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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4월07일(화) 10시32분53초 ROK
제 목(Title): "놈들이 몰려왔다." 31 - (4)


'매튜 릿지웨이'소장의 제82공수사단 '올 아메리판'의 형편은 더 엉망진창이었다.
강풍에 밀린 병사들은 반경이 무려 50km이상이나 되는 넓은 지역에 뿔뿔히 
흩어졌고, 수많은 병사들이 45kg이 넘는 무거운 장비로 인해 잡풀이 무성한 
늪지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익사해 버렸다.
많은 병사들이 자신의 위치와 집결지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숲속을 갈팡질팡 해매고 
다녔고, 겨우 이 늪지대를 빠져 나왔을 때는 두브강의 다리를 폭파하고 메르드레강 
서안에 방어선을 형성한다고 하는 원래의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늦어 있었다.
그나마 원래의 작전계획에 따라 움직일 수 있었던 유일한 부대는 '생메르 
에글리즈'읍을 목표로 강하한 제505연대 제505연대 정도였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마을 외곽에 강하하여 약간의 독일군 수비병력이 버티고 있는 
이 마을을 점령하기로 되어있던 강항병들을 대부분 바람에 밀려 마을 한복판에 
떨어지고 말았다.
원래 강항병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착지지역이 바로 이런 인구 밀집지대의 마을 
한복판이다.
약400m 상공에서 2층에서 맨몸으로 뛰어내리는 것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강하병들에게 있어서 교회의 뾰족탑이나 정원 울타리, 하다못해 지붕의 
처마장식이나 유리창문까지도 치명적인 흉기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약30명의 강하병이 선제폭격으로 이미 불타고 있는 마을의 맹렬한 불길속으로 곧장 
떨어져 버렸고, 마을의 중앙과장에 떨어진 병사들은 포석이 깔린 광장 한복판에 
나뒹구는 순간 달려온 독일군의 포로가되었다.
교회의 첨탑이나 가로수에 낙하산이 걸려 매달린 병사들은 그대로 독일군의 
사격연습 표적이 되어 버렸고, 그중에는 독일군의 막사로 쓰이고 있는 건물의 
앞마당에 떨어져 내린 병사도 여러 명이었다.
하지만 505연대 전체가 이처럼 처참한 운명을 맞은 것은 아니어서, 
'에드워드'중령이 이끄는 제3대대의 병력 108명은 곧잔 생메르에글리즈 읍내를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
모두들 단단히 일전을 벼르고 있었지만, 이 마을을 탈환하는 전투는 정작 싱겁게 
끝나 버렸다.
이곳을 지키고 있던 독일군은 이미 미군의 공수부대는 완전히 분쇄되었다고 믿고 
있던 뒤끝에 이런 기습을 받게 되자 재빠르게 퇴각해 버렸고, 생메르에글리즈는 
미군에 의해 해방된 최초의 프랑스 마을이 되었다.
동이 터오고 본격적인 상륙작전이 개시될 무렵까지도 82공수사단은 이 마을을 
단단히 틀어쥐고 있었고, 이로써 미군은 셀부르와 '카랑탕'반도를 잇는 주요한 
간선도로를 확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조직적인 전투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미군 공수부대원들은 
최초의 작전계획을 포기하고 제나름대로의 마구잡이식의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예정에도 없던 '게릴라 전술'이 뜻밖에도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워낙 넓은 지역에 걸쳐 미군 공수부대가 강하가 보고되었기 때문에 독일군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미군이 무엇을 목표로 강하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고, 
게다가 그 시간까지도 독일군의 지휘부는 연합군의 주공(主攻)은 파드깔레로 
향하고 있으며, 이 노르망디에 출몰한 연합군은 그것을 위장하기 위한 
견제행동이라는 최초의 판단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런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강하를 시작하기 전에 독일군을 혼란시키기 위하여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인형을 낙하산에 매달아 광범위하게 흩뿌려 버린 미군의 위장전술이 더욱더 이런 
혼란을 부추기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이런 인형 강하부대로 독일군의 관심을 끌어놓고 그 반대편에다 
'진짜' 공수부대를 강하시킬 예정이었지만, 이런 허수아비부대와 진짜 병력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마구 뒤섞여 떨어져 내렸기 때문에 독일군의 지휘부는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마구잡이식의 게릴라전이 올린 뜻밖의 전과는 이루셀 수도 없이 많지만, 6일 
아침부터 실시될 기동훈련시펌을 참관하기 위해 '랭스'로 갔다가 연합군의 
내습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자신의 부대로 복귀하던 독일 제91공수사단의 
'막스팔레이'사단장이 몇명의 미군 강하병들로부터 총격을 받고 전사해 버린 것과 
같은 사태는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이라고 할만했다.
