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gasi (율액 ) 날 짜 (Date): 1998년01월14일(수) 00시10분36초 ROK 제 목(Title): [태평양전쟁] 미드웨이 해전 (3) [제독 야마모또 이로소꾸가 세운 공격계획]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또제독이 태평양의 북에서 남에 걸쳐 세운 전투계 획은 진주만 공격에 사용한 것보다 훨씬 큰 함대를 필요로 했다. 즉 항모 8 척, 전함 11척, 순양함 22척, 구축함 62척, 수상기 모함 3척, 수송선 16척, 유 조선 9척등 외에도 잠수함을 포함한 다수의 함선과 병력을 필요로 했고 동 원되는 항공기도 약 1000대에 달했다. 이 대함대를 전개하는데에는 야마모또가 특히 좋아한 복잡한 계획이 필요했 다. 먼저 잠수함이 하와이와 미드웨이 간에 감시선을 형성하여 진주만에서 서방으로 진출하는 적 함선을 정찰한다. 다음에 북방부대가 견제적으로 알 류션열도 더치하버 미군기지를 공습하고 열도 서쪽에 있는 키스카, 애투 두 섬을 기습 점령한다. 미군이 이 알류션 열도에 정신을 팔고 있는 동안에 기 동부대가 미드웨이 수비진을 분쇄하고 약 5800명의 지상군을 상륙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태평양함대가 구원을 위해 진주만에서 나왔을 때 수백해 리 떨어진 해역에 숨어 있던 야마모또의 주력부대는 이미 미드웨이 근해에 있는 함대와 합류하여 미군을 격멸한다는 것이다. 야마모또가 타고있던 세 계 최대의 전함인 6만4000t의 야마또는 46cm대포의 편현제사로 40km도 넘 는 거리까지 13t의 탄환을 날릴수 있었다. 5월이 끝나갈 무렵 야마모또는 자신만만하게 함대를 출동시켰다. 승산은 있 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항모는 일본의 8척에 대해 3척이었다. 또 순양 함은 일본 20척에 대해 8척, 구축함은 일본 60척에 대해 14척, 잠수함만이 약간 우위에 있어 일본 15척에 대해 19척이었다. 미국의 전함은 6척이 진주 만에 남아 있었으나 모두 손상이 심해서 사용불능이었다. 또 미드웨이에는 미군 항공기는 불과 60대밖에 없었으므로 야마모또의 650대에는 대항할 수 가 없었다. 비행사의 대부분도 실전경험이 없었다. 그러나 야마모또가 모르는 일도 많았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미군병사가 믿고 있었던 만큼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공격군은 해군기지의 수리시설과 450만 배럴의 석유를 저장하고 있는 석유탱크를 놓치고 말았다. 만일 이러 한 시설과 공급원이 파괴 되었다면 태평양함대는 본국의 서해안으로 철스하 지 않으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항모는 1척도 상실하고 있지 않았다. 야마모또는 또하나 중요한 점에서 오산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입수한 적의 항모에 대한 최신정보는 요크타운과 렉싱턴이 모두 침몰했다는 오보(실제는 렉싱턴만이 침몰)가 있었다. 다른 2척의 미국항모 호니트와 엔터프라이즈도 일본 정보부에 의하면 미드웨이에서 멀리 떨어진 솔모몬제도 부근에서 작전 중이었다. 야마모또가 알고 있던 범위에서는 일본항모에 대항할수 있는 적의 항모는 1 척도 없는 셈이었다. 그의 함대는 10개부대로 분산하고 각 부대간의 거리는 멀리 떨어졌다. 이래서야 설사 수적으로 열세한 적을 상대한다 하더라도 공 격을 받기가 쉽고 특히 사전에 그 행동상황을 알고 있는 적에 대해서는 더 욱 그랬다. [미드웨이 방어선 구축] 5월 26일 야마모또가 남태평양에 있다고 확신한 호니트와 엔터프라이즈는 제16기동부대의 나머지 함대와 함께 진주만으로 향해 수평선상에 나타났다. 