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3월26일(목) 13시27분52초 ROK 제 목(Title): 밤의 어둠속으로 30 - (4) 이 하늘을 가득 메운 항공기의 대군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은 것은 대열의 맨 선두에 위치한 영국 제6공수사단 소속의 '패스파인더' 대원들이었다. 가장 먼저 적진에 강화하여 착륙거점을 확보한 다음 전자식 발신기와 조명장치를 이용하여 후속 글라이더와 낙하산으로 강하하는 동료들을 유도해야 하는 이들 패스파인더들은 통상적인 강하병의 장비 이외에는 30kg에 가까운 유도 장비들을 추가로 휴대하고 있었다. 6대의 수송기에는 저마다 '웨이코'형 글라이더 한대씩이 매달려 있고, 그 안에는 이 오버로드 작전에서 최초의 전투임무를 담당할 '옥스퍼드셔 앤드 버킹검셔' 라이플 연대에서 배속된 강하병들과 공병들이 타고 있다. 통칭 '옥스 앤 벅스'라 불리우는 이들의 임무는 '오르느'강과 '캉' 운하에 걸린 다리를 확보함으로써 해안으로 증파되는 독일군 장갑부대의 발목을 잡는 것이었다. 가끔씩 굵은 빗방울이 수송기의 조종석 창문을 때렸고, 검은 먹구름이 빠꼼하게 열려있는 곳을 지날때는 도버해협의 검은 밤바다를 조용히 헤쳐 나가고 있는 상륙부대의 선단이 만들어내는 하얀 향적이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들은 저들보다 3시간정도 먼저 프랑스에 도착함으로써 유럽대륙에 가장 먼저 발을 디뎌놓는 연합군 병사가 될 참이었지만, 할 수만 있다면 그 영광(?)을 사양하고 싶다는 생각을 안해본 강하병은 아마 별로 없었으리라. 야광시계의 바늘이 자정을 가리켰을때, 그들은 발 아래에서 희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프랑스의 해안과 그곳과 연결되어 있는 두줄기의 반짝이는 물줄기를 발견했다. 오르느강과 캉 운하였다! 0시 18분, 패스파인더들을 실은 6대의 수송기가 오르느강 동쪽 기슭의 목표지점 상공에 도착하자 최초의 패스파인더 병이 주저없이 캄캄한 밤하늘을 향해 도약했다. 그와 동시에 '옥시 앤 벅스'들이 타고있는 글리이더의 조종사는 수송기와 연결된 견인로프를 이탈시킨 다음 기수를 위쪽으로 들어 올렸다. 이런 자세는 글라이더가 최대한 천천히 낙하하며 착지의 충격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빠른 속도와 수송기의 프로펠러가 만들어내는 후류에 덜덜 떨리는 진동에 세시간 가까이 익숙해져 있던 글러이더 강하병들에게 있어서 이 무동력(無動力) 활강의 짧은 순간은 숨막히는 긴장의 연속인 동시에 기묘한 희열을 안겨주는 꿈결같은 비상(飛上)이다. 고도 900m에서 조종사가 기수를 낮추자 대지가 빠른 속도로 밀려 올라오며, 들판과 나무가 시속 140km의 속도로 발밑을 스쳐 지나갔다. "착지~이" 조종사의 긴 외침에 병사들은 양손을 깍지끼고 뒤통수에 갖다 붙인다음 상체를 납작 숙였다. 마침내 '쿵'하는 충격이 오고, 나뭇가지가 글라이더의 동체를 훑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요란하게 떨리던 기체의 진동이 딱 멈추었다. 드디어 프랑스 땅에 내려 앉는데 성공한 그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장비를 챙겨들고 글라이더의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갔다. 맨 선두에 서있던 '존 하워드'중령이 내지르는 구호가 심야의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탤리 호우~" 놈들이 왔다! 그것은 정말 믿기 힘든, 기적이 가까운 일이었다. 이 유럽진공 작전에 나서는 연합군 최초의 부대 - 글라이더 - 가 오르느강 기슭에 내려앉던 그 시각까지도 독일군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철저한 보안조치가 행해졌다고는 하지만, 18만명의 병력을 태운 5,000척의 함대가 도버해협을 완전히 뒤덮고 2,000여대의 비행기가 2만의 공수부대를 실어 나르는 북새통으로 인해 남부 잉글랜드의 주민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나 웅성거리고 있는 그 시간에도 독일군은 깊은 잠속에 빠져 있었다. 연합군의 입장에서 볼때 이 믿기지 않은 행운을 가져다 준 것은 바로 날씨였다. 그렇게도 진공부대의 애간장을 졸이게 했던 세찬 비바람과 구름, 그리고 파도는 역설적으로 '대서양 장벽'에 배치되어 있던 독일군 58개 사당병력의 긴장을 풀어 놓았던 것이다. 6월5일 저녁부터 급속하게 악화된 날씨로 인해 해상에는 산더미 같은 파도가 몰아치고 있었고, 안개비로 인해 시계조차 지극히 불량했다. 이런 밤에는 상륙작전은 커녕 통상적인 공습까지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가봐도 자명했고, 벌써 수개월째 롬멜과 룬트슈테트가 옥신각신해 오던 파드깔레냐, 노르망디냐 하는 논쟁조차 의미가 없었다. '셀부르'에 있는 독일 해군의 도버해역 사령관 '발터 헤네케' 제독은 매일밤 해오던 통상적인 어뢰정에 의한 해상순찰마저 중시시켰고, '르망'에 있는 독일 제7군 사령관 '프리드리히 돌만' 상급대장은 기상 관측부대의 보고에 의하여 오늘밤 연합군이 내습해 오지 않는다면 그 다음의 적당한 기회는 수주일 뒤에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마 돌만대장은 부지런하고 모범적인 군인이었으므로 이처럼 '안전한' 시기에도 두손을 얌전히 접고 있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했던지, 휘하의 사단장과 연대장들에게 6월6일 오전 10시부터 '랭스'에서 벌어질 전술훈련 시범행사에 참가하라고 지시를 내려 놓고 있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공수부대가 선도하는 적의 대규모 상륙작전을 분쇄하는 요령'이라는 주제가 정해진 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주요 지휘관들이 모두 자리를 비워버린 독일군의 각 부대에서는 긴장이 풀린 병사들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적의 대군에 의한 진공작전은 커녕 30분도 바깥에 서있기 힘든, 이런 비바람이 치는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 그리고 진작부터 연합군이 이 노르망디를 목표로 상륙해 올 것이라고 주장을 계속해 오고 있던 독일B 집단군 사령관 롬멜원수도 이날 밤만큼은 다른 독일군 장병들과 크게다를 것이 없었다. 