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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 in KIDS
글 쓴 이(By): Gamja (감자)
날 짜 (Date): 2003년 3월 14일 금요일 오후 08시 27분 23초
제 목(Title): 카메라와 사진에 대한 잡생각


작년에 독일로 출장을 가면서 사진보드에 글을 하나도 올리지 못했다.
독일에서는 텔넷을 쓸 수 없어서 글을 쓸 수는 없었지만 올라오는 글들은 
웹으로 꾸준히 읽고 있었다. 혼자 하는 타향살이, 키즈가 벗이 되었다고 할까..

올라오는 글들이 대부분 디카에 관한 것들이라 서운한 감도 없지 않았지만 
짜이스와 라이카, 슈나이더 렌즈의 차이에 대한 글처럼 주옥같은 글도 있었다. 
그동안 읽기만 하면서 사진보드 사람들에게 빚진 것 같은 느낌이어서 언젠간 
나도 허접한 글이나마 하나쯤은 써야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야근하며 혼자 남은 김에 사무실에서 낙서 한 편 남긴다. 

이 보드에서 수차례 밝혔던 바와 같이 내 카메라는 니콘 FM3a이다. AF SLR을 
넘어서 디카로 대세가 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100만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산 
카메라가 겨우 조리개우선 모드밖에 없는 기계식이라니! 교환렌즈까지 모두 
친다면 200만원에 가까워지는 큰 투자를 한 것 치곤 너무 정신나간 짓 
아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내 카메라가 너무 사랑스럽다. 그렇지 않았으면 
애저녁에 팔아 치우고 디카로 갔을 테니 하나마나한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녀석으로부터 사진을 배우고, 사진으로부터 내 삶이 윤택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들로부터 사진 이쁘다는 소리 한 마디만 들으면 
헤벌레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초보 주제에 사진때문에 삶이 윤택해진다는 
한마디 할 수 있다는 것도 사진이 내게 베푸는 혜택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뿌옇던 시야가 맑게 밝아지는 느낌이 좋아서 SLR을 쓴다는 사람이 
있다. 똑딱이와는 차별되는 화질때문에 SLR을 쓰다가 점점 더 장비병에 빠지고, 
급기야는 사진보다는 장비에 더 집착하는 지경이 되기도 한다.  

나는 반대의 경우로, 기계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내가 찍은 사진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100% 기계식 카메라만을 고집했었다. 하지만 병아리가 날 수는 
없는 법. 내장 노출계에 의존해서 노출을 정하는 이상 엄밀히 말해서 '기계가 
아니라 내가 찍은' 사진은 될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고민할 정도의 
완벽주의자가 아닌 게 다행이었을까.

FM3로 바꾼 후 조리개우선의 매력을 발견했다. 심도만 내가 정하고 노출은 
카메라에 맡겼었는데, 카메라의 정확성이 나를 놀라게 했다. 아침, 낮, 오후, 
야경까지, 기계가 판단하는 노출의 정확성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주관적인 
느낌의 표현은 +-보정버튼을 활용하면 120% 달성됐다. 노출에 신경쓰지 않으니 
사진의 내용과 구도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촛점도 훨씬 빨리 잡을 수 있었다. 
내 경험으로는 조리개우선 모드에서의 촬영속도가 AF 못지 않은 것 같다. 

조리개우선의 장점은 노출결정이 자동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노출 자체도 
매뉴얼에 비해 더 정확하다는 것도 있다. 매뉴얼 모드에서는 60, 125, 250 
등으로 정해진 셔터속도밖에 쓸 수 없지만, 조리개우선 모드에서는 카메라가 
결정한 노출값에 따라서 1/86초나 1/167초 같은 임의의 셔터속도를 얻을 수가 
있기 때문에 최대 0.5스톱의 오차를 줄일 수 있다. 많은 카메라의 노출 보정 
단수가 +-0.3이나 +-0.5인 것을 생각한다면 0.5스톱의 오차는 결과물의 느낌을 
좌우할 수 있는 큰 차이가 됨을 알 수 있다. 

노출의 미묘한 맛에 더해 화각의 차이에도 조금씩 눈을 떠가는 느낌이 든다. 
전에는 줌이란 밀고 당겨서 피사체를 적당한 크기로 화면에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무한개의 화각을 가진 마술상자로 보인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줌의 애매한 화각보다는 단렌즈의 딱 잘라지는 화각을 좋아한다. 

내 렌즈 구성은 28, 45, 105mm이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지만 꽤 괜찮은 렌즈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광각도 망원도 조금씩 아쉽기는 하지만 발로 뛰는 
'발줌'을 쓰면 대개는 커버된다. 전에는 광각은 무조건 풍경, 망원은 무조건 
인물/정물로 생각했었는데 요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30cm이 안되는 
최단초점거리를 활용해서 28mm로도 근접촬영을 하고, 105mm로는 좁은 화각을 
이용해서 잡다한 주변을 잘라내는 방법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고정된 
피사체도, 고정된 렌즈도 없다. 다만 손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쓸 뿐.

굳이 렌즈를 추가한다면 광각쪽으로 하고 싶다. 몇 발자욱만 움직여도 발줌의 
효과가 팍팍 나는 망원에 비해서 광각쪽은 꽁지가 빠지게 뛰어다녀도 잘 티가 
안나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지금까지 내 사진을 살펴보니 표준-광각 계열의 
사진이 훨씬 많은 것이 주된 이유이다. 여윳돈이 생기면 20mm를 구해보고 싶다. 

남들 다 아는 얘기 길게 떠들었나 싶다. 봄이다. 사진보드 사람들 모여서 한 번 
같이 나가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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