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steau (언젠간학생맧) 날 짜 (Date): 1998년02월24일(화) 10시09분46초 ROK 제 목(Title): 은빛의 작은 친구들 - 28 (5) '독일군 죽이기' 토너먼트 나쁜 일기가 계속되는 서유럽의 겨울도 끝는 1944년 3월부터 미군 폭격기들은 베를린을 향해 출격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는 보조연료 탱크의 장착으로 마침내 독일본토 왕복이 가능해진 P-47 썬더볼트 전투기들도 합세했고, 폭격기보다도 더 많은 수의 전투기가 동원되는 경우가 늘어나자 독일군은 미군과의 교전을 회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설사 한번의 전투에서 양측이 비슷한 숫자의 항공기를 상실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미국에게는 전체 출격기수의 10%를 넘는 경우가 드문데 비해서, 동원 가능한 항공기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 독일군에게 있어서는 거의 회복불능의 심각한 타격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교전기회가 줄어들자 폭격기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변해갔다. 즉, 폭격기는 전략폭격이라는 임무 그 자체보다도 독일 전투기들을 싸움터로 유인해 내는 후림새로서의 역할이 더 커졌고, 싸음은 완전히 전투기들이 가로 맡아 버린 것이다. 독일군 역시 가까운 시일내에 연합군의 유럽본토 상륙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날을 대비하여 최소한의 항공전력이나마 온존시켜 놓을 필요가 절실했다. 이처럼 독일군이 싸움을 피하기 시작하자 이제 막 '공중전에 맛을 들인' 미군 전투기 조종사들은 그야말로 싸우지 못해 안달이난 사람들 같았다. 어쩌다가 소수의 불운한 독일 전투기들을 만나게 되는 날이면 그것은 전투가 아니라 숫제 미군 조종사들의 개인 격추기록을 위한 스포츠 경기가 벌어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전투 조종사는 오직 적기가 검은 연기를 끌며 지상으로 곤두박질 치는 그 순간을 위해 존재한다. 이상하게도 그것이 살인행위라는 죄책감 따위는 전혀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쾌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을 위해 용변도 볼 수 없고 물 한방울을 마실 수 없는 고통스런 7시간의 비행을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로드아일랜드 출신의 에이스 '존고드프리'중위의 증언은 계속된다. "교전 기회가 점점 더 줄어들자 동료의 전공을 가로채는 얌체들도 늘어갔다. 적기의 꼬리를 잡고 완벽한 사격 타이밍을 맞이했을 때, 갑자기 헤드폰을 통해서 '블리크'라는 함성이 들려온다. 이것은 내 등뒤에 적기가 붙었음을 알려주는 경고신호다. 그 말을 믿고 기수를 급강하시켜 대피동작으로 전환하면 어느새 그 사기를 쳤던 동료가 튀어 나오면서 내가 노렸던 목표물을 가로채 버리곤 했다." 이런 '독일기 사냥 토너먼트'경기는 소속이 다는 전투기 연대 사이에서 특히 치열했는데, 그중에서도 '돈 블레이크슬리'대령이 이끄는 제4전투기 연대의 무스탕과 '허버트 젬케'대령의 제56연대 소속 썬더볼트들이 벌이는 치열한 격추경쟁은 마침내 본국에 있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귀에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대통령은 가끔씩 보좌관에게 흡사 프로 야구팀의 전적을 예기하는 것처럼 '어제는 어느 팀이 이겼지?" 하고 묻곤 했던 것이다. 1944년 3월말, 베를린 공습이 종결되었을때 제4연대의 무스탕들이 총수 1016대의 독일기를 격추시킴으로써 아슬아슬한 스코어로 썬더볼트 부대를 눌렀다. 하지만 '로버트 존슨', '프랜시스 가프레스키'등, 격추기록이 20대가 넘는 슈퍼 에이스들은 썬더볼트 부대가 더 많이 가지고 있었고, 이 두 연대는 줄곧 이런 전과경쟁을 통해 제8공군 전체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4월 초순에 들어오면서 독일상공에서 적기를 구경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져 갔고, '상륙작전 개시전까지는 단 한대의 적기도 남김없이 섬멸하라'는 아이젠하워 장국의 추상같은 명령을 방게 있던 제8공군은 전술을 바꿨다. 이제 하늘만이 아니라 독일공군의 비행장 격납고 속이나 숲속, 그리고 시골농가의 헛간속에 이르기까지 꽁꽁 숨겨진 독일 전투기를 찾아내어 지상에서 섬멸한다는 것이다. '적기에 굶주린' 무스탕과 썬더볼트, 그리고 라이트닝 전투기들이 이 희대의 숨박꼭질을 시작했지만, 이 새로운 임무가 공중전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다는 사실이 곧 밝혀졌다. 적 비행장 상공을 초저공으로 비행하던 많은 전투기들이 지상에서 발사된 기총사격에 희생되었고, 그중에는 적기를 28대느 격추시킨 프랜시스 가브레스키 중령과 제56전투기연대장 젬케 대령 자신, 고드프리 중위같은 쟁쟁한 에이스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독일 전투기는 다 어디로 갔는가 "마침내 우리 공군의 전면적인 붕괴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1944년 4월말, 괴링에게 보내는 아돌프 갈란트 전투항공단 총감의 보고서는 이렇게 서두를 열고 있다. 이무럽 독일 공군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전투기 그 자체보다도 조종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무렵 독일의 전투기 생산은 오히려 개전이래 최고수준에 달해 있었다. 