작전이 예정대로 진행되었더라면 그 시간에 미군병사들이 그런 곳에서 얼쩡거리고 
있었을 턱도 없고, 그들이 명령도 없이 산길을 지나가는 독일군 장성의 승용차를 
마치 '산적처럼' 덮쳐버리는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101공수사단의 '해리슨 소머즈'하사는 열심히 귀뚜라미 장난감을 울려대며 숲속을 
헤대다 보니 문득 40여명의 병사가 자기를 뒤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닭았다.
502연대 1대대 소속의 일개 분대장이었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의 
정규편성의 1개 소대에 가까운 병력을 지휘하는 '소대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용기를 얻은 그는 내친 김에 눈앞의 '독일놈들이 숨어 있을 것 같아 보이는' 농가 
몇채를 공격해 보기로 했다.
그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공격개시를 명령하고는 자신이 먼저 용감하게 뛰쳐 
나갔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병사 몇명이 뒤따라 오고있는 것이 
보였다.
첫번째 농가의 문짝을 발로 걷어차며 뛰어든 그는 실내를 향해 들고 있던 BAR 
경기관총을 난사했고, 순식간에 4명의 독일군이 나둥굴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농가 한채한채를 훑어 나가며 그때마다 5~6명의 독일군을 
사살했다.
때로는 이런 어이없을만치 무모한 용기는 하늘의 보살핌을 받기라도 하는 
모양인지, 그가 다시 6명의 독일병을 사살한 네번째 집문앞에 도달할 때까지도 
소머즈 하사의 몸에는 긁힌 상처하나 없었다.
뒤따라 오던 병사들도 하나둘 덜어져 나가고 이름모를 일등병 한명만 이 소머즈의 
뒤를 따르고 있었고, 여기서 두사람의 의기가 순식간에 투합되었다.
소머즈가 BAR을 쏴대는 동안 카빈소통을 든 그 병사가 튀어 나가고, 다시 그가 
엄호하는 사이에 소머즈가 전진하는 방식으로 두 사람의 병사른 팀웍을 과시하며 
마을의 마지막 집 한채까지 훑어 나갔다.
그 마지막 집에서 두 사람은 다시 15명의 독일군을 사살했고, 이 한바탕의 할극이 
끝난 다음에야 비로소 두 병사는 악수를 나누며 서로를 소개했다.
소머즈 하사와 '존 카미양'일병은 불과 5분여에 걸친 이 전투에서 53명의 독일군을 
사살했고, 이 뛰어난 용기를 인정받아 장교로 임관되는 동시에 수훈십자 훈장을 
받게 된다.
게다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공격했던 건물은 유타해안의 해안포 진지에서 
근무하는 독일군 병사들의 숙소로 밝혀졌고, 이 포병대원들이 전멸함에 따라 이날 
아침 연합군 상륙부대를 노리고 있던 독일군의 포대 하나가 완전히 무용지물로 
전락하여 상륙이 시작될 때까지도 내내 침국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처럼 양개 미군 공수사단의 참담한 실패는 의외로 예상치 못했던 대성공을 
거두고 있었고, 온통 혼란에 가득찬 상륙개시 전야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놈들이 왔다!
이 사상최대의 작전을 앞둔 전야제의 밤에 전혀 갑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던 독일군 지휘부에서 이것이 바로 연합군의 대규모 진공작전이며, 그 목표가 
노르망디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닫게 있던 사람은 아마도 해안으로부터 32km 
정도 떨어진 '생로'의 제84군단장 '에릭 마크스'장군이었을 것이다.
밤 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장군은 처음으로 '대규모 적 공수부대의 내습'을 
보고받았고, 시간이 길수록 그 범위는 점점 넓어졌다.
최초의 적 발견 보고가 있었던 오르느강 기슭에 이어 다시 미군 공수부대가 
출혔했다고 하는 '코탕탱'반도의 위치를 지도상에 기입해 놓고 보니 장군은 갑자기 
눈앞의 안개가 싹 걷히는 기분이었다.
이 두지점의 중간은 바로 약 90km에 이르는 노르망디 해안이 아닌가?
무릇 공수부대란 항상 대규모 주력부대가 도착할때까지 일정거점을 확보하는 
선발대의 역할을 할 뿐이지, 그 자체로서 어떤 대규모 작전이 수행되는 경우는 
없다.
