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edding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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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blueyes (魂夢向逸脫)
날 짜 (Date): 2010년 09월 06일 (월) 오후 02시 58분 11초
제 목(Title):   밀린 숙제라..



사람들은 생각외로 다양하지 못한 삶을 사는 것 같다.
화장실 변기 문제만 해도 그렇고, 큰 어나니의 숙제 얘기도 그렇다.

아마도 헤어진 다음에 일부러 찾지 않는다면 만날 기회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다.
피하지만 않으면 가뭄에 콩 나듯이 만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런 이유로 기회가 찾아올 때마다 피할까 말까, 피해주는걸 좋아할까 
아닐까를 고민하게 된다는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지만..

비록 내가 먼저 시작한 관계였고 내가 먼저 끝낸 인연이었지만, 내게는 아직도 
애틋한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가끔 생각나고, 문득 궁금해지고, 왠지 걱정이 되곤 하는 나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얼마전 그녀를 만날 기회가 오랜만에 생겼다.
당연히 가는게 좋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는다고 해서 욕먹을 것도 아닌..
순전히 내 선택만이 남은 그런 기회였다.
이번에는 무척 고민이 되었다.
찾아 가기에는 너무 피곤했고, 몇몇 친구에게 전화를 해 보니 참석하지 않을 
사람들이 오히려 다수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핑계를 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반드시 올 상황이었다.
(서로 피하는 중인지 그녀 역시 얼굴을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근 반나절을 고민하다가 가기로 결정을 했다.
이성적으로는 인정하고 있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그녀를 보고 싶다는 것이 큰 
이유였던 것 같다.

하지만, 내 계획은 좀 꼬이고 말았다.
가족(이라고 쓰고 아이라고 읽는다)을 챙기느라 출발 시간이 계획보다 심하게 
늦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먼저 도착한다면 그녀가 올때까지 버티고 있으면 되지만, 내가 늦게 
도착하면 그녀는 이미 귀가한 다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내 이성은 참석하는 이유를 다른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냥 결정한 바를 실행에 옮겼다.

불행 중 다행일까, 다행 중 불행일까.
귀가하기 위해 나서는 그녀를 보게 되었다.
'어.. 이거 낭패인데..'
순발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나는 의외의 상황에서 쉽게 대처하지 못한다.

잠깐 고민을 했다.
'못본 척 지나갈까?'
하지만 그녀가 날 먼저 아는 척을 해 주었다.
간단한 인사를 하고, 그간의 안부를 묻고..

이상하다.
비록 내 이성이 이런 상황을 전혀 기대하진 않았어도, 마음 속 어디선가는 
궁금한 것들이 무척 많았는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뭐가 궁금했는지.. 그냥 머리 속이 하얘질 뿐이다.
그저 '그래, 건강한 얼굴 봤으니 됐어'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내가 봐도 부자연스럽게,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은 사람 마냥 '잘 가. 난 이만 
들어가 볼게'라고 얘기하고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뒤 돌아서 걸으면서 '혹시 내가 얼굴 보기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젠 그녀의 행복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부디 행복하기를 
바라며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한동안 피우지 않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녀의 행복을 바라는 것도 결국 내 이기심일까?
다음에는 편하게 볼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가 불편해 하는 것은 아닐까?

밤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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