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miz (Daughter) 날 짜 (Date): 1998년 9월 2일 수요일 오전 10시 19분 30초 제 목(Title): 낙서 11(혹은 12) 결혼을 하고 5년 가까이 되어가다 보니 결혼 생활에 어떤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연수에 상관있다기 보다는 주어진 조건이 변화하는데 더 영향을 많이 받고 있겠지만.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하나인지 둘인지,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지 아닌지... 등등 결혼 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요소들이 나와 남편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에 부딪힌 것이다. 특히, 시어머니랑 사는 건 정말 적응하기가 힘들다. 참 좋은 사이 같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긴장감이 감돌게 되고.. 어머님이 하루 이틀 집에 들르신거라면 무엇이든 예예하며 기분을 맞춰드릴 수 있지만, 기약없이 함께 살게 된다면 아무래도 그럴 수만은 없게 된다. 때로는 어머님과 남편이 알 수 없는 곳으로 가서 실컷 욕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키즈에도 감시의 눈길이 번득이고 있기 때문에 힘들고, 갈 곳이 없다. 사실, 어머님이 안계시면 더 힘들수도 있다는거 안다. 그러니까 나도 참고 살려고 애쓰는 중이고. 하지만, 너무 시시콜콜한 것까지 이래라저래라 하실 때, 아기하고 아들은 열심히 챙기시지만, 며느리는 같은 등급의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고 느낄 때... 어머니랑은 더이상 함께 살기 싫은 생각이 든다. 예를들어 남편이 출장가면, 맛있는 반찬은 냉동실에 넣았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다시 꺼내 주자고 할 때. 아이 먹인다고 국말고, 물붇고 이반찬 저반찬 섞어서 먹이다가 아이가 남긴 밥그릇을 나한테 먹으라며 밀어놓이실 때, 찬밥, 먹다 남은 반찬들은 은근히 내쪽으로 밀어놓으실 때... 나이드신 분이고 워낙 그런 생각에 젖어 살아오신 분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려고 하지만, 나자신이 그런 사고에 푹 빠지지 않는 한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내 안에 시어머니와의 긴장감이 가득 차있을 때에는 남편과의 관계 역시 시어머니와의 관계나 긴장 상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나를 이런 상황에 밀어놓은 남편이 밉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내 속에는 항상 또하나의 process가 떠 있다. 그 process의 output을 filtering해서 그럴듯한 interface를 통해서 바깥으로 내보내려고 무진장 애쓰고 있다... 언제까지..라는 기약이 있으면 좋겠다. 아니면, 나 스스로 적응해야겠지. 가장 쉽게 적응하는 방법은 내 생각이 어머님의 사고 방식과 일치되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생각하는 방법이 같다면 사사건건 부딪히지는 않을테니까. 그렇지만, 어머님처럼 되기는 정말 싫다. 남편, 아들을 떠받들면서, 자기 딸, 남의 딸은 이등 인생 취급하는거... 아들이 하는 일은 뭐든지 대단한거고, 며느리나 딸은 대충 직장을 다니거나 말거나... 상황에 맞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 그렇게 일등 인생, 이등 인생이 뚜렷한데, 어떻게 아들 아들 안 할 수 있겠나.. 내 뱃속의 아이가 딸로 태어나면 너무 불쌍할 것 같다. 할머니의 실망을 한몸에 받게될테니까. 그리고, 아들 못 낳은 책임을 오직 나한테만 전가하려고 할 것이다. 나의 생각과 어머님의 생각이 부딪히는 내 마음은 가부장제와 평등주의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전쟁터 같다. 물론 그 전쟁이 바깥으로 표출되는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적어도 내 안에서는 매일매일 그렇다. 한가지 희망이라면, 어머님과 미약하나마 자매애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어머님도 딸을 가진 분이니까, 여자의 입장을 아주 모르시지는 않는다는 것... 이 가능성을 붙잡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사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더 발전적으로 가까와져야 하는 건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당신은 그렇게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아직 못정했다. 어머님과는 가까와지면 질수록 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하시니까... 관계가 어떤 식으로든 잘 정립되면 남편과도 잘되는거고, 그게 잘 안되면 남편과도 더 힘들어질 것 같다. 수빈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할 때에는 이런 고민이 조금이라도 덜 해질 수 있도록 하려면 그나마 나의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할텐데... 어려서부터 엄마에게서 귀가 따갑게 듣던말..."너는 나처럼 살지 말아라..." 이런 말을 수빈이에게는 더이상 해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어머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방향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