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oto ] in KIDS 글 쓴 이(By): parsec ( 먼 소 류 ) 날 짜 (Date): 2004년 11월 3일 수요일 오후 11시 40분 51초 제 목(Title): Re: 그나저나 이 사진... 사진이라면 초보축에도 못낍니다만 그냥 생각나서 하는 얘긴데요, 사람의 눈은 다양한 대상들에 시선을 순간 순간 옮기면서 촛점, 노출 등을 자유롭게 변환시키며 사물을 보면서도 그 다양한 그림들을 하나의 시야 안에 융합시키는 반면 사진의 경우엔 하나의 촛점과 노출로 장면을 기록하기 때문에 눈으로 볼 때의 느낌과 사진으로 찍어서 볼 때의 느낌은 굉장히 다른 것 같습니다. '눈으로 본 듯한' '사실같은' 느낌을 사진에 담기 위해서는 굉장한 노력과 기술, 때로는 특수한 필터까지 써야만 가능한 경우가 많은 거죠. 더구나 눈으로 볼 때는 대상과 눈 사이에 있는 온갖 장애물도 적당히 '정신적으로(?)' 걸러내고 보는 데 -- 예를 들면 지저분한 유리창, 철망, 무성한 나뭇잎, 시야 한쪽에 널린 걸레, 등등 -- 사진에는 이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너무나 정직하게 담기기 때문에 이상하게도 방해가 됩니다. 사진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사물의 모습을 담는다기 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모습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사진이라는 새로운 대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멋진 건물의 사진을 찍고 싶다면 목적하는 건물의 이미지를 차용한 네모난 종이(또는 화면) 속의 '무늬/패턴'을 새로 만들어 내는 작업인 것이죠. 사진에 찍힌 피사체가 눈으로 그 장면을 봤을 때 내가 받은 느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수 있으려면 내가 인상을 받은 그 사물을 어떻게든 강조(확대하든, 계조를 강조하든, ...)하지 않으면 안되고, 눈으로 볼 때는 간과한 앵글이나 피사체의 선별 등등 복잡한 정신 노동을 해야만 하죠. 쓰고 보니 괜히 술 한잔 하고 와서 주절거렸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샌 카메라도 살짝 맛이 가서 사진도 많이 못찍고, 새로 하나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번엔 익시 계열로 가 볼까 합니다. 수리를 맡겨도 왠지 제대로 고쳐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때문인데, 학창시절에 계산기가 고장나서 -- 앗 고장이 아니라 뭔가로 눌러서 뽀개 먹어서 -- AS를 맡겼었는데, LCD 한 줄이 나간 다른 계산기로 그냥 바꿔주더라고요. 그 뒤로 전자제품의 수리라는 서비스 자체에 약간의 불신감이 생겼는데 그래서 카메라를 맡기러 행차를 하고 찾아오고 하는 수고를 하면서 수리를 맡긴다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러고 보니 라이몽 아저씨의 글/사진과는 상관없는 얘기만 했는데요, 눈으로 천체를 볼 때는 정말 그 아름다움을 남겨 놓고 두고 두고 감상하고 싶은 생각에 사진을 찍어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에 실망을 하곤 했습니다. 그 커다란 달도 사진을 찍어보면 뿌옇게 둥근 원반 외엔 아무것도 안나오기 때문에 실망이 크죠. 제대로 달 사진을 찍으려 해도 망원 렌즈나 망원경을 쓰기 전엔 거의 불가능하고, 더구나 별이나 희미한 은하를 찍으면 거의 보이지도 않는 희미한 점 뿐 소원을 빌고 싶도록 아름다운 반짝이는 별은 볼 수가 없습니다. 저야 필터나 망원렌즈를 써서까지 사진을 찍어보진 못했 으니까 이런 얘길 하는지도 모르지만 여튼 그만큼 천체사진을 찍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이 것은 사진의 어려움이란 걸 더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죠. 이런 천체를 지상의 사물과 어울리게 찍는다는 것은 더욱 큰 어려움을 수반할텐데요, 간혹 일몰 광경이나 ET가 자전거로 보름달 앞을 가로지르는 장면 같이 천체와 지상의 물체를 대등한 비중으로 한 화면에 담은 장면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건 대단한 성능의 망원렌즈는 물론이고 매우 비좁은 시각 안에 원하는 지상의 피사체를 위치시키는 준비까지도 필요한 고난도의 예술 같습니다. -- 물론, 초보자 급도 못되는 사람이 보기에 그렇다는 겁니다. 음... 얘기를 하다 보니 무슨 얘길 하려는 건지 스스로 감당하기 힘드네요. 그만 주절거리고 집에나 가야겠습니다. 죄송. 으히히. (라임 아저씨한테 혼나겠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May the source be with you!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