다는 것, 그 곳이 너무나 재미있는 곳이라는 말에 속아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동기는 어쨌든 성공했다. 나는 불교학생회에서 여학생 하나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잘 살고 있다. 나는 불교학생회에서 비종교적인 모습(해탈)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받아서 읽은 입문서 하나가 나의 눈을 멀게 하였다. 내가 불교에 가장 관심을 갖게 한 용어는 생사해탈이었다. 죽지 않고 영원한 자유를 누리는 것이 부처라는 것, 그리고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그 말에 나는 어느덧 나의 모든 것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아침부터 법당 또는 술집에서 하루종일 불교을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집에가면 밤을 세면서 불서를 읽어댔다. 생사해탈하기 위하여... 나는 금방 도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입은 완전히 도인의 입이었다. 나는 분별하지 말아야 된다고 거품을 물고 말을 하였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높은 이상이고 가장 높은 경지, 그리고 올라야 할 최고의 가치는 부처였고 고승대덕들의 문집을 읽고 환희심이 생겨서 밤을 지새우기 일수였다. 그래서 그 결과 그 결론적인 어구들에 갇히고 말았다. 정신은 갇혀있으면서 몸은 완전히 거침없는 행(무애행)의 껍질을 쓰고 말았다. 이것이 한가지 나의 정신병이었다. 이 정신병으로 인하여 나는 학사경고를 두 번 받은 셈이다. 내가 옛날의 일들을 담담히 말한다고 해서 그 때의 일을 긍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정신병이다. 나는 그것에 조금도 가치를 둘수 없음을 확실히 알고 있다. 흔히 그런 과정을 무슨 구도의 한 과정이었다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경멸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6년 고행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도 나는 경멸한다. 과거의 내가 즐겨 쓴 말이기 때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6년 고행은 삶이 거짓에서 진실로 돌아서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아무리 에너지를 써도 그 에너지가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결과를 나타내듯이 노력이란 것도 그렇다. 진실한 삶으로 전환이 될 때 유일하게 역할을 한 것은 고행이 아니라 고행의 포기였다. 버린 쓰레기가 어떻게 가치가 있을 수 있는가? 나는 부처님이 진실한 삶으로 삶의 모습이 변화되는데 고행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진실된 삶을 가는 유일한 통로는 포기 곧 나무(南無)이기 때문이다. 이 나무가 곧 돈오인 것이다. 흔히 나무는 염불이고 돈오는 선이고 돈오는 최상승이고 나무는 하근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나무가 곧 돈오인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싯달타라는 이름이 붙기 전의 자기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스스로 나무불(南無佛)하신 것이다. 정직성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세상은 하나도 손대지 않으신채로...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의 삶을 왜곡되게 하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고행주의적인 사고와 수직적 등급의 계급관이기 때문이다. 어떤 스님이 몇년을 눕지 않았다는 말을 들으면서 우리는 몇년이라는 그것과 눕지 않았다는 그 모습에서 가치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 안을 보지 못한 채로. 나는 과거의 나의 정신병적 불교생활을 하나씩 공개할 생각이다. 어쩌면 많은 나의 생명동지들이 나와같은 불교환자의 길을 지금도 가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