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gasi (단물총각) 날 짜 (Date): 1998년02월22일(일) 22시26분02초 ROK 제 목(Title): [태평양전쟁] 레이테섬으로의 진공.. 9월초, 연합참모 본부는 민다나오섬 진공을 11월 5일로 결정하고 이어서 12월 20일에는 레이테섬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민다나오섬은 레이테섬에 대한 도약대로 여겨졌고 레이테섬은 대만이든 루손이든 다음 차례의 대공세를 위한 안성마춤의 기지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 논쟁은 9월의 둘째 주에 발생한 우발사건에의해 최종적인 결론이 내려졌 다. 이때 니미츠 제독 지휘하의 제3함대 사령관 윌리엄 F. "불" 할제이 제독 이 민다나오섬 동방 900km 지점에 있는 팔라오 제도 점령을 위한 준비작전 으로서 필리핀제도에 일련의 공습을 감행했다. 제3함대의 제38기동부대 사 령관 마크 미쳐 해군중장이 이 공격을 맡앗는데 그의 고속항모군에서 출격 한 비행기는 민다나오섬 및 필리핀 제도 중앙부의 일본군 비행장과 해군기 지를 맹폭했다. 돌아온 비행사의 보고에 의하면 478대의 비행기를 대부분 지상에서 파괴하고 59척의 함선을 침몰시켰다는 것이었다. 반격은 거의 없 었다. 할제이제독에게 있어 이것은 "믿기 어려운 꿈과 같은" 전과로 생각되었다. 그는 대번에 필리핀에서의 일본군은 "수비도 약하고 설비도 허술한 겉모양 뿐" 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진공작전을 앞당길수 있다고 확신하여 그 조기 실현을 제안했다. 후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이러한 상신은 내 임무에서는 벗 어나는 것이었고 루즈벨트씨나 처칠씨에 이르기까지의 많은 사람들이 세운 계획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 그것은 근거있 는 제안이라고 생각되었고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할 것이라고 여겨졌으며 전 쟁을 몇 달쯤 빨리 끝나게 할는지도 몰랐다....나는 막료를 불러 그들에게 말 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해 볼 생각이다' 라고.." 그리고서는 할제이는 니미츠 에게 타전하여 민다나오섬과 그밖의 섬에 대한 진공을 중지하고 즉시 레이 테섬을 공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레이테섬은 "무방비"라고 할제이는 말했 다. 니미츠는 할제이의 제안을 대충 승인하여 이를 워싱톤과 때마침 연합본부장 들이 루즈벨트 및 처칠과 협의를 벌이고 있었던 퀴벡에 전달했다. 그날중에 맥아더의 의견이 타전되었는데 다음날 저녁 회식중에 맥아더의 승인이 퀴벡 에 도착했다. 연합본부장들은 회식의 자리에서 떠나 90분뒤에 맥아더와 니 미츠 앞으로 새 명령을 발신했다. 민다나오섬 진공과 그것을 위한 태반의 준비작전이 중지되고 레이테섬 진공이 두달 앞당겨져 10월20일에 실시되게 되엇다. 할제이의 3함대가 미처의 항모를 가지고 이 공격을 엄호하여 민다 나오의 기지에서 하게 될 항공지원의 부족을 보충하게 되었다. 이렇듯 시간표가 앞당겨 짐으로써 대만은 레이테섬 작전의 다음에 올 목표 는 아니게 되었고 그 거리는 진공을 위해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릴 것이었 다. 맥아더는 새로운 예정표에 따르면 자기는 대만의 어디에 상륙하는 것보 다 두달 빨리 적어도 연말까지는 루손섬에 진공할수 있다고 연합참모본부에 약속하여 문제를 결말지엇다. 10월3일 연합참모본부는 이것을 정식으로 결 정했다. 레이테섬 작전 다음에는 루손섬에 진공한다는 것이었다. @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in time......like tears in the rain.... Time to d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