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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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맧)
날 짜 (Date): 1998년03월16일(월) 01시26분12초 ROK
제 목(Title): 재미있는 선(禪)이야기(Ⅱ)


 [번  호] 89 / 200         [등록일] 97년 10월 21일 12:33      Page : 1 / 9 
 [등록자] MIRRK           
 [제  목] 재미있는 선(禪)이야기(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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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선이야기 두번째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선이라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고요한 분위기에서 한군데 자리를 정하고 가부좌를 트는 것일까요?

우리는 마조선사와 남악선사의 선문답을 통해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젊은 승려 마조가 열심히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6조 혜능대사의 뛰어난

제자였던 남악선사께서 마조의 그릇을 알아보시고는 넌지시 떠보았습니다. 

 " 자네, 지금 무얼하고 있나? "

 " 보다시피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

 " 좌선을 해서 무엇 하려는가? "

마조선사는 뜨악하니 올려다보면서,

 " 부처가 되려구요. "

다음날 남악선사는 마조선사의 선방 앞에서 기와를 숫돌에 갈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본 마조선사가 말했습니다. 

 " 아니 스님, 지금 무얼하고 계십니까? "

 " 기와를 갈고 있지. "

 " 뭐하시게요? "

 " 거울을 만들려네. "

마조선사는 웃으면서,

 " 원, 농담두. 기와를 갈아 어떻게 거울을 만듭니까요? "

남악선사가 드디어 마각(?)을 드러내며 말하기를,

 " 기와를 갈아 거울이 안된다면 퍼질러 앉는 좌선으로 어찌 부처를 기약하

   는가? "

쇠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마조가 엎드려 가르침을 청하자, 남악선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수레가 안 간다면 소를 때려야 하는가, 바퀴를 쳐야 하는가, 참된 선은 

   앉거나 누움에 걸리지 않고 이르러야 할 자리(佛)는 일정한 틀이 없다.

   너의 따지고 가리는 마음, 취하고 버리는 태도로 하여 <부처>가 질식하고

   있음을 왜 모른단 말이야. "

여기서 우리는 선이 어떤 특별한 자세나 방법을 갖지 않고 어떤 다른 것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장소의

분별없이, 시간의 분별없이 소위 불교라는 성스러운 가르침을 따르는 자라면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선의 수행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다소의 혼란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대충 선이란 것이

말로는 무엇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실제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형식적이나마 선의 종류에 대해서 집고 넘어가야 겠습니다. 본래 선

이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모양도 형식도 없지만, 그 방법의 상이로 인해

크게 3가지 정도로 분류합니다. 첫째는 화두를 참구함으로써 선의 방편을 삼

는 화두선 또는 공안선이라고도 합니다. 둘째는 가만히 침묵 속에서 마음을

관조해 보는 묵조선, 그리고 셋째는 염불을 하면서 마음 속의 염불하는 주체

와 객체를 살펴보는 염불선이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뛰어나고 어느 것이

더 열등한 것 없이 모두 쉬지 않고 부지런히 수행하면 결국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좋은 길들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화두선이란 말 그대로 화두를 연구하는 것인데, 화두란 말 그대로 '말

의 첫머리'를 가지고 크나큰 의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자면, 옛날의 한 승려가 동산스님께 물었습니다. 

 " 부처가 무엇입니까? "

동산스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 삼베 세 근(麻三斤) "  < 무문관 제 18칙, 벽암록 제 12칙 >

위 이야기에서 우리는 왜 동산스님께서 부처를 물었는데 삼베 세 근이라고

했을까 하고 저절로 의심이 생깁니다. 

또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옛날의 한 노파가 토굴에서 혼자 정진하고 있는 어느 스님께, 진리를 깨쳐서

중생을 널리 제도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극 정성으로 공양을 올리며, 갖은

뒷바라지를 다해 드렸습니다. 

그렇게 시봉하기를 20여년이 지난 어느 날, 노파는 그 토굴승의 공부를 점검

해 보기 위해서 딸을 시켜 밥상을 들여보내면서 한 가지를 이르었습니다. 

딸은 토굴에 가서, 어머니가 시킨 대로 스님 옆에 밥상을 높고 정진하고 계신

스님을 껴안으면서 여쭈었습니다. 

 " 스님, 이러한 때에는 어떻습니까? "

그 스님께서 태연히 말씀하시기를,

 " 마른 나무가 찬 바위를 의지했으니, 삼동 혹한에 온기조차 없더라. "고

했습니다. 

딸이 돌아와서 어머니에게 스님의 말을 전해 드리니, 노파는 크게 노하여

 " 내가 20여년 동안 큰 마구니에게 공양을 올렸었구나! "하며 당장에 쫓아

가서 그 스님을 끌어내고 토굴에 불을 질러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면 어째서

그랬을까요? 과연 그 노파는 어떤 대답을 원했을까요? 참으로 의심이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의심나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 골몰히 생각하는 게

화두선, 공안선입니다. 흔히 "이 마음이 뭣꼬", "이 뭣꼬"하는 것도 화두인

것입니다. 

둘째, 묵조선이라는 것은 화두없이 그냥 자신의 마음을 비춰 보는 것인데 원

불교에서 많이 쓰고 있는 수행법입니다. 하지만 싫증내기 쉽고 근기에 맞지

않으면 나아가기 힘든 수행법입니다. 

셋째, 염불선이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염불(念佛)하고는 좀 다릅니다. 보

통 절에서 흔히 무슨 제다, 무슨 날이다 해서 하는 염불은 부처와 극락을 자

기 밖에서 구하고 생각하는 일종의 방편 염불이고 실상 이것이 소위 선의 경

지에까지 오르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부처이고, 내 마음의 본 바탕이 부처라

는 믿음을 확실히 갖고 느끼면서, 염불하는 주체와 대상에 대해 관하는 것이

바로 염불선입니다. 그 외에도 선의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략 크게

보아서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는 선에 있어서의 주의할 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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