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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iEncE ] in KIDS
글 쓴 이(By): pomp (위풍당당)
날 짜 (Date): 1999년 3월 29일 월요일 오전 12시 15분 18초
제 목(Title): FLT에 대한 오해, 착각, 헛소문


 FLT FAQ와는 다른, 일종의 잡담입니다.

 여기저기 통신망을 드나들다 보니, 일반인들이 FLT에 대해 갖고 있는 수많은
 오해, 억측, 착각, 헛소문, 오류 등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I. 와일즈가 FLT를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

  1993년의 증명에서 잘못이 발견됐던 것 때문에, 와일즈도 수많은 실패자
  가운데 한 사람인 줄로만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1994년에 완벽한 증명을
  내어 놓았습니다.

  물론 레퍼리의 검토를 통과하여 저널에 실렸습니다.

 II. 논문이 수천쪽 짜리?!

  "논문이 몇 상자 짜리다", "수천쪽에 달한다"는 소문이 도는데, 1994년의
  논문은 와일즈가 쓴 132쪽 짜리 논문과 리처드 테일러와 함께 쓴 17쪽 짜리
  논문 둘입니다. 합쳐도 150쪽정도입니다.

  프리프린트기 때문에 실제로 저널에 실린 논문의 분량은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몇 천쪽으로 뻥튀기될 정도는 아닙니다.

  아마도 "그 내용을 다 풀어 쓴다면 수천 쪽에 이를 것이다" 정도가 와전된 게
  아닌가 싶군요.

 III. 고등학생이 FLT를 증명하다?!

  이거 사실 아주 열받는 일인데, 우리 나라의 언론이 얼마나 무식하고
  무책임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세한 것은 FAQ를 참조.

 IV. 와일즈가 틀린 것을 다른 수학자가 고쳤다?!

  리처드 테일러와 같이 논문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테일러가 와일즈의 잘못을
  고쳐 FLT를 증명했다"고 하는 것은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와일즈의 첫 증명에 있던 오류를 고친 것은 와일즈 자신이었으며, "테일러의
  도움을 받아 와일즈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고 FLT를 증명했다"는 것이 더욱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V. 페르마의 말이 맞긴 맞네?!

  물론 150쪽 짜리 논문을 책의 여백에 쓸 순 없으니 페르마의 말이 맞긴
  합니다만, 페르마가 말한 "놀라운 증명"이 와일즈의 그것일 리는 전혀
  없습니다.

 VI. 발음 좀 똑바로 하자!

  황당하게도 와일즈(Wiles)를 "윌즈"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번역한 책에서 Coates를
  "코티스"라고 하던데, 그냥 "코츠"가 맞습니다. (Coates 교수가 말하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같은 책에서 Barry Mazur를 "마주르"라고 하고 있는데, 영어식으로 읽는
  "메이저"가 맞습니다.

  몇 가지 더 찾아 보면, 랭글란즈(Langlands)가 옳고, 프라이(Frey)라고 하는
  게 독일 철자의 발음법에 맞습니다.

  또 "타니야마-베유-시무라의 가설"에서 베유(Weil)를 "베일"이니 "와일"이니
  "바일"이니 하는 사람이 많은데, 프랑스 수학자 Andre Weil는 "앙드레 베유"로
  읽어야 합니다. 독일 수학자 헤르만 바일(Hermann Weyl)과는 상관 없습니다.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국제 수학자 회의에서 4년마다 주는 상은 "필즈(Fileds)"상입니다.

  이것은 캐나다의 수학자 John C. Fields의 이름을 딴 것이므로, 흔히 잘못
  부르고 있는 "필드상"이라든가 소문자로 쓴 "fields medal", 더 황당하게는
  "분야상"(?!)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란 책에 대해 한 마디 하자면, 거의 모든
  수학 전공자들이 일치하는 평이 "뭔 쓸데없는 말이 이렇게 많아?"입니다. :)

  사실 "진짜 수학 얘기"를 교양 서적에서 하기는 무리겠지요. 어쨌든 "교양
  수학"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좋은 책입니다.

