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 날 짜 (Date): 1998년 6월 3일 수요일 오전 11시 06분 44초 제 목(Title): 노르망디 공폭작전 - 35 (5) 공군의 폭격지원이 굿우드 작전에 집중되는 바람에 '순서'를 기다려야 했던데다가 때마침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로 인해 4일간이나 작전이 연기되는 바람에 미군은 잠시 휴식의 기회를 얻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최고의 호사라고 할 수 있는 더운 물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던 병사들은 뜨거운 스테이크까지 실컷 포식했다 - 지뢰밭속으로 뛰어들거나 폭격에 맢아 죽은 가축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던 것이다. 비가 그치기 시작했으므로 브래들리 장군은 7월 24일 오후 1시를 기하여 코브라 작전을 개시할 것을 결정했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그는 조금 더 기다리는 편이 나을 뻔했다. 왜냐하면 영국군의 굿우드작전으로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크뤼게 원수가 마침내 용기를 내어 히틀러에게 철수허가를 상신했고, 뜻밖에도 히틀러가 이 요청을 수락하는 바람에 며칠안에 노르망디 전역의 독일군은 저절로 후퇴를 시작할 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반가운 소식을 알 길이 없던 미군이 예정대로 코브라 작전을 개시함에 따라 독일군은 하는 수 없이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에도 공세는 공군이 생로와 페리에 사이의 '로마도로'주변에다 어마어마한 폭격을 퍼붓는 것으로 시작될 참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이 다소 손발이 맞지 않는 어정쩡한 것이 되고 말았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비구름이 낮게 드리오고 있었고, 이렇게 시계가 나쁜 상태에서는 우군 부대의 머리위에 폭탄을 떨어뜨려 버릴 위험이 있었으르로 '리 말로리'공군대장은 폭격을 연기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영국에 있는 기지로부터 B-17과 B-24를 비롯한 약 1,600대의 폭격기가 출격을 해버린 상태였다. 급히 기지로 회항하라는 명령이 전해졌지만 미처 연락을 받지 못한 35대의 기체가 그대로 폭격을 시작해 버렸고, 역시 염려했던 대로 그 폭탄중의 몇 개가 미군 진지위에 떨어져 150명 가량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이 어중간한 폭격은 그보다 더한 혼란의 씨앗을 뿌려놓는 결과를 불러오고 말았다. 폭격의 시작이 곧 작전개시의 신호로 알고 있던 미군 지휘관들은 혼란에 빠렸다. "예정대로 작전이 시작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조금전의 폭격은 너무 가볍지 않은가?" 이런 혼론속에서 부대를 출발시킨 지휘관이 있는가 하면, 정확한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좀더 기다려 보기로 결정한 지휘관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혼란은 독일군도 마찬가지였고, 바로 여기서 미군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된다. 폭격소리가 곧 작전개시 신호임을 알고 있던 독일군 전차 교도사단의 바이에를라인 사단장은 폭격이 지나간 후에도 부대의 손실이 비교적 경미하다는 사실에 크게 사기가 고무되었다. 게다가 폭격직후에는 당연히 벌떼처럼 몰려올 것으로 짐작했던 미 지상군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먼저 선제공격에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엄폐호속에 단단히 숨어있던 전차들이 기어나와 공격대형으로 전개하기 시작했지만, 이것이야말로 실로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 이튿날 아침에 연기되었단 '진짜 폭격'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길이 뚫렸다! 7월25일 아침, 1500여대의 폭격기가 로마가도 상공에 모습을 나타냈다. 뒤늦게야 사태의 전말을 깨닭은 독일군은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허우적 거렸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250kg짜리 폭탄 하나는 제대로 떨어지기만 하면 순식간에 독일군의 4호전차 3대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전투기가 투하한 네이팜탄은 독일군 보병들이 폭격을 피해 뛰어든 비에 젖은 보리밭도 순식간에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고, 45kg짜리 파편 폭탄은 그들의 머리위에 수만개의 강철조각을 흩뿌린다. 코브라 작전을 보도하기 위해 제4보병사단과 동행하던 종군기자 '어니 파일'은 그 장대한 광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피어오른 흙먼지가 하늘을 가지자 태양빛까지 희미해졌다. 하늘높이 튀어 올랐던 흙더미가 떨어져 내리면 트럭 한대나 몇명의 병사가 간단히 생매장된다. 우리 병사들은 이런 세상의 종말과도 같은 폭격을 퍼부을 수 있는 공군이 우리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 양군이 워낙 가까운 거리에서 대치하고 있었던 바람에 이 둘째날에도 적지않은 이군 피해자가 발생했다. 111명의 미군이 폭격에 희생되고 500여명이 부상한 것이다. 운나쁘게도 바람이 미군 진지쪽으로 불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욱 컸다. 공군의 폭격수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선도기가 투하한 폭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목표로 폭탄을 투하하는 버릇이 있고, 바람이 그 연기를 미군쪽으로 날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거듭되는 참변에는 온후한 성품의 브래들리 장군조차도 마침내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것은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이 인간에게 당연히 그 지불을 요구하는 댓가의 일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는 공군에게 폭격따위를 요청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장군자신도 이 폭격이 독일 전차 교도사단의 전 전력을 사실상 괴멸시켜 버렸다는 대전과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생로 - 페리에 가도는 글자 그대로 독일군의 묘지가 되었다. 전차 교도사단은 전 병력의 90%가 죽거나 부상, 혹은 머리가 돌아버렸고, 그밖에 1개 공군 공수연대가 전멸한 것이다. 생존자들도 대부분 고막이 터져버리거나 감각이 마비되어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였고, 간신히 살아남은 12대의 전차는 폭격 직후에 다시 몰려온 전투기들의 밥이 되었다. 용명 높은 정예의 전차 교도사단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드디어 미군들의 지상작전이 개시되었다. 3개 보병사단이 진격을 개시했다. 작전개시 이틀째에 '마리니'와 '생젤'이 미군의 수중에 떨어졌고, 3일째에는 제2기갑사단이 '크탕스'에 입성했다. 갈기갈기 찢기운데다 그 무렵에 하달된 총퇴각의 명령을 받은 독일군이 일제히 도망치기 시작했다. 약 두달간의 혈전끝에 이제 이 노릉망디에서 역전의 예기가 마련된 것이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