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낮은곳으로렓) 날 짜 (Date): 1997년07월16일(수) 06시27분13초 KDT 제 목(Title): 다시 태진님께... 제 글을 모욕적으로 받아들이셨다니... 저 위 게스트하고는 비교 자체가 모욕적인가요? 아무튼 제가 님을 모욕할 의도로 글을 적은 것은 아닙니다. 제 글에서 비교를 한 것을 예를 들면, '성질도 나쁘고 하는 행동도 못된 사람'과 '성격은 좋은데 하는 행동은 그 못된 사람을 따라하는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적당한 비유가 되겠네요... 이 두사람을 똑같은 성향의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고, 똑같이 나쁘게 행동해도 성격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나겠지요. 하지만, 그 두사람의 행동 중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부분을 평가한다면 정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쁘다"라고 말할 수 있을것입니다. 님과 저 위이 게스트를 비교한 것은 이런 의미로 비교한 것입니다. 님은 저 위 게스트에 비해 상당히 불교가 뭔지 알아도 보려하고, 이것 저것 좀 더 객관적인 근거들을 찾아보고, 좀 더 공정한 생각을 해보려는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님의 행동이 결국 종교적 관점 차이를 잘못된(내지는 허무한 등등의) 것으로 보아버리는 것이라면, 제 3자에게는 결국 정도와 노력의 차이가 의미가 없어지고 같은 부류로 분류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건 그렇다고 하고... 촛점이 빗나가는 글을 계속보는 것이 영 그렇군요... > 한사람의 가치관, 세계관은 그 사람 고유의 판단몫입니다. > 따라서, 다른 방식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 어떤 공통된 공통분모를 도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 님께서 글에서 지적하셨듯이 > '판단은 그 준거가 달라지면 결과도 달라집니다.' > 그런데, 문제는 그 '준거!', 그 '준거'를 어떻게 갖느냐 입니다. > 철학에서요? 종교에서요? > 아닙니다. 그 어떤 것에서도 찾을수 없습니다. > 그래서, 세상은 고달프죠. 준거를 어떤 것에서도 찾을 수 없다면서 님은 어떻게 다른 종교나 세계관에 대해서 참되다/헛되다, 허무하다 등등의 평가를 하셨나요? 종교가 그것이 절대적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상대적 준거을 제시하며, 종교인이란 종교가 제시한 "그 '준거'를 어떻게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가요? 님은 이미 기독교가 제시한 준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준거가 없다고 하고, 절대적 준거가 없다면서도 님이 가진 기독교적 준거로 불교 등의 세계관을 평가하는 혼란스러움을 보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그런 혼란스러움에 대해 지적한 것이 아니던가요? > Marxims이 인류를 구원했습니까? 아니면, 구원할 것같습니까? > 간단히 말씀드리죠. > 저는 마르크스란 한 인간은 사랑합니다. > 그러나, 그의 사상은 인류를 미혹되게 한 거짓진리로 배척합니다. 우리가 각 종교의 상대적 준거를 인정하지만, 종교를 몇가지 관점에서 평가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가가 그런 관점의 하나가 될 수 있지요. 여기서 "좋은 영항"이라는 것의 언어적 의미를 엄밀하게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만, 우리가 일상적 으로 쓰는 의미를 받아들여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그 종교가 인간에게 과연 유용한가도 평가의 관점이 될 수 있고, 넓게 보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가도 이런 유용성 평가에 포함됩니다. 절대적 평가가 어려운 사항에 대해 평가의 관점을 '어떤 입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유용성'으로 설정하는 유용성 평가는 대단히 의미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용성 평가의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가' 라는 평가는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려는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 유용 한가에 대한 평가로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예를 들면,님은 절대적 준거를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옳다/그르다, 참되다/거짓이다 등등의 평가를 남발하는 혼란된 언어 사용을 보이시는데, 이것이 정돈된 생각을 가지려는 사람에게 바람직한(=유용성 있는) 태도는 아니겠지요... 어째거나 님은 의미있는(=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유용한) 종교 내지는 세계관이 되기 위해서는 "구원"의 관점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 오셨더군요. 그 일관성만큼이나 님의 문제의 상당부분은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어떤 것이 세상을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의미있고 유용한 구원인지에 대해서 어떤 절대적인 평가를 내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님은 성경에 있는 신에게 기대는 것이 "구원"이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며,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막말로 그러란 법이 어디있습니까? 구원을 평가하고 판단하기 위해 구원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는 것이 구원의 전제다' 혹은 '알라신을 믿는 것이 구원의 전제다'라는 각 종교의 특징적 전제 (=준거)를 배제하고 판단한다면, 어떤 세계관이든지 의미있는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의대교수님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자신의 시신을 해부용 으로 기증하는 고결함을 보이셨습니다만, 우리는 유물론자 등소평이 유물론자로서의 신념에 따라 사회적 예우를 거부하고 역시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는 고결한 행동을 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럼에도 과연 유물론자나 맑스주의자들에게 구원이 없어 보입니까? 불교의 그 수많은 고민과 선문답 같은 대화와 고행과 수도가 결국 자신의 구원을 위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까? 님이 기독교적 준거에서 이런 구원을 헛된 구원으로 본다면, 유물론자나 불교도들도 각각의 세계관에 따라 님의 그런 기독교적 구원관을 헛된 것으로 볼 수 있음을 알지 못합니까? "기독교적 구원관에 대해 간단히 말해서 예수라는 인간은 사랑하지만, 그의 종교는 인류를 미혹되게 한 거짓 진리로 배척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어떤 종교나 세계관이든지 그 세계관을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의미를 주고 있다는 이런 구원에 대한 기본적이다 싶은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그런 모습의 지적에 모욕감이나 느끼는 님을 제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그리고, 앞의 이 말에는 동의하고 싶지 않네요... > 한사람의 가치관, 세계관은 그 사람 고유의 판단몫입니다. > 따라서, 다른 방식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 어떤 공통된 공통분모를 도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물론 완벽을 기한다면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서로 다른 세계관을 가졌더라도 일정한 사람들끼리 공통분모를 가지는 수도 있는 것이지요. 이 보드에서 기도교를 믿지만 다른 사상이나 종교에 대해 포용력을 보이는 분들이 있으신데, 이 포용력은 세계의 이해에 대한 일정한 공통분모를 근거로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 불교를 비롯한 많은 사상들이 사이비 휴머니즘일 수 밖에 없다는 > 저의 발언에 대해서 모욕감을 느끼신다면 저로서는 죄송할 따름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서 별로 생각이 없었습니다. 좀 기분 나쁘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독교도의 이런 모습을 본 게 한두번이 아니라서요... 저 위 말썽 게스트 글에도 어떤 분노나 모욕감이 느껴 졌을까요? '혀를 끌끌 찼다' 뭐 이런 정도입니다... 그 불쌍한 게스트도 자신이 받는 구원이 "올바른" 구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요... - limeli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