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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7월  3일 금요일 오후 05시 54분 51초
제 목(Title): 노르망디 전선의 종결 - 36 (4)


8월 14일 밤에 시작된 야간 공습을 시작으로 캐나다군은 250여대의 전차와 기계화 
보병부대를 일제히 팔레즈로 밀어 넣었고, 그 전투는 내심 브래들리가 두려워하고 
있었음에 분명한 바로 그런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캐나다군 기갑부대의 미국제 셔먼 전차의 포수 '네일 스튜어트'는 지옥의 
한가운데와 같았던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부대는 밀집된 전차들로 인해 마치 거대한 강철의 벽과도 같았고, 그 
한가운데서 달리고 있다니 이 정도면 절대로 죽을 염려는 없을 것이라는 안도감 
마저 들었다. 질풍처럼 언덕을 내려가 보니 지도에도 없는 개울이 나왔고, 물이 꽤 
잎었으므로 적당한 도하지점을 찾는데 꽤 시간을 소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개울을 
건넜을 때는 전차의 대열이 상당히 흐트러진 상태였다.
우리는 엔진소리를 요란하게 울리며 나아갔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독일군의 전차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길기에는 파괴된 독일군 대전차포의 잔해가 널부러져 
있을 뿐이었다.
우리 전차장 '포사이스' 중위는 적 대전차포에 바로 노출되는 것을 피해 전차를 길 
왼편의 보리밭 속으로 몰아 넣었고, 내가 포구를 우리쪽으로 돌려 놓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독일군의 88mm포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전차장의 명령을 기다릴 틈도 없이 즉시 그 '흉물'을 단 한방에 날려 
버렸지만, 그것은 흡사 전투개시를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다.
요란한 포성과 함께 내 앞쪽에서 달리고 있던 전차 몇 대가 직격탄을 얻어 맞고 
주저앉는 것이 보였다.
전투가 개시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그토록 기세등등했던 아군 전차대의 위용은 간 
곳이 없었다.
주위에는 온통 전차들이 불타고 있었고, 바로 앞에서 전진하고 있던 전차가 
피격되자 승무원들이 튀쳐 나와서 황급히 보리밭 사이에 엎드리는 모습이 조준경의 
파인더를 통해 얼핏 스쳐갔다.
그때 갑자기 뜨거운 핏줄기가 내 어깨 위로 좍 쏟아져 내렸다. 날아온 한발의 
대전차 포탄이 빗나가면서 햇치를 열고 포탑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고 있던 우리 
전차장 포사이스 중위의 목을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목이 없어진 전차장의 몸뚱이가 전차 바닥에 놓여있던 빈 포탄상자 위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바로 그때, 차체를 때린 강한 충격으로 나는 목뼈가 부러질 뻔 했다. 내가 타고 
있던 전차도 뒤쪽으로부터 한방 얻어 맞은 것이다.
엔진실로 연결된 구동축을 따라 불길이 번져오기 시작했지만, 원래 비좁은 전차 
안에서 덩치 큰 포사이스의 시체까지 가로 막혀 있으니 더욱 탈출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포탑안에 가득찬 주포의 포미 아래쪽으로 엉금엉금 기면서, 그때까지도 
잘라진 목으로부터 뜨거운 피가 분수처럼 솟아 오르고 있는 포사이스의 시체를 
밀치고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우리는 해가 질때까지 보리밭 속에 엎드려 있어야 했는데, 독일군의 기관총탄에 
맞ㄱ저나 아군전차의 캐버필러에 짓밟히는 것을 상상하며 와들와들 떨었다."
이 공격으로 캐나다군은 팔레즈 북방 5km까지 접근했고, 서쪽에서는 영국군이 
'플레르'읍을 점령했다. 그 남쪽에는 이미 하이슬립의 미군 전차대가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거대한 말굽모양을 이룬 포위망 동쪽으로 약 40km의 개구부가 열려 
있었지만, 독일군이 조금이라도 이동할라치면 하늘로부터 공습과 함께 어마어마한 
포격이 쏟아졌다. 팔레즈는 그야말로 이 전쟁이 시작된 이래 가장 잔혹하고도 
효율적인 살륙의 현장으로 변했다.
"마치 흉포한 죽음의 사신이 거대한 낫으로 독일군의 편이라면 무엇이든지 
남김없이 베어 버리면서 지나간 것 같았다.