그러면 이것은 곧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작전이 시작된다는 명확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무릎을 탁치고 일어선 장군은 즉시 '바이유'서쪽에 있던 352보병사단에 1급 
전투태세를 취하라는 명령을 타전했다.
또 그는 전술 시범훈련을 참관하기 위해 랭스에 집결한 각 부대장들에게 즉시 
원대복귀를 명령하는 한편으로, 제7군 참모장 '막스 펨젤'장군에게 자신의 판단을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펨젤이 사령관 '돌만'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돌만이 빠리에 있는 
서부방면군 총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에게 이 말을 전한 것은 새벽 
2시15분경이었다. 원수는 방금 롬멜의 참모장 '한스시파이델' 장군으로부터 비슷흔 
내용을 알리는 전화를 받은 직후였기 때문에 이미 잠이 싹 달아나 있었다.
이 고지식하고 완고한 노장군은 침대에 걸터 앉은 채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것은 도박이다.
만일 이것이 적의 대규모 진공작전이라면 그들의 목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이 이 한파에 모든 것을 걸었다면 우리 역시 모든 것을 걸고 
이 일전에 정면으로 맞서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하들의 이런 판단이 적의 
기만작전에 말려들고 있는 것이라면...?

어찌되었던 무언가 손을 쓰긴 써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원수가 베를린의 총통 
대본영으로 전화를 건 것은 2시55분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은 총통 부관실 당직 장교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총통께서는 수면제를 드시고 막 잠자리에 드셨습니다. 적의 대규모 
진공작전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질때까지 깨우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원수는 수화기를 내려 놓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히틀러는 원래 새벽 3~4시에나 잠자리에 들었다가 이튿날 오전 10시가 넘어야 
일어나는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그가 특히 최근에 와서는 각 전선에서 이어지고 있는 패전소식에 눈에 띄게 
발광증적(發狂症的)인 증상을 보여왔고, 그로 인해 수면제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왠만한 측근들이 모두다 알고있는 사싰이다.
그런 히틀러를 깨워 이 사실을 보고했다가 만일 그것이 틀린 정보이기라도 한다면 
그 뒷감당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거니와, 무어보다도 룬트슈테트 원수가 
걱정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이처럼 신경이 불안정한 총통이 선잠에서 깨어나 
'최악의 결단'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4시30분, 마침내 원수가 결단을 내렸다.
"간밤에 계속된 적의 공정작전은 대규모 상륙작전의 징후임에 분명하다."
원수는 이 서부전선에 배치된 최고의 두 정예사단 - 제12SS기갑사단과 '히틀러 
유겐트' 장갑교도사단 - 에 급히 노르망디로 급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룬트슈테트 원수의 이 명령은 실행되지 않았다. 서부전선의 
유일한 전략 예비군으로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히틀러의 명령이 아니면 출동할 수 
없다는 지령을 받고있던 두 사단장은 룬트슈테트의 명령을 받자 즉시 출동하는 
대신 베를린의 총통 대본영에다 출동허가를 요청했고, 총통과 그의 문사 
통수부장인 '알프레드 요들' 상급대장이 잠자리에서 깨어날 때까지 이 촌각을 
다투는 전문은 두 사람의 비서실 책상위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이다.
6월6일 6시30분.
마침내 오들 장군이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룬터슈테트가 자신이나 총통의 허가도 없이 2개 기갑사단에 출동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에 노발대발했고, 전선의 독일군 지휘관들이 밤새도록 격론을 
벌여왔던 그 내용을 뒤늦게야 다시한번 더 반복했다.
"노르망디의 공수부대는 파드깔레로 향하는 주공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인지도 
모른다. 좀더 시간을 가지고 지켜보기로 하자."
그 시간은 이미 최초의 미군 상륙부대가 '오마하' 해안의 모래밭에 첫발을 내믿고 
있는 순간이었지만, 독일군의 수뇌부는 그 금쪽같은 시간을 이처럼 무의미하게 
흘려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룬트슈테트 원수의 작전참모 '짐머만'장군은 훗날 이런 사태를 가리켜 "우리는 
가장 중요한 하룻밤을 고스란히 잃어 버렸고, 그로 인해 노르망디의 싸움은 그 
시작부터 이미 패배하고 있었다."고 탄식했다.
독일군 지희ㅣ부가 그만큼 우유부단했다거나, 독일군 병사들이 그만큼 무능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보다도 차라리 연합군의 기만작전이 그만큼 주도면밀하고 완벽했을 뿐 아니라, 
거듭된 패배로 인해 독일군의 정보전달 체계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던 좋은 
증거라고 하는 펀이 더욱 정확한 평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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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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