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blueyes (魂夢向逸脫) 날 짜 (Date): 2010년 12월 02일 (목) 오전 11시 25분 52초 제 목(Title): 빈 도화지에 그림 그리기 다빈이는 이제 47개월. 이 나이의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닌) 교육하는 것은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특히 나처럼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보통 교육이라고 하면 가르치는 내용이 뭔지에 대해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겠지만, 47개월 된 아이에게 영어나 숫자를 가르치고자 함은 아니다. 와이프에게도 몇번 얘기를 했지만, 영어/국어/수학은 부모보다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많으니 부모는 인생과 철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빈이는 인생이나 철학을 알기엔 너무 어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이 어릴적에 형성되어 성인이 될 때까지 고착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사회성. 즉, 타인과의 관계 설정. 다빈이는 마초 유전자가 풍부한 아이인 듯 싶다. 아빠를 닮아서인지 경쟁에서 지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한다. 게다가 소유욕도 좀 있는 편이다. 나 역시 그렇게 자랐고 (초딩 전까지만 해도 동네의 두세살 많은 형들도 때리고 살았다는 풍문이 전해져 온다), 남자 아이들이 의례 그렇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아이 엄마는 폭력적인 아이가 될까, 왕따가 될까, 선생한테 미움받지 않을까 이런 것들이 고민인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걱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아무튼, 다빈이의 이런 성격 때문에 다른 아이들과 놀 때에 자기가 먼저 하겠다고 떼를 쓰거나 밀치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는 것 같다. 내게 얘기를 안해도 알 수 있는 방법은 퇴근 후에 와이프가 맥주 마시고 벌개져 있고, 아이는 과도하게 내 퇴근을 반기는 날이면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짐작해도 무방하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화를 내지 않고 타이르는 와이프를 보면서 내심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참을성이 부족한 나는 반복되는 일에는 예외없이 폭발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이프가 최근에는 교육방식을 바꿔 버렸다. 이제 말로는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한두번은 매를 들었고, 최근에는 아이의 장난감을 뺏기 시작했다. "또 약속 안지키면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부터 버릴거야." 이게 다빈이와 엄마 간에 이뤄진 계약이다. 난 그런 교육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와 왼종일 있을 사람을 생각해보면 (그래도 내년부터는 유치원 덕분에 떨어져 있겠지만).. 통제를 쉽게 해야 엄마가 편하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용인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의외로 빨리 나타났다. 지난 주말, 다빈이와 둘이서 본가의 농장을 방문했고, 거기에서 할아버지가 생전 처음으로 다빈이에게 장난감 선물을 사 준 것이다. 거의 모든 장난감을 사촌 형들에게서 받아왔던 터라 제대로 된 장난감이 별로 없었던 다빈이는 뛸듯이 기뻐했지만.. 다빈이는 장난감을 가져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집에 가져가면 엄마가 또 뺏는단 말야."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 다빈이가 선택한 방법은 엄마 눈으로부터 숨기는 것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가 나서서 30분이나 설득을 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면서 내게는 "엄마한테는 비밀이야"라고 친히 귓속말도 해 준다. 이게 최근 교육방식의 side effect였던 것이다. 슬슬 부모에게 비밀을 만들어 가는 것.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 줄 일은 기준을 만들어 줘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친구와의 관계라면 어디까지가 지켜야 할 선이고,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게끔 하는 것. 문제는.. 내가 비록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무엇을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엄마와 의견이 같지 않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본 바로는.. 다빈이가 그네에 타고 있을 때에 또래 애들이 오면 긴장하는 것이 느껴진다. '이걸 지켜야 하나, 양보해야 하나..' 그러면서 접근하는 아이와 지켜보는 내 눈치를 계속 보고 있다. 얘가 왜 이럴까? 아마도 "넌 오래 놀았으니 친구에게 양보하자"고 가르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단은 지키고 싶다는 마음과 양보해야 한다는 가르침 속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듯이 보인다. 게다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다빈이가 장난감을 점유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접근하는 입장일 때의 가르침에서 비롯되는게 아닐까 싶다. "앞에 친구가 있으면 순서를 기다려야 해." 따로 떼어놓고 보자면 그지없이 옳은 얘기지만.. 논리력이 떨어지는 아이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가 기다리는 입장일 때에는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고, 자기가 점유한 입장일 때에는 양보해야만 하니.. 충분히 헷갈릴만한 상항이겠다 싶다. (물론 아이를 너무 좋게만 해석한 결과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런 유사한 상황은 종종 목격을 했다. 가령 블록이 잔뜩 있는 곳에서 여러명이 놀 때에 누군가 한명은 블록을 독점하려는 아이가 등장했다. 당장은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잠시 후를 대비해서 블록을 열심히 모으는 아이들. 그걸 본 다빈이는 자기도 따라 블록을 모으기 시작했고, 엄마는 그걸 제지했다. "같이 노는 장난감이니까 하나씩 가지고 놀아" 잘못된 가르침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어디 아이도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금세 자기가 쓸 수 있는 블록은 없어져 버리고, 블록 모으기가 끝난 아이는 이제부터 여유롭게 하나씩 가지고 노는데 말이다. "그러면 그냥 맘대로 하게 내버려 두라고?"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내면 거의 100%의 확률로 듣게 될 말이다. 오히려 내가 방임을 했던 것은 다빈이가 아니라 와이프였는데도 말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양보 우선의 법칙이 아니다. 뒤에 있기 때문에 기다려야 한다면, 앞에 있을 때에는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해 주는게 혼란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금과옥조의 법칙이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친구를 밀치거나 때리는 것은 나쁜 일이다. 하지만 자기 것을 빼앗겨도? 지금은 더 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일이 있어도 폭력은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아이 입장에서 엄마가 나쁜 짓이라고 알려준 일을 당할 때의 대응 방법이 뭐가 있을까? 쟤가 먼저 나쁜 짓을 해서 (비록 나쁜 짓이지만) 응징을 했는데, 왜 자기만 혼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닐까? 그리고 부모의 개입은 반드시 필요한 순간에 최소한의 규모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령 장난감에 대한 경쟁이 생기면 (경쟁 자체도 사회의 당연한 모습 중의 하나니까) 양보를 요구하지 말고, 충돌이 생기기 직전에 개입해서 다치는 일을 막는 수준이 되는게 좋겠다고 본다. 그런데.. 부모가 서로 다른 수준과 내용을 아이에게 전달하면 더욱 커다란 혼란이 올테니.. 결국은 한쪽으로 밀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