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WeddingM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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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Rollins ()
날 짜 (Date): 1998년 8월 19일 수요일 오후 08시 12분 01초
제 목(Title): [Cap]기다림에 대하여...

[ AfterWeddingMarch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calvin) <207.240.124.14>
날 짜 (Date): 1998년 8월 19일 수요일 오전 04시 44분 45초
제 목(Title): 기다림에 대하여...
 
 
 
 
지금 그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마에 송글한 땀을 닦으면서 싱긋웃고 들어오겠죠.
 
그리고선 몇달을 떨어져있었던 연인이기나 한듯이 달려와 꼭 보듬어 안아주죠.
 
같이 상을 차리고 밥을 먹으면서 그는 언제나 제가 없었던 그의 시간들을
 
시시콜콜히 이야기 해줘요. 마치 보고라도 하듯이...
 
갈등이 생기는 문제가 있을때 저에게 의견을 물으면서 그가 짓는 표정을 저는
 
굉장히 좋아해요. 미간과 코등을 약간 찌푸리고 진지한 눈빛으로 저의
 
의견을 들으려고 귀를 세우는 그를 보면 소년이었을 때 그를 상상하게 되요.
 
결혼 전엔 언제나 그가 저를 기다렸어요. 그는 제게 기다리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에요. 그리 지루한 것도 화가 나기만 하는것도 아니란것을.
 
그와 저는 3년을 만났지만 같이 얼굴을 맞댄건 겨우 30일이 될까말까해요.
 
그는 미국에 있었고 저는 한국에 있었거든요. 있죠. 우린 인터넷에서
 
처음 만났었어요. 그렇게 얼굴도 이름도 목소리도 모르고 많은 이야기를
 
했었지요. 그래서 결혼전에 추억이란 게 이메일과 제 글에대한 리플라이를
 
제외하고는 전부 그 30일안에 일어났던 일들이지요. 아주 많이 추웠던
 
한국의 한겨울에 일어났던 일들을 하나하나 시시콜콜 기억해요.
 
 
그는 언제나 제 사무실 근처 백화점 입구에서 저를 기다렸어요.
 
저는 그때 광고 대행사를 다니고 있었기때문에 늘 바빴었죠.
 
갑자기 벌어지는 회의도 많았었고 광고주에게 할 프리젠테이션 준비에 늘
 
지쳐있었어요. 막상 일이 본격적으로 벌어지면 사적인 시간을 갖기란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 저를 언제나 기다려서 얼굴을 보고 돌아서야
 
한적도 많았어요. 가끔 먹을걸 잔뜩 사와서 안겨주기도 하고....
 
언젠가 아 이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구나 느꼈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날도 역시 아주 추웠어요. 고층빌딩을 싸고도는 겨울 바람은 아무리
 
옷깃을 여며도 살속으로 아프게 파고들잖아요. 그렇게 코가 깨지게
 
추운날 그를 만나기로 약속했지요. 아마 7시즈음에 약속을 했었던거 같아요.
 
제가 책상을 정리하고 가방을 챙기려던 순간에 누군가가 뛰어 들어왔지요.
 
저와 한팀에 있던 AE였어요. 아니나 다를까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발생했구
 
팀 전체에 비상회의가 소집됐었죠. 그렇게 시작된 회의가 끝난게 10시
 
그에게 연락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없었어요. 지친 몸으로

가방을 꾸려 집에 가려다가 그래도 그가 있었던 그곳을 가보는게 도리일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야 내맘이 덜 미안할거 같아서...
 
지하도를 천천히 올라와 늘 그가 있었던 그자리를 보앗을때 언제나처럼
 
그는 그자리에 있었지요. 가로등 아래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이고
 
손에든 잡지를 읽고 있었어요. 미간을 많이 찌푸리고 있는것으로 봐서 그는
 
많이 화가나있구 추운것 같았지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었어요.
 
가까이 아주 가까이 가도록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어요. 바로 그의 앞에
 
섰을때야 고개를 들었어요. 그런데 있죠. 화를 내려고 애쓰는 표정이
 
역력한데 얼굴이 저절로 기어코 환하게 펴지고야 마는거에요. 그렇게
 
환하게 웃는 그를 본다는게 너무 민망했어요. 그래서 물었어요.
 
"화 안났어?" 그랬더니 그가 그래요.
 
"화 낼려구 준비 많이 하구 있었는데, 널 보자마자 어쩔수 없이 웃어버리네. "
 
웃지 않으려구 애썼는데..."
 
그러면서 그래요. "배고프지 밥먹자."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시간엔 문을 연 음식점이 없어서 길거리 포장마차
 
오뎅을 먹었을거에요. 그리고 헤어졌었죠.
 
얼굴에 근육이 씰룩거리며 웃는 표정으로 바뀌어가는걸 보셨다면 아마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거에요. 그건 억지로 안되는 거거든요.
 
그담날 그는 병이 났어요. 그럴 수 밖에요. 그는 한국의 겨울을 잘 몰랐거든요.
 
그가 지낸 곳은 겨울이 없는 그런 곳이었으니까요.
 
저는 지금 그를 기다려요. 그가 오면 그처럼 그렇게 환하게 웃어주려구요.
 
 
 
몽!

== 여기까지 입니다..


재즈 그 자유로운 영혼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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