길에도 논밭에도 시체가 즐비했고, 불타버린 전차와 산산조각이 난 짐마차, 그리고 
부패하면서 체내에서 발생한 가스로 인해 풍선처럼 팽팽해진 소나 말의 시체가 
하늘을 향해 네발을 쳐든 채 딩굴고 있었다."
이런 판에 8월 15일 아침에는 총사령관 크뤼게 원수가 실종되었고, 히틀러는 
노발대발하며 그의 체포를 지시했다.
이 무렵 이미 크뤼게를 해임시킬 결심을 굳히고 있던 총통은 틀림없이 크뤼게가 
연합군의 진영으로 넘어간 것이라고 단정했던 것이다.
빗발치는 포화를 무릅쓰고 SS의 체포부대가 필사적으로 그의 행방을 찾아헤멨지만, 
뜻밖에도 사령관은 그날밤 초췌한 모습으로 '요제프 디트리히'장군의 제5장갑군 
지휘소로 돌아왔다.
전선을 시찰하던 중 연합군 전투기로부터 기총사격을 받은 승용차가 파손되었고, 
무전기마저 불통되는 바람에 부관과 함께 하루종일 도랑속에 숨어있었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60대의 노원수가 일개 병사처럼 물이 고인 도랑속에서 목만 내민 채로 
하루를 보내야 했던 경험은 마침내 그로 하여금 모종의 결심을 굳히도록 했음이 
분명했다. 8월 16일, 크뤼게는 전혀 평소 그답지 않은 단호한 태도로 히틀러에게 
전 부대의 총퇴각을 강력히 건의했다.
"총통께서 어떤 명령이나 화려한 수사를 동원하셔도,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미 
졌다는 사실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는 히틀러의 회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 부대에 철수를 명령했다.
하지만 10만의 병력이 철수를 마치자면 며칠이 걸릴 것이고, 8월 16일에는 
캐나다군이 팔레즈를 함락시킴에 따라 탈출구를 더욱더 좁아졌다. 그나마 남쪽에서 
대기하고 있는 미군 전차대가 더이상 북상해 오지 않고 있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원래 모든 군사작전중에서도 질서정연한 퇴각이 가장 어렵다고 하지만, 독일군은 
크뤼게가 설정한 엄격한 계획표에 따라 부대의 건재를 유지한 채로 질서정연하게 
철수하기 시작했다. 만신창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토를 석권헜던 정예의 
제3제국 병사라는 긍지와 군기는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17일, 캐나다군이 '트런'전방 3km 지점까지 육박함에 따라 탈출구의 확보를 책임진 
독일군은 전우들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필사적인 저항을 펼쳤다.
크뤼게를 서부유럽 총사령관과 B집단군 사령관직에서 해임한다는 히틀러의 통고가 
날아곤 것은 이때였고, 8월 17일에는 '발터 모델'원수가 지휘권을 인수하기 위해 
러시아 전선으로부터 도착했다.
이 사람은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뛰어난 재주가 있다고 하여 '소방수'라는 
별명을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총통의 신임도 두터웠지만, 모델이 노르망디에서 
발견한 것은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전면적인 파국 바로 그것이었다.
사단이라고 불리는 부대는 대대규모로 줄어 있었고, 심지어는 우마차 한대조차 
남아있지 않은 기갑사단도 있었다.
하루동안 전선의 실상을 둘러 보고 난 모델은 히틀러에게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게 
보고했다.
"본관은 적의 공세를 전지하고 전선을 사수하라는 명을 받고 노르망디에 
착임했지만, 현실은 남아있는 부대나마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안전하게 철수시킬 수 
있어도 대성공이라는 점을 감히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모델은 10개 사단의 생존자들을 4개의 그룹으로 재편성하고 세심한 탈출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히틀러의 소환을 받고 귀국길에 올랐던 크뤼게 원수가 '메츠'로 가는 노상에서 
청산가리를 마시고 자결한 것은 8월 18일 밤이었다.
크뤼게가 총통에게 남긴 유서는 한시바삐 연합군에 항복하여 전쟁을 종결시킬 것을 
탄원하는 내용이었다고 전해진다.
"존경하는 총통 각하께서 이 서신을 읽으실 때쯤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본관과 모든 지휘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노르망디에서의 패전은 결코 우리의 
무능이나 비관주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독일 국민들은 이미 충분히 고난을 겪였으며, 지금이야말로 더 이상의 희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본관의 소신입니다. 총통께서는 부디 그 현명한 
판단으로 전쟁을 조기에 종결지음으로써, 우리 민족을 파면로부터 구하시기를 
간청하는 바 입니다."
