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Serious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AnonymousSerious ] in KIDS
글 쓴 이(By): 아무개 (Who Knows ?)
날 짜 (Date): 1998년03월15일(일) 09시46분20초 ROK
제 목(Title): 어떤사랑 II



죄송하다는 말씀과 동시에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하는 일에 바빠서
시간을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고, 또한 이제는 희미해져가는 기억이라서
별거 아닌 글을 쓰는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
다.

어떤사랑 I의 뒷부분은 에디터의 말썽으로 혼잡했었는데 다시 썼습니다.


휴가 복귀 전, 우리는 동국대에서 다시 만났다. 처음에 그녀를 언뜻 알아
보지 못했다. 처음 만남이 저녁인 까닭도 있었지만, 치마대신에 청바지를
입고 나온 처음보다는 다소 발랄해진 뒤바뀐 분위기 때문이었다. 동국대
교내를 배회 하다 벤취에 앉고 또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도
처음보다는 제법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대화를 나눌수록 그녀와 내가 정
서가 비슷하다 는 것을 느끼게 되었지만 그녀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나는 점점 포기하고 있었다. 그녀보다 나이가 5살이나 많았고,
군인으로 지극히 제한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지속적인 만남이 거의 불가능
한 까닭에, 그녀의 의향을 묻기도 전에 이미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이는 결코 호의적이라고 볼 수 없는 반응도 이런 생각을 거들었다,
점점 포기에 가까운......

군인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 휴가 복귀가 얼마나 힘든건지. 부대 안으로 들어
오며 휴가 때 사회에서 묻은 때를 위병소 밖에서 훌훌 털어버렸다. 그날,
점호를 마치고 잠지리에 누워서 아마 다시 만나기는 힘들거라는 생각을 하였
지만 전혀 서글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짧은 휴가에서의 두 번의 결코 길지
않은 만남이, 비록 그녀가 맘에 들긴 하였지만, 아직은 내 실존에 커다란
영향을 줄 정도로 다가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당장 내일 기상
시간부터 다시 시작할 단조롭고 답답한 군대 생활에 대한 걱정이 더 컸던  
것이다.

그렇게 한 일 주일을 보내고 군 생활에 다시 완전히 적응해질 무렵 동기 녀석
이 찾아왔다. 대대장급 회의가 있어서 사단에 대대장을 태워다 주고 남은 시간
동안 나를 보러 찾아왔던 것이다. 녀석의 휴가 나가서 어땠냐고 물어왔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녀와 교재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하지만 우선 그녀가 
날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거 같다고. 녀석은 이상하다며, 자기가 그녀에게 
전화해보니, 싫지는 않더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훈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그렇다면......"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 편지쓰기다. 그로
부터 전역하기까지 평균 매주 1회는 쓰지 않았나 싶다. 그녀는 꼬박꼬박 답장을 
해줬다. 나의 글이 보다 논리적이면서 감정에 호소하는 글이었다면, 그녀의 글은 
길지 않으면서도 정갈하고 산뜻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그녀의 차분한 분위기와
정확히 일치하였다. 이따금씩 편지에 쓰인 글에서 그녀가 나를 생각하고 있음을 
행간을 통해서 파악할 수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바야흐로 
이제는 처음 소개팅을 했던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된 셈이다.

처음 자대배치 받은 곳은 임진강 철책을 사수하는 부대였다. 철책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이 전선이라는 온 몸과 마음이 긴장하지만 서울에서의 거리가 불과 
1시간 30분 밖에 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외지라는 생각은 들지않는 곳이다. 
처음 이곳에 배치 받았을 때, 내가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많고 많은 부대에서 왜 하필 최전방에 소총수로 배치 되었는가. 좀 치사한 
이야기지만, 나는 소위 명문 대학을 다녔으며 석사까지 했는데 설마 이렇게 
되리라곤 전혀 기대해지 않았던 것이 그 이유다. 그렇지만 나는 그곳에 곧바로 
적응을 해야만 했다. 서글픈 졸병 생활... 

나의 주 임무는 보초였다. 철책선을 따라가며 그곳이 평지이기 때문에 감시를 
위해 땅에서 5-6미터 타워식으로 솟아오른 관망대에 들어가 교대가 오기까지 
2시간여를 보내는게 나의 일이었다. 서너살 적은 고참의 서슬에 의하여 나는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그것도 멱을 따는 소리로... 그곳에 가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희미하게 강건너에서 들려오는 북한군 병사의 노랫소리(군가)를 들을
수 있다. 이쪽에서도 지지 않도록 더 큰 소리도 응답한다. 약 500미터 떨어진 
그곳까지 노래소리를 희미하게나마 들리게 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두시간을 쉬지 않고 계속... 누구나 다 거치는 졸병시절이라는 것이 
유일한 위로다. 더구나 인간은 적응의 천재가 아닌가.

그러던 어느날 대대에서 군수요원이 없다고 나를 데려가겠다고 지원장교가
내려왔다. 중대장은 나의 의사를 존중하겠다지만 내가 그 꿈같은  기회를 
거부할 이유가 있겠는가. 일병을 갓 달기 전부터 일병 3호봉까지, 4개월 동안 
군수요원으로 복무하였다. 그리곤 또 어느날 사단 전산실에서 연락이 왔다. 
군대 전산화의 일환으로 부대에 유닉스 시스템이 보급되는데 이를 운용할 수 
있는 병사가 없다는 것이다. 부대에 처음 배치되면서 이미 자기소개서에 컴퓨터 
사용에 능통하다는 사실을 적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를 다시 검토한 전산 
장교가 인사과에 알아 본 후 나를 데려가겠다고 한 것이다. 이 또한 나는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비록 부대를 옮겨 새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군대에서 컴퓨터라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군대에서 사회의 일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보직이라면, 나는 전산병과 운전병을 손 꼽겠다.
이렇게 부대를 바꾸기를 두차례, 전산병으로서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을 무렵 
동기녀석으로부터 소개팅의 제의를 받은 것이었다.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