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7년09월29일(월) 16시18분25초 ROK 제 목(Title): Re: 예 . 좋습니다. 지금 이야기한 것은 크로체님의 경험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즉 크로체님 개인의 영역입니다. 그와같은 내용이 불경 어디에 나오며 그리고 크로체님의 인생경험이 보편한 것으로 모든 사람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즉 크로체님만의 인생이고 크로체님의 경험일 뿐이므로 그것을 보편함으로 믿고 따를 수가 있는 것이 못되는 것입니다. "무아"는 사실이기에 믿고 말고도 없는 것입니다. 사실을 믿는다는 것은 지금 사실이 아니라는 것일 뿐이고 사실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섞음일 뿐인 것이 사실인 것입니다. 크로체님이 수행에 세 단계가 있다고 하지만 어떤 경전에 그와같은 내용이 나옵니까? 만일 그와같은 내용이 나온다면 크로체님의 말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으면 그 과정을 통하여 끝내 갈 곳이 크로체님의 개인체험과 같은 것을 체험하는 것일 터인데 무엇을 근거로 크로체님을 믿어야 합니까? 무엇을 근거로 그 체험을 목표로 해야 하고 무엇을 근거로 그 체험이 보편함을 내용으로 하는 체험이라고 보장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아직도 크로체님은 주어진 물음에 대하여 또 다른 의문만이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의문만이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누구나 쉽게 납득될 수 없는 특별한 세계라는 것이 아닐까요? 즉 크로체님의 체험한 경험의 세계가 보편적으로 이미 이루어져 있는 평범하고 타당한 모두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닐까요? 그리고 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으면 팔정도가 없다고 했는데 그럼 부처님께서는 한 마음을 돌이키는 사람들 끼리의 도 매니아의 우두머리였을까요? 한 마음을 돌이킨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 팔정도라면 팔정도는 진리의 삶이 아닌 한 마음을 돌이킨 매니아 집단의 것이므로 그것은 진리의 소리가 되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보편하고 타당하고 어디에나 적용이 되는 것인데 한 마음을 돌이키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므로 팔정도란 불교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능엄경을 정말로 읽어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부처님께서 아난 존자에게 물어봅니다. "아난아! 무엇이 있어서 보게 되는가?" 만일 이 때에 아난 존자가 "제가 있어서 봅니다."라고 말하였으면 크로체님께서 이야기하는 "가아"가 본다는 말이겠으나 "부처님! 보는 정기가 있어서 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보는 정기라는 것은 "지켜보는 자" 혹은 "진아" 보다도 훨씬 문제를 적게 발생시키는 언어사용임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 그 문제점과 허구성을 지적합니다. 위에 올려놓은 경구를 다시 한번 보십시요. 부처님께서 제행무상이기에 무아라고 하는 것인지를 한번 다시 보십시요. 유상이거나 무상이거나 그것은 무아라는 것 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무아를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