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10월24일(금) 10시04분53초 ROK 제 목(Title): 신통한 삼매 신통한 삼매 부처님께서 들어가신 삼매가 정해진 수순에 따라서 거기에 맞는 수행 법을 열심히 한 결과 얻으신 삼매라면 그 삼매는 신통하다고 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가령 초등학교 교과과정을 배우고 중학교 교과과정을 배우면 방정식을 풀 수 있다는 것을 가지고 신통하다는 말을 하지를 않습니다. 즉 인간이 노력하는 그 노력 여부에 따라서 얻는 결과는 신통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관습적인 인간관점의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간관점의 연장선이 신통하지 않으면서 또한 얼마나 힘든 과정이 될 것인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학입시를 위하여 밤잠을 설치던 자신의 기억이나 혹은 자녀들의 현상을 보면서 인간적인 관점과 관념상에서 도달해야 하는 목표들이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어렵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차원이 무한 차원이고 부처님의 삼매가 무한삼매라면 그 목표는 높이로 말하면 도저히 도달 불가능한 높이이고 따라서 요구되는 노력의 양도 상상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부처님의 삼매가 신통한 삼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적인 관점에서의 삼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관점에 의하여 부처님의 삼매에 대하여 도달 불가능하거나 혹은 노력의 양에 지례 겁을 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 무한차원의 삼매는 틀림이 없지만 신통하게도 인간적 무한노력이 거기에 수반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문이 드는 것이 어떻게 무한차원의 삶이 무한의 노력이 없이 이루어질 수가 있는 것일까? 당연한 의문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신통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한차원이란 어떤 것을 제외시키지 않을 때에 무한차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삼매에 들기 위하여 어느 부분은 안 된다고 한다면 그 어느 부분을 빼어놓은 삼매이기에 이는 무한차원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럼에도 꼭 제외시켜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 관점입니다. 즉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올라간다는 이 관점을 유지하는 한에 있어서는 신통한 삼매이며 편안한 삼매이면서 완전무결한 무한차원의 삼매는 영원히 점점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엄청난 노력과 무한을 향하겠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끝없이 유한공간에 머물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결국에 불법에서 물러나는 결과를 가져오던지 아니면 먼산을 허망하게 동경하고 언제나 남과 비교하는 못난 현재를 만들게 됩니다. 못난 현재를 살자고 불법을 믿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넒은 광명 삼매는 공간적으로 빼어놓은 곳이 단 한곳도 없이 자신의 삶을 확인합니다. 그런데 편안한 것이 자신의 몸을 버리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몸을 버리면 무한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삼천대천 세계로 한 연꽃을 만들고 이 연꽃위에 가득하게 몸을 나타내어 가부좌한다고 경은 말합니다. 공간을 무한에서 시작해서 지혜의 꽃 위에 내 한 몸을 얹어버리는 것입니다. 몸이라는 이것을 가지고 삼천대천 세계로 변화 시키려면 참으로 고욕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묘한 광명 큰 삼매는 아승지(무한) 세계를 한 세계에 들게 하여 수 없는 중생의 차별함과 움직임과 부처님의 나심을 관찰하나 이 곳을 버리지 아니하고서 저기 있음을 보고, 저 곳을 버리지 아니하고서 여기 있음을 보는 삼매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의 한 생각을 무한한 생각과 정신 속에서 한 생각이 일어남을 바라보는 삼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장미꽃을 보고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때에 그것이 문득 앞뒤 없이 아름답다가 아니라 장미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이끌어내고 있는 모든 바탕 속에서 장미꽃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일어났음을 보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아무런 바탕 없이 스스로 장미꽃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것일 수가 없습니다. 그 한 생각은 무한한 세계가 연류가 되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생각을 버릴 것이 아니라 아승지 세계 속에서 한 생각을 바라보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중생살이가 벌어지고 있으며 그리고 그와같은 중생살이가 있으므로 나올 수 밖에 없는 부처님의 탄생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이 한 생각이 아닐 수 밖에 없는 것을 망각하고 있을 때에 한 생각은 고통의 싹이 되고 이를 중생살이라 하며 그러므로 그렇게 단절된 생각 마다에 사실은 단절이 아니므로 진실이 진실로 있으려는 스스로의 움직임인 부처님이 또한 끝없이 탄생할 수 밖에 없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 부처님 국토에 차례로 가는 신통한 삼매는 현재로부터 공간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거슬러가는 삼매입니다. 부처님이란 나의 삶을 지금 태어나게 하는 원천들입니다. 그러한 나의 삶의 근원을 공간과 시간속에서 거슬러 가는 것을 여러 부처님 국토에 차례로 가는 신통한 삼매라고 합니다. 나의 이 육신이 지금 태어나게 하는 모든 공간들이 부처님의 국토입니다. 가령 저 하늘의 별들도 나의 지금 존재를 태어나게 하는 부처님의 국토이고 그 국토가 시간으로 보면 말할 수 없는 겁 시간전 국토로서 지금 나의 존재를 태어나게 합니다. 공간적으로 가까운 국토이거나 먼 국토이거나 그리고 짧은 시간이거나 긴 시간이거나 관계없이 그와 같은 분별이 없이 지금의 내의 삶의 탄생 이 찰나에 들어있는 삼매입니다. 청정하고 깊은 마음의 행인 큰 삼매는 부처님의 수효가 중생의 수효와 같음을 보고 한량없는 부처님이 아승지 세계의 티끌 수 보다 많음을 보고 그 각각의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공양하고 공경하고 존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몸으로 보시하면서 부처님의 법을 묻고 부처님의 평등함을 칭찬하면서 잠깐 동안에 여러 부처님 계신 데서 묘한 법을 부지런히 구합니다. 그럼에도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고 열반에 드시는 그런 것은 하나도 생각에 없는 삼매입니다. 이러한 삼매는 지금의 내 마음이 일어났을 때에 어째서 그와 같은 마음이 일어났는지 인연을 묻지 않고 그대로 일어난 마음에 살게 되는 것이니 부처님이 언제 나왔고 언제 열반하시는지를 따짐이 없는 삼매입니다. 오로지 부처님을 공양하고 지금 부처님의 법을 듣습니다. 과거의 장엄한 갈무리를 아는 큰 삼매는 과거에 여러 부처님이 나신 일을 아는 것으로 이는 부처님의 법이 끝없는 과거로 부터 계속되어 온 것을 아는 삼매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의 부처님의 세계와 그 세계의 중생과 번뇌를 알고 과거 중생들의 생각을 알고 그 생각에 따른 부처님의 법문과 법문의 순서를 알고 과거의 청정함을 아는 삼매입니다. 그러나 이 과거의 부처님의 세계가 또한 현재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기에 과거의 장엄한 갈무리 삼매에 들어도 현재를 멸하지 않고 또한 과거에 얽히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부처님의 법문이 현재 그대로 일 때에 뜻에 어기지 않고 해석하는 말에 잘못이 없게 됩니다. 다섯가지 삼매를 살펴 보았지만 이 삼매들은 참으로 신통한 삼매입니다. 무엇 하나도 지금 있는 그대로의 공간과 몸과 마음을 버리는 것이 없고 어떤 것도 삼매를 위하여 포기하지 않고 또한 특별한 정신의 차원을 향한 목마름이 없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