니미츠로부터 시급히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27일에는 손 상을 입은 요크타운이 해면 10여km에 걸펴 기름자국을 끌면서 제17기동부 대의 선두에서 천천히 전진해왔다. 요크타운 함장은 이배를 완전 복구시키 는데에는 약 90일이 걸리리라 예상했으나 니미츠가 불과 72시간밖에 허용하 지 않았다. 한편 서방 1150해리의 미드웨이에서는 전투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산호초 모래속에 엄폐호가 완성되고 터널이 뚫리고 수 km에 걸쳐 철조망이 쳐지고 지뢰가 해안에 매설되고 하와이에서 급송된 대공화기가 설치되었다. 미드웨이의 구식항공기 37대는 가능한한 보강되었다. 카탈라나 비행정 30대 와 항모가 방출한 32대가 추가되었다. 그 가운데는 와일듵캐트 전투기, 아벤 져 뇌격기,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가 있었고 육군은 뇌격장치가 있는 B-25 머로더 4대와 고공수평 폭격기 B-17을 15대 파견했다. 미드웨이의 활주로는 비행기로 꽉 찼다. 카탈리나 비행정은 해상 초계범위를 700해리까지 넓혔다. 그들의 초계비행은 적 함대 발견을 위해 큰 도움이 되었다. 입안자에 의하면 미드웨이는 덫이었따. 즉, 나구모함대의 항모 4척에서 발진 한 공격기가 미드웨이를 습격하고 있는 동안에 미항모 3척에서 나간 공격기 는 적 항모를 습격 격멸한다는 것이엇다. 제1기동부대가 히로시마만을 떠나 동진을 시작한 이틀후인 5월28일 항모 호 니트와 엔터프라이즈, 순양함 6척과 구축함 9척으로 된 제16기동부대는 진 주만을 출항하여 서진했다. 진주만에 정박하고 있던 이틀동안에 제16기동부 대에는 사령관의 교체가 있었다. 윌리엄 할레이는 의사명령으로 기지의 병 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6개월에 걸친 해상생활 때문에 니미츠의 막료 가운 데 가장 대담하다고 일컬어진 그도 체중이 9kg 줄고 피부병에 걸리고 말았 다. 할제이 후임으로 레이먼드 스프루앤스 해군소장이 임시로 부임했다. 그 는 순양함대를 지휘한 일은 있었으나 항모의 경험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재빠를 계산자 같은 두뇌를 가진 세심한 기술자였고 지휘능력도 우수했다. 요크타운과 순양함 2척, 구축함 5척으로 된 제17기동부대는 5월30일 함렬을 짜고 진주만을 출항했다. 요크타운 함교에는 제16, 17 두 기동부대의 작전을 지휘할 프랭크 잭 플레쳐 소장이 서 있었다. 6월2일 두 함대는 "행운의 지점"이라고 이름지은 해역에서 회동했다. 미드웨 이 북서쪽 520km 지점이었다. 도중에 니미츠의 정보참모 에드워드 레이턴 중령이 종합한 나구모함대 항모의 전입방향(북서 325도로부터)과 동함대의 발견예상지점(미드웨이에서 약 175해리의 지점)등 적군의 미드웨이 공략작 전계획을 예상하는 극히 정밀한 기록이 선발된 장교들에게 브리핑되었다. 그 브리핑을 듣고 놀란 어는 장교는 이 자료가 진주만사령부의 탁상에서 만 들어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도쿄에 있는 우리 스파이는 단 1센트의 급 료도 허비하지 않는 유능한 놈이로군."하고 그는 말했다. @할제이제독은 나중에 일본함대의 옥쇄전이라는 레이테해전에서 맹렬하게 활약합니다...이 해전에 대해서는 나중에 올리도록 하죠....^^; @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in time......like tears in the rain.... Time to die.... |