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 ] in KIDS 글 쓴 이(By): Cbill (* 강 피) 날 짜 (Date): 1997년06월25일(수) 18시45분24초 KDT 제 목(Title): [스포츠조선]박진영 인터뷰 [박진영] 춤-노래는 내 존재의 이유 `하얗게 눈이 내리던 날이죠/우는 그대를 떠나 보낸걸 기억해요/ 무심코 흐르던 징글벨만이 우리 이별을 슬퍼했죠.' 박진영(朴軫永.26). 엉덩이춤, 허리춤, 수영춤, 비닐옷, 흑인 머리, 복고풍 디스코 등이 떠오르는 가수. `썸머 징글벨.' 제 2집이후 1년반만에 내놓은 제3집 앨범. 벌써 인기폭발. 3집엔 `그녀는 예뻤다' `또 하루가 가고' `그댄 예뻐요' 등의 곡도 있다. 제2집 `청혼가'는 46만장이 나갔다. -떼돈벌어 다, 뭐했나. " `브랜드-박진영' 유지비가 엄청나다. 무용팀 16명의 의상비만 월 1천만∼1천500만원이다. 이밖에 코디네이터도 3명이나 되고. 월급만 2천만원 넘게 나간다." -무슨, 의상비가 그렇게 드나. "아예, 의상공장을 임대했다. 여기다 한번 입은 옷은 두번 다시 못입게 한다." 박진영. 터프한 외모와는 달리 `완벽주의자'다. -`수영춤'은 뭔가. "말 그대로다. 자유형, 배영, 접영 등 수영동작을 본떠 만들었다. 시장 아줌마들까지도 다 추는 데…." `그것도 모르냐?'는 투다. 박진영. 서울 태생. 용마초등학교-건대부중-배명고-연세대 지질 학과 졸업. 경기대 행정대학원 재학중. 6살때 피아노를 만났다. 13살때 이미 체르니 50번을 쳤다. 고교때 흑인음악에 빠졌다. 바비 브라운의 `돈 비 크룰'과 릭 에슬리의 `네버 고나 기브 유 업' 등은 줄줄 욀 정도. "누나는 숙명여대 음대생이었다. 호른이 전공. 그래선지 나와 죽이 잘맞았다." 박진영. 고교때 총학생회장. 성적은 `미친년 널뛰듯'했다. 전교 10등 을 하다가 200여등으로 밀려나고. 대학입시 100여일을 남겨 둔 시점. 성적은 256등. "연세대 지질학과에 가려는 데요." "이놈아, 주제파악 좀 해라. 그 성적으로…, 가긴 어딜가냐?" 담임 선생의 사정없는 면박. 박진영은 배시시 웃기만 했다. 바로 그날. 머리를 빡빡 깎았다. 눈썹도 밀었다. 수면은 하루 4시간. 무섭게 파고 들었다. 무지하게 먹었다. 에너지 보급차원이었다. 82㎏의 몸무게가 오히려 87㎏으로 늘었다. 최종 성적은 전교 20등 안팎. 대학때는 모범생. 공부만 했다. 그런 한편 가수 김건모, 노이즈 등의 안무를 한다. 취미였다. 그때까지도 `가수'는 무관심 분야. 2학년말. 홍익대생 가수 김현철을 만난다. `어깨너머'로 노래를 배운다. 그러다 작곡가 김형석과 만난다. `인생반전'의 서곡. "김건모의 소개로 형석형과 끈이 닿았다. 형은 천재였다. 신승훈, 그룹 솔리드 등의 곡. 당시 톱텐의 인기곡은 대부분 형의 작품이었다." 이후 2년. 김형석의 그림자였다. 심부름은 물론 집청소까지 했다. 그러 면서 `작곡'에 눈떴다. 4학년때. 느닷없이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부모의 반응은 차디찼다. "뒤늦게 웬 가수냐? 아들이 둘만 돼도 허락하겠는데…. 공부나 해라." 졸업후. 우연히 MBC TV의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 출연, 영화배우 톰 크루즈의 통역을 맡게 된다. 이때의 매끈한 통역덕에 박진영은 `단골 통역사'가 된다. 그러면서 자작곡 `날 떠나지마'로 가수 데뷔. 94년 11월이었다. 3개월도 못돼 `날 떠나지마'는 전국을 강타한다. `날 떠나지마/가는 널 볼 수가 없어/넌 떠나지만 난 뒷모습만 보며 서있어….' "요즘 애들은 춤만 좀 추면 가수가 되겠다고 난리지만. 그렇지 않다. 이젠 작사, 작곡까지도 해야한다. 아니면 가창력이 기막히게 좋든지." 박진영. 일곱살때 부터 3년간 뉴욕에서 살았다. 퀸스 부근의 학교 `파블릭 스쿨 120'에 재학. 아버지(현 동부그룹 전무)는 아들만 보면 걱정이었다. "넌 왜 흑인애들하고만 어울리냐?" "그냥, 걔들이 부담이 없어요." 박진영. 얼마전 영어 앨범도 냈다. 수록곡은 `날 떠나지마' `청혼가' `엘리베이터' 외에 제임스 잉 그램의 `베이비, 캄 온 투 미' 등. 7월초 홍콩 STAR TV에 출연한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대만, 싱가포르, 일본 등 8개국 순회공연 스케줄이 잡혀 있다. "솔직히 가수만 고집할 수 없을 것 같다. 살다보면 돈문제로 시달리기도 할 거고. 장삿속으로 빠져드는 가수가 된다는 건, 끔찍하다. 다른 직업도 챙겨 보려 한다." 대학 졸업 무렵, 오퍼상에 두달간 다닌 이력도 있다. 가수 박진영. 아직은 돈에 매달리지 않는다. 지방의 밤무대에 30분만 서도 700만원을 거머 쥘 수 있다. 그런데도 사절이다. 저널리스트에의 관심도 없지 않다. 96년 3월. 어느 일간지에 `한국의 정치문화'라는 글을 기고, 게재되기도 했다. "우선 시사 토크쇼 진행자가 되고 싶다. 미국의 데이비드 부링클리와 같은." ------------------------------------------------------------------------- 음~냐~ 뭔 얘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박진영의 칭찬 일색인 글 같군요. 너무 길어서 나도 읽기 싫당.... 이 글대로라면 박진영 그는 매우 잘난 사람(못하는 것도 없는) 같군요.. 푸하하! 부럽네용.. # 마치려면 'y' 를 입력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