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gasi (율액 ) 날 짜 (Date): 1998년01월14일(수) 17시15분13초 ROK 제 목(Title): [태평양전쟁] 진주만의 복수-미드웨이 [진주만의 복수 - 미드웨이] 한편, 나구모제독의 함대로부터 수백해리 떨어진 초대형 전함 야마또의 함 상에 있던 야마모또는 그의 대작전이 허무하게 무너졌음을 알았다. 낮 조금 지나 나구모의 4척의 항모중 3척이 불타고 있는 중임을 알게되자 그는 주력 부대를 재편성하여 형세 만회를 위한 최후의 안간힘을 썼다. 연달아서 명령이 떨어졌다. "미드웨이 공략부대는 수송선단을 일시 북서로 퇴각시키라." "공략부대는 일부 병력으로써 오늘밤 되도록 미드웨이 육상항 공기지 활주로를 포격하라.""알류션열도 공격부대는 신속히 합류하라." 그러 나 그것은 너무나도 때가 늦은 것이었다. 북방부대가 도착하려면 적어도 만 하루가 걸린다. 공략부대의 전함이 6월5일 3시 전에 미드웨이를 사정내로 하는 지점에 들어가기는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고 또 일단 태양이 떠오르고 나면 미군기가 다시 야마모또의 함선을 습격할 것이다. 마침내 야마모또는 패배라는 현실에 직면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6월5일 오 전 2시55분, 그는 함대에게 서방 수백해리 떨어진 자기에게로 모두를 합류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라고 그가 은밀히 속삭이 는 것이 들렸다. 그는 전함대로 보내는 통신의 첫머리에서 "미드웨이 공략을 중지한다"라고 적었다. 적과의 접촉은 이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엇다. 6월5일 이른아침, 미국 잠수함 템버는 퇴각하는 일본 군함군을 발견했고 동시에 상대방한테도 발견되었다. 일본군이 회피행동을 일으켰을 때 순양함 모가미와 미구마가 충돌했다. 다 음날 스프루앤스의 공격기는 손상입은 두 군함을 발견하여 미구마를 격침시 키고 모가미에게는 그후 1년간 작전행동을 할수없을정도의 피해를 입혔다. 같은날 일본군은 요크타운이 구축함 해먼에게 예인되고 있는 것을 포착했 다. 잠수함이 해먼을 격침시키고 요크타운에게 어뢰를 명중시켰다. 다음날 아침 요크타운은 가라앉았다. 어떤 기록에 의하면 "그 모습은 마치 더 이상 고통을 느낄수 없을만큼 상처를 입은 지칠대로 지친 거상(巨像) 같았다."고 한다. 알류션에서는 6월6일 일본해군 육전대가 상륙을 시도하였으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다. 상륙한 육전부대는 1943년 중반에 미군이 마침내 진격 하여 그들을 몰아낼 때까지 고립무원의 쓸모없는 전진기지를 고수하였던 것 이다. 미드웨이에서 미군의 대승리는 그후 오랫동안 일반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해군은 이 전투의 타격에서 회복하지를 못했다. 야마모또는 두 번 다시 공세를 취하지 못했다. 일본군으로서도 중국 이외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점 령지를 획득할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지금까지 획득한 것을 잃지 않도록 절망적인 방어체계를 굳히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안되었 다. 심히 낙담하고 패배를 부끄러워하면서 야마모또는 6월7일에 함대를 본 국으로 귀환시켰다. 그는 미래의 예측쯤은 할수있었으나 현재야말로 그에게 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의 불운으로 끝난 이 모험에서 잃은 것들은 항모 4 척, 순양함 1척, 비행기 322대 및 3500명의 전투원의 생명이었고 그중에는 100명의 제1급 조종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미군의 손실은 항모 1척, 구 축함 1척, 비행기 150대, 전사 307명으로서 그보다는 적었다. 일본국민은 그들이 당한 이 참패에 대해 아무것도 알수가 없었다. 다만 알 류션 열도에 있어서의 상륙이 군함행진곡과 함께 보도되었을 뿐이다. 미드 웨이 작전에서 부상한 병사의 귀환은 비밀에 붙여졌다. 그들 속에 후찌다 중령이 있었다. 중령은 불과 6개월전, 진주만 기습의 영웅으로서 국민의 갈 채를 받았고 또한 그들의 신망을 한몸에 얻었던 공격대의 총지휘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아까기 함상에서 입은 복사뼈의 부상 때문에 후찌다는 병원선 으로 옮겨졌다. 요꼬스까 해군기지에 입항했을때를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밤이 어두워져서 사람의 왕래가 끊길때까지 해안에 억류되어 있었다. 그리고 덮개를 씌운 들것에 실려 뒷문을 통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내 병실 은 완전히 고립화되어 간호원도 위생병도 입실이 금지되었고 나는 외부와의 연락을 일체 차단당했다. 그것은 마치 자국민 속에 있는 포로와도 같았다." 몇몇 일본인 고관에게는 비밀리에 미드웨이에 관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 가 운데 한 사람에 훗날의 외상 시게미쯔 마모루가 있었다. 시게미쯔는 간결하 게 이 싸움에 관한 진실을 훗날의 그의 수기에다 "미군은 미드웨이에서 마 침내 진주만의 원수를 갚았다."라고 적었다. @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in time......like tears in the rain.... Time to d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