그날밤 연합군의 포위망은 다시 길이 9km, 폭 1km로 좁혀졌다.
포화로 인해 온 하늘이 뻘겋게 물든 가운데 지치고 피를 흘리는 독일군의 대열이 
온 벌판을 뒤덮은 차량의 잔해와 시체를 헤치면서 꾸물꾸물 나아갔다.
8월 19일 아침 동이 틀때까지도 포위망의 출구는 실날처럼 열려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독일군 부대는 연합군의 항공기로부터 사정없는 
맹공을 받았다.
불타는 차량에서 솟아오르는 검은 연기가 온 하늘을 뒤덮었고, 이것만이 완전히 
일방적인 '게임'을 즐기고 있는 연합군 조종사들로부터 몸을 숨길 수 있는 유일한 
은폐물이었다.
공기중에는 시체가 썩는 역겨운 냄새와 고기타는 냄새가 가득했다.
캐나다군 제3사단 소속의 '덩컨 카일'일병은 불타버린 나무등결 위에 주저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했지만, 엉덩이에 와닿는 뭉클한 느낌으로 그는 비로소 
그것이 나무등걸이 아니라 숫처럼 새까맣게 타버린 인간의 육신이란 걸 알았다.
8월 19일 밤에 이 죽음의 포위지대를 마지막으로 빠져나간 부대는 독일 공군 
제3공수사단이었다.
이 부대는 그동안 아군부대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탈출로의 북익에서 꼬박 
사흘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필사적인 전투를 
계속했다.
그날 오후 늦게 제2공수군단장 '오이겐 마일들'중장은 남아있던 차량들을 
집결시키고 거기에다 큼직한 적십자 표지를 붙였다.
그리고 이 부대의 생존자들을 나눠 태운 차량의 대열은 밀집대형을 이루어 
전진하기 시작했지만, 이 대열을 향해서는 단 한발의 총탄도 발사되지 않았다.
자동차에 올라타는 순간 죽음가도 같은 깊은 잠에 골아 떨어져 버린 공수병들은 
연합군이 보여준 이 기사도적인 온정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지만, 마인들 장군은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술회한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그리고 한편으로 두려음도 느꼈다. 
그것은 진정으로 강한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하늘도 이 비참한 무리를 향해 약간의 온정을 보여 주는 듯 했다.
8월 20일 저녁부터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연합군 항공기들의 발을 묶어 
놓았던 것이다.
독일군은 이 패배로 1943년 5월에 아프리카 전선이 종결될 당시 이탈리아군을 
포함하여 27만 2000명이 포로가 된 이래 최악의 손실을 입었다.
팔레즈 포위전에서 독일군 전사자는 약 1만명, 그리고 5만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250여대의 전차가 파괴되었다.
8월 19일 밤까지 무사히 포위망을 빠져나간 독일군의 숫자는 정확치않다.
모델원수는 전 병력의 40%정도가 철수를 완료했다고 보고하고 있지만 이것은 
과장된 것이 분명하고, 아마도 그 숫자는 아마 4만명 정도일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6개 기갑사단이 탈줄에 성공했다고 하지만, 이 6개 사단의 잔존 병력을 모두 
합쳐도 2000명 내외이며 전차는 62대뿐이었으므로 이것은 실제로 1개 전차연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4만의 철수 병력 중에는 독일군의 주요 지휘관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모델 군사령관을 포함하여 4영의 군단장과 25명의 사단장들은 한결같이 노련하고 
경험많은 역전의 베테랑들로서, 이들은 조만간 다시 재편된 부대를 이끌고 
연합군에 맞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탈출에 성공했다고는 하나 독일군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손을 접고 있던' 미 제15군단의 2개 기갑사단이 8월 16일에 아르장탕에서 
발진하여 8월 19일에는 파리로부터 불과 50km 남짓 떨어진 '세느'강 기슭의 
'망트가시쿠르'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8월 19일 밤에는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제5기갑사단의 전차와 제79보병사단의 
병사들이 세느강을 도하하는데 성공했고, 50일 저녁까지는 상당수의 미군이 독일 
본토를 향해 진격할 수 있는 채비를 마쳤다.영국군과 캐나다군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동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이제 개전이래 가장 치열한 혈전을 기록했던 노르망디 지역에서 독일군은 
일소되었고, 전황은 새로운 국면을 향해 치달아 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독일 본토를 향한 길이 뻥 뚫린 채로 연합군의 진격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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