공준전의 전세를 일거에 뒤바꾸어 놓기게 충분한 세계 최초의 제트전투기 Me262를 폭격기로 사용하라는 명령을 내릴만큼 폭격기의 생산에 강한 집착을 보이던 히틀러도 이미 공군 그 자체에 흥미를 잃어 버린 듯 더 이상 별다른 간섭이 없었고, 천재적인 제국 군수장과 '알베르트 쉬페어'가 직접 진두지휘에 나선 전투기의 생산은 그 어느 때보다 기록적인 생산성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종할 사람이 없는 전투기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다. 독일 공군의 이런 조종사 부죽은 워낙 많은 조종사들이 유럽고 러시아 전선에서 희생된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들이 안고 있던 피치못할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애초에 1차대전의 패전이래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공군을 가질 수 없었던 그들은 전승국들의 감시를 피해 민간 비행클럽을 가장흔 '독일 항공혔회'나 청소년 글라이러 클럽'등을 통해 비밀리에 조종사를 육성해야만 했다. 1934년 재군비를 선언한 이후에도 개전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고, 그 결과 독일공군은 단 하나의 조종사 훈련소를 가진 채로 전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후 유럽과 아프리카, 러시아까지 전선이 확대되고 조종사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후보생들의 비행훈련시간은 점점 더 짧아졌지만, 단 하나뿐인 훈련소가 배출해낼 수 있는 인원에는 한계가 있었다. 독일 공군의 초대 참초총잔 '우데트'장군은 자신들이 안고있는 이런 문제점을 일찌감치부터 예견하고 "가까운 시일안에 독일공군에서 가장 부족한 자원은 인간의 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원체 부족했던 조종사는 급박한 전선의 수요를 대기에도 모자랐고, 조금이라고 경험이 쌓인 조종사들은 모조리 일선으로 투입되었다. 그 결과 일선 비행대에서는 격추기록이 100대를 훌쩍 뛰어넘는 초인적이 에이스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후방에서는 우수한 교관 부족사태가 만성적으로 이어졌고, 그들이 안고있던 이런 구조적인 모순이 마침내 1944년을 기점으로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독일공군의 조종사 후보생들은 불과 112시간의 비행훈련을 받고 일선부대로 투입되고 있었는데, 이것은 미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1940년에 영국본토 항공전이 벌어졌을때 영국공군도 이와 똑같은 위기를 맞은 적이 있기는 했다 - 그 당시에는 실제로 비행시간 10시간짜리, 20시간짜리 신임 조종사들이 숱했고, 이들은 단지 첫 출격에서 죽든가 아니면 두번째 추격에서부터는 이미 공중전의 '달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두가지 운명중에서 하나를 택일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내몰렸던 것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그 절대절명의 고비를 훌륭하게 넘겼다. 많은 햇병아리 조종사들이 도버해협의 바닷속이나 남부 잉글랜드 상공에서 피를 뿌리며 죽어갔지만, 그보다 더많은 젊은이들이 평소보다 수십배나 빠른 속도로 늠름한 하늘의 전사로 성장해 갔던 것이다. 하지만 독일 공군은 그렇지 못했다 -도무지 끝도 보이지 않을만큼 무진장으로 보충되어 오고있는 미군의 물량공세 앞에서 독일군의 햇병아리 조종사들은 미처 날개를 펴보기도 전에 무더기로 죽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1940년의 영국과 1944년의 독일은 그만큼 상황이 달랐던 것이고, 이런 차이가 벌어진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참전에 있었던 것이다. 이미 '오버로드:OVER LOAD'라는 작전명칭까지 정해진 노르망디 상륙이 초읽기에 들어간 1944년 4월말, 더이상 싸울 상대가 없어져 버린 미국 제8공군과 영국공군의 항공기들에게 새로운 명령이 전달되었다. 영국인 과학자 '졸리 루커챈'의 건의에 따라 실시된 이 새로운 임무는 독일 점령지 프랑스와 독일본토의 철도와 철도역, 주요 간선도로와 교량등을 파괴하라는 것으로, 그 의도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노르망디에 연합군이 상륙했을때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달려올 독일군의 수송수단을 철저히 두들겨 부숨으로써, 그 곳을 '교통의 사막'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임구는 그 동안의 공중전과 적 비행장의 저공 공습같은 위험한 임무에 비한다면 실로 한가로운 소풍이나 다름없을만큼 수월한 것이었다. 가끔씩 프랑스의 시골길을 달리던 독일군 트럭이나 전차는 하늘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던 연합군 조종사들의 장난삼아 벌이는 '맥주내기 시합'의 표적이 되었고, 이 전투기들은 이제 '야보:Jabo'라는 이름으로 독일 지상군에게도 공포의 사신으로 인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중에도 운명의 그날 - 1944년 6월 6일 - 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 G o n g m u d o h a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G o n g k y u n g d o h a 公竟渡河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T a h a i e s a 陸河而死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D a n g t a e g o n g h a 當泰公河 公無渡河 公竟渡河 陸河而死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