그날 아침 빠리근교 '라로스 기용'에 설치된 사령부를 떠난 그는 독일 '헤링겐'의 자택을 향해 달리는 자동차 안에 몸을 싣고 있었다. 그 이튿날인 6월6일은 아내 '루시'의 생일이었고, 그는 아내의 생일을 함께 축하한 다음 '베르히스 가르텐'의 총통 대본영으로 가서 히틀러늘 만나 2개사단의 장갑부대를 자신의 휘하에 넣어 달라고 요청해 볼 생각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이 '대서양 방벽'을 철옹성으로 바꾸어 놓으라는 것이었고, 그 공사가 대충 끝나가는 지금에 와서 그의 입장은 매우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이 되어 있었다. 엄연히 룬테슈테트 원수라는 서부 방면군 총사령관이 버티고 있는 지역에 그는 난데없이 떨어져 내린 또 한명의 원수였고, 히틀러는 서부 방면군의 7개사단중 3개사단을 쪼개내어 'B집단군 사령관이라는 어정쩡한 직책을만들어내어 그 자리에 롬멜을 앉힘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롬멜은 누가 무어래도 기갑부대 운용의 천재다. 연합군의 상륙이 시작되면 그들을 일찌감치 해안에서 격멸하는 것이 최선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전차와 같은 기계화 부대가 필수적이란게 롬멜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서유럽에 배치된 모든 기갑부대는 서방 장갑 집단군 사령관 '폰 시베펜부르크'장군의 휘하에 속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움켜쥔채 좀체 내놓으려고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만 있으면..." 롬멜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연합군을 모두 해안에서 바닷속으로 되쓸어 넣을 수 있겠지." 자동차가 집이 있는 다뉴브 강변에 들어섰으므로 장군은 더없이 편안한 기분이 되어 뒷자석의 시트에 깊숙히 몸을 묻었다. 하지만 이 사상최대의 작전이 개시되던 날 밤에 모든 독일군이 이처럼 손을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았다. 수일전부터 빠리에 본부를 둔 독일 서부 방면군 사령부의 장보장교들은 프랑스 레지스탕스 조직안에 침투해 있는 이중첩자로부터 올라온 모종의 '의심쩍은' 정보 한건을 분석하고 있었다. 레지스탕스들이 연합군 첩보부와 연계되어 그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D데이에 발맞추어 레지스탕스의 선동가들이 대대적인 반독(反獨)봉기를 일으키도록 되어 있으며, 영국 BBC 방송이 흘려 보내는 '폴 베를레느'의 시낭송이 그 봉기의 개시신호가 될 것이라는 첩자의 보고는 꽤 신빙성이 있어 보였으므로, 그들은 통신센터에 지령을 내려 BBC의 프랑스어 방송을 하나도 남김없이 녹음시키고 있었다. 진공작전 개시일이 결정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하는 그 시의 제1행은 이미 지난 6월1일에 청취되었고, 그 개시시간이 48시간 이내로 다가왔음을 뜻하는 제2행이 그날 아침 9시경에 수신되었으므로 이 정보장교들은 잔뜩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마침내 결단을 내린 '헤르만 아이케' 소령은 이 정보분석 보고서를 베를린의 총통 대본영을 비롯하여 빠리에 있는 서부 방면군 사령부등의 상급부대로 타전했다. '해당 정보를 분석한 결과 오늘밤 적의 대 진공작전이 개시될 징후가 농후함. 특별경계 및 모종의 비상조치가 요망된다고 판단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총통 대본영을 비롯하여 서부 방면군 사령부, 롬멜의 B집단군 사령부에서조차 이 정확한 경고는 간단히 무시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날밤 해안 경비초소를 지키고 있던 초병들에게조차 한마디 경고의 언질도 내려가지 않은 이런 사태의 궁극적인 책임은 서부 방변군 사령관 룬트슈테트 원수에게 그 직접적인 책임이 있었다. 정보부의 보고서를 다 읽고 난 이 노장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악천후의 밤에는 군신 '마르스'조차도 깃털 이불속에서 잠이나 자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정신나간 소리를 하는 바보녀석이 대체 누구야?" 룬트슈테트 원수의 이런 판단은 나무랄 수 없었다. 최소한 상식적으로 생각할때 그것은 정확한 지적이었고, 또 정보부는 지난 몇달간 이와 비슷한 보고를 수차례 보내온 적이 있으며 그것은 번번히 빗나갔다는 사실이 원수의 이런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굳혀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해안지대의 도시에다 폭탄을 쏟아붓기 시작할 때 까지도 그것이 그토록 우려하던 연합군의 대대적인 유럽본토 상륙작전의 전주곡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