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ExLife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8년01월16일(금) 05시55분30초 ROK 제 목(Title): claudia님께 드리는 개인적인 답글 그러고 보니 우린 아직 서로 제대로 인사를 나눈 적도 없군요. 저의 글 '사랑스러운 아내'에 대한 답글을 써주신 것이 아마 유일한 우리의 만남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술자리에서도 한 번 뵌 적이 있지만 그땐 이미 취하셨기 때문에 아마 저를 알아보지 못하셨을 테지요. 저 역시 혼자 집으로 올라가시던 당신의 뒷모습을 잠시 훔쳐보았을 뿐입니다. :) 저처럼 왼손잡이셨군요. 그렇지만 당당한 모습이로군요. 솔직이 그 당당함이 부럽습니다. 저는 남의 일에 목소리 높이기를 즐기지만 저 자신의 문제로 관심을 돌리면 늘 초라해집니다. 저는 장인 되실 분께 왼손으로 잔을 드리고 받지 못합니다. 물론 저도 '예절'의 의미 정도는 압니다. 장인어른께 감히 왼손을 내밀겠다는 생각도, 그래서 오른손을 내미는 것이 비겁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평소 같으면 말입니다. ... 그것은 10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날 저녁의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가씨의 아버님을 찾아뵙고 탐탁찮은 표정을 지으시는 그분께 부득부득 큰절을 올렸습니다. 어머님께서 팔짱을 끼고 계셨지만 그애가 직접 술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한 쟁반 받쳐들고 들어왔고 잔뜩 얼어 있던 저는 그분께서 내미시는 잔을 받았습니다. 머리가 텅 빈 듯해서 제가 왼손을 내미는지 오른손을 내미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분의 황당해하시는 표정을 보고서야 황급히 손을 바꾸었습니다. 왼손 때문에 그분께서 저를 거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의대를 때려치고 공대를 가는 '정신나간' 녀석이 못마땅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만일 그분께서 저를 애초에 반기셨더라면 저는 적당한 장면에서 스스로가 왼손잡이임을 구김 없이 고백할 수 있었을 것이고 가벼운 웃음과 함께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겠지요. 그러나 그때 저는 이미 절망에 가까운 상태로 그분을 뵈었고 잔뜩 주눅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컴플렉스는 의식의 껍질의 약한 곳을 비집고 나온다'는 명언대로 약해져 있던 저는 평소에 제가 코웃음치던 가치들에 아둥바둥 매달리고 있었던 거죠. 장인어른 되실 분의 '포용력'을 믿어 보겠다는 배포 따위는 꼬리를 감춘 지 오래였습니다. 그애랑은 결국 헤어졌고 나중에 그애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는 이야기를 선배 레지던트에게 들었습니다. 저는 정신과 진료실에 앉아 겁먹은 눈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던 환자들을 떠올리며 유달리 눈이 크고 눈물이 많았던 그애를 생각했습니다. 한동안 그 생각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원래 비굴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 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는 잘 굽히지 않는 저도 집안 어른들 앞에서는 - 비록 그 어른의 언행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경우에도 - 감히 대들지 못합니다. 그러니 저의 왼손 컴플렉스는 왼손이 문제가 아니라 저의 타고난 비굴함이 원인이라고 하시더라도 저는 반박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말이죠... 저는 당신처럼 당당한 사람이 못되더라도 저의 입장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격이 허약한 사람은 왼손잡이를 보는 사회의 차가운 눈길을 호소할 자격도 없는 것일까요? 스스로 강해지기 전에는 오른손잡이들의 배려를 아쉬워할 자격이 정말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자신보다 더 깊은 차별 속에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공감을 스스로의 문제와 연관지어 말할 수 없는 것일까요? 결정적인 순간에 그분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좀더 강하지 못했던 스스로를 탓해야지, 사회가 나의 왼손을 좀더 따뜻한 눈길로 보아 주었더라면 그때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 하고 원망해서는 안되는 일일까요? 그렇기 때문에 저 역시 '정상인' 보다는 '비정상인'인 그들의 시각을 먼저 이해하려고 의식적으로 애쓰는 것조차 부당한 것일까요? 세상에는 저같이 비굴한 사람도 많은데 말이죠... 사실 limelite님과 저와의 견해 차이는 사소합니다. 그렇지만 사소한 차이이기 때문에 저는 더 집요하게 추궁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Symond 목사님처럼 아예 출발점이 다른 이를 향해 이런 논변을 벌이는 것보다는 어쩌면 합치될지도 모르는 견해의 소유자를 상대로 쟁변하는 것이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끝으로 사소하지만 껄끄럽게 남아 있는 구절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군요. >> 동성애자들 역시 당신들을 사랑하고 있을 것입니다. > > 저도 동성애자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을 성적 대상으로서가 아니고, 인간 > 으로서 말입니다... 그들도 저를 성적대상으로가 아닌 인간으로 사랑해주길 > 바랍니다... 아니라도 할 수 없겠지만... 동성애자 아닌 제가 어떤 여성에게 위와 같은,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 아닌 사랑을 고백했다면 그 여성은 제가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취급한다고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요. 마찬가지로 동성애자가 동성애자 아닌 동성을 향해 성적 대상으로서가 아닌 사랑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당신의 대답은 어쩐지 가시가 돋친 듯, 그리고 동성애자들에 대해 실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아니라도 할 수 없겠지만...'이라는 끝마디가 제게는 너무 차갑게 들립니다. 제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당신의 심리를 썰어가며 '혐오감에서 출발하여 일단 유해한 것으로 단정짓고 그 다음에 이유를 찾다가 결국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닌, 자의적인 논거만을 열거하는 어정쩡함'이라고 외람된 분석을 한 것은 당신의 첫 글에서도 위와 같은 비정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 * * 이 글은 최대한 솔직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제가 품은 생각을 왜곡 없이 다 털어내지 않으면 당신께 너무 죄송스러울 것 같아서죠. 그래서 도처에 당신을 자극할 만한 구절들이 불거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이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예의 차리며 좋게 지내는 친구라면 주변에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정치 보드나 기독교 보드에서는 비슷한 견해를 공유하고 있는 분이기 때문에 '말이 통할 것같다'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용렬한 저로서는 모처럼 용기를 낸 셈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신과 실습생 시절에 제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동성애자 용태, 원모, 윤나, 희은이, 지민이의 겁먹은 눈빛, 세상 사람들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에 떨고 있던 그 눈빛이 그들의 죄없음을 외칠 용기를 저에게 실어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