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blueyes (魂夢向逸脫) 날 짜 (Date): 2010년 12월 13일 (월) 오후 03시 49분 40초 제 목(Title): 희생이란 그저 넋두리에 불과한 글이었는데, 댓글을 달아 주시니 오히려 제가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사고를 깊게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댓글로 보내주신 의견, 무척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제가 가진 “희생”의 정의가 무척 단순합니다. 우선 사전적인 의미의 희생은.. 다른 사람 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 재산, 명예, 이익 따위를 바치거나 버림. 또는 그것을 빼앗김 제가 가지고 있는 희생의 정의는.. 다른 사람 또는 낮은 우선순위를 위해 포기하는 어떤 것 제가 단순하게 생각한 것을 예로 들자면, “정상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등반과정이 힘들더라도 고역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산 꼭대기에 섰을 때에 행복감을 맛보는 사람이라면 서너시간의 고생도 행복을 누리는 과정일 것이고, 서너시간 동안 다른 일을 했을 때의 성취보다도 등반과정의 성취가 더 크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내 자신이 힘들고 피곤하지만 집사람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아이가 부모와 기꺼이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시기에 함께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 제게는 “희생”이 아닌 일이 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일이고, 가장 높은 우선순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느 하루 아이와 놀아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회사의 피치 못할 일로 약속을 깨야 하는 경우라면, “희생”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맹목적인 사랑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마다 다른 가치관과 판단 기준이 있고, 그때 그때 최선의 선택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우를 보면, 아이 엄마가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 거의 매일을 아이를 데리고 뭔가를 하러 나갑니다. 제 딴에는 엄마의 욕심으로 인해 아이가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대기 위해 저는 더더욱 지출을 줄여야만 합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누구의 희생도 없습니다. (비록 나는 일부 불만이긴 해도 와이프의 행복이라고 추정되는 것을 위해 하고픈대로 내버려 둡니다.) 아이는 아직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나이이니, 누군가 대신 결정을 해줘야만 하고.. 그런 교육방식은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엄마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고.. 그것을 서포트하는 것은 제가 기꺼이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아이를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힘들게 살고 있다”고 얘기하는 순간, 상황은 급변합니다. 첫째,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를 그렇게 키우는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 일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며, 둘째, 현재의 상태를 결정지은 것은 자신의 의사와 동일하지 않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며, 셋째, 더 높은 우선순위의 가치가 있다면 피곤하게 사는 아이와 지출을 줄여야만 하는 나도 낮은 우선순위를 위해 희생하고 있는 결과밖에 안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 희생하는 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경우이거나 낮은 우선선위의 목표를 실행하기 때문이라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시간과 자원의 배분을 다시 고민해 봐야 합니다. 가족의 행복이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면 적어도 나는 (아마도 다빈이도)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파누나의 말처럼 자신의 양보는 희생이고, 타인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일이 무척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관점에서 혹시라도 내가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되돌아 볼 필요는 있을 지언정, 상대방에게 내 희생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기는 무척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사람이 이기적으로 동작하게끔 설계(이기적인 정도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되었으니 이기적으로 사고하거나 행동하지 말라고 요구해도 달라질 것은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인해 (결혼 초에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일로 충돌을 겪었으나) 최근에는 그냥 있는 그대로를 내 선택의 결과로 받아 들이고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참아야 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주위에 존재하는 고정 변수로 간주한다고나 할까... 마찬가지로 아이도 그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며 이십여년을 키운다면, 아이는 부모에게 빚을 지고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부모도 희생을 했으니 당연히 기대하는 것도 커지겠지요. 그래서 부모는 희생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행한 일들을 당연한 것 쯤으로 취급받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아이가 나중에 커서 부모의 행위를 “가장 합리적이고 최선의 선택”이거나 그러기 위한 노력 정도로만 생각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