  번역에서 흠을 하나 더 잡자면, 번역자가 수학 전공이 아니다 보니, 와일즈의
  논문 제목에서 "ring theoretic properties"를 황당하게도 "고리 이론적     
성질"이라고 해 놓았죠.

 VII. 아마추어들에게 드리는 충고

  와일즈의 증명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대단히 미안한 말이지만,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그의 논문을 이해하기는 전혀 불가능합니다.

  와일즈의 Modular Elliptic Curves and Fermat's Last Theorem의 첫 두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An elliptic curve over Q is said to be modular if it has a finite
    covering by a modular curve of the form  X_0(N). Any such elliptic
    curve has the property that its Hasse-Weil zeta function has an
    analytic continuation and satisfies a functional equation of the
    standard type.

 무슨 말이지 이해가 되십니까? 와일즈는 몇 단락 뒤에 증명의 아이디어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구절의 첫 두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Our approach to the study of elliptic curves is _via_ their associated
    Galois representations. Suppose that \rho_3 is the representation of
    Gal(\bar Q/Q) on the 3-division points of an elliptic curve over Q, and
    suppose for the moment that \rho_3 is irreducible.

 역시 이해가 되십니까? 적어도 이쪽 분야의 *석사 과정*은 마쳐야 용어나마
 알아 들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같은 수학과라도 분야가 다르면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인데 수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떻겠습니까?

 갈루아 이론(Galois theory), 표현론(representation theory),
 대수기하(algebraic geometry), 타원곡선론(elliptic curve theory),
 대수적 정수론(algebraic number theory), 해석적 정수론(analytic number
 theory), 보형 형식론(modular form theory) 등등을 기본으로 알아야 하니
 당연하겠죠? 기념으로 간직할 게 아니라면 와일즈의 논문을 프린터로 뽑아 볼
 생각은 전혀 할 필요 없습니다.

 각의 삼등분 작도에 몰두하는 사람만큼이나, FLT를 초등적인 방법으로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 일부는 증명에 성공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 백이면 백 모두 어딘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FLT에 대한 오랜 역사를 생각해 보아도, 그 수많은 사람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지금 사람이라고 해서 성공할 수
 있겠으며, 그렇게 간단한 방법이라면 오일러나 가우스 등의 대가들이 어째서
 알아내지 못했겠습니까?

 또, FLT의 본질(?)은 어떤 수학 구조에서 곱셈이 얼마나 잘 행동(?)하는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지수에 대해서라면 (예로 n=3에 대한
 오일러의 증명이나 n=4에 대한 페르마 자신의 증명) 이런 것을 초등적으로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물론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하지만 일반적인 지수에
 대해서라면 얘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sqrt{2}를 근으로 갖는 정수 계수 다항식을 찾는 것은 간단합니다.
 \sqrt{3}을 근으로 갖는 정수 계수 다항식을 찾는 것도 간단합니다. 그리고
 \sqrt{2} + \sqrt{3}을 근으로 갖는 정수 계수 다항식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한 수"에 대해서가 아닌, 일반화된 명제인

    a가 어떤 정수 계수 다항식의 근이고, b가 어떤 정수 계수 다항식의 근이면,
    a+b도 어떤 정수 계수 다항식의 근이 된다

 와 같은 명제는 체론(field theory)을 쓰지 않고는 전혀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구체적인 개개의 경우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가 됩니다.

 FLT처럼 "문제는 간단하지만 증명은 최고 수준의 수학을 동원해야 하는 문제"는
 아주 많습니다. "이렇게 쉬운 문제를 간단하게 못 풀 리가 없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순진한 생각입니다.

 그러니, 안타깝지만 FLT를 증명해 내고 말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다른 문제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완벽하게 증명된 문제를 또 증명하려는
 것은 별로 영양가 없는 일이니까요.
 

                                            